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응
(徐命膺,
1716年
~
1787年
)은
朝鮮
의 文臣,
學者
이다. 字는 郡守, 號는 보만재, 本貫은
大邱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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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城府
出身인 그는
英祖
때 文科에 及第하여 右長史·정언·副修撰·修撰·獻納·敎理·咸鏡道御史·집의·부응교 等을 거쳐서
書狀官
으로
淸나라
에 다녀왔다. 그 後에 집의·필선·부응교·교리·응교 等을 거쳐 堂上官으로 昇進해서 大司諫·承旨·大司成·副提學·吏曹參議·黃海道觀察使·禮曹參判·大司憲을 거쳐 弘文館 提學·大司成·大司憲·副提學·都承旨·吏曹參判·藝文館 提學·禮曹參判·甲山府使·黃海道 觀察使·水軍節度使·刑曹判書·兵曹判書·吏曹判書·禮曹判書·知中樞府事·右參贊·京畿道 觀察使·大提學·工曹判書·戶曹判書·平安道觀察使·奎章閣提學·判中樞府事·守禦使·漢城府 判尹 等을 지냈다. 그리고 知經筵事와 藥房提調度 겸했다.
力學
에 通達했으며
實學
硏究에 專力한 北學派의 始祖로 일컬어지며 學者로서 名望이 높았다.
英祖
의 名으로 樂譜를 蒐集하여 《
大樂後譜
》를 刊行했으며 글씨에도 能했다. 著書로 《保晩齋集》, 《啓蒙圖說》 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