스텐 스투레 덴 윙레
또는
年少者 스텐 스투레
(
스웨덴語
:
Sten Sture den yngre
,
1493年
~
1520年
2月 3日
)는
스웨덴
의 宰相, 攝政(在位: 1512年 7月 23日 ~ 1520年 2月 3日)이다. 나트 오크 다그 家門(Natt och Dag) 出身이다.
生涯
[
編輯
]
1503年
부터 1512年까지 스웨덴의 攝政을 歷任한 스반테 닐손(Svante Nilsson)과 그의 아내인 일리아나 이슬라度테르 例다(Iliana Gisladotter Gadda)의 아들로 태어났다.
1512年
에는 스웨덴 樞密院이
덴마크
와의 統合을 主張한 에리크 트롤레(Eric Trolle)를 스웨덴의 攝政으로 임명한 것에 不滿을 품고 叛亂을 일으켰다. 스텐 스투레는 덴마크와의 協商을 繼續 進行한다는 條件을 받아내면서 에리크 트롤레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攝政으로 任命되었다.
스웨덴의 攝政을 歷任하던 동안에는
웁살라
大主敎를 歷任하고 있던 에리크 트롤레의 아들인 구스타브 트롤레(Gustav Trolle)와의 紛爭을 經驗했다. 트롤레 大主敎는 廣範圍한 自治權을 要求했지만 스벤 스투레는 이를 拒否하고 트롤레 大主敎를 投獄시켰다.
덴마크
의
크리스티안 2歲
國王은 이 事件을 빌미로 스웨덴을 侵攻하게 된다.
스텐 스투레는
1520年
1月 19日
에 일어난 보게순 戰鬪(Bogesund)에서 덴마크 軍隊의 攻擊을 받았다. 1520年 2月 3日에는
스톡홀름
으로 가던 途中에
멜라렌湖
의 氷板 위에서 死亡하고 만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世 國王은 구스타브 트롤레 大主敎와 함께 스텐 스투레를 支持하던 勢力들을 肅淸시켰는데 이는 1520年 11月에 일어난
스톡홀름 피바다
事件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