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淸 單性鄕校

山淸 單性鄕校
(山淸 丹城鄕校)
대한민국 慶尙南道 有形文化財
種目 有形文化財 第88號
( 1974年 2月 16日 指定)
數量 1棟/3,498m 2
時代 朝鮮時代
位置
단성향교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단성향교
單性鄕校
單性鄕校(大韓民國)
住所 慶尙南道 山淸郡 단성면 강누리
座標 北緯 35° 18′ 27″ 東京 127° 57′ 28″  /  北緯 35.30750° 東經 127.95778°  / 35.30750; 127.95778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山淸 單性鄕校 (山淸 丹城鄕校)는 慶尙南道 山淸郡 단성면 강누리에 있는 朝鮮時代 의 鄕校이다.

1974年 2月 16日 慶尙南道의 有形文化財 第88號 單性鄕校 로 指定되었다가, 2018年 12月 20日 現在의 名稱으로 變更되었다. [1]

20230119 單性鄕校

槪要 [ 編輯 ]

鄕校는 훌륭한 儒學者를 祭祀하고 地方民의 儒學敎育과 敎化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敎育機關이다.

高麗 仁宗 5年(1127)에 지은 後 朝鮮 世宗(在位 1418∼1455) 때 西쪽 山기슭으로 옮겼다가 英祖 28年(1752)에 只今의 位置로 다시 옮겨지었다고 傳한다.

傾斜地에 位置하여 앞쪽에는 工夫하는 空間인 明倫堂이, 뒷쪽에는 祠堂인 大成殿이 있는 轉學後妙의 配置를 이루고 있다. 正門인 官選門을 들어서면 樓閣型式의 明倫堂이 있는데, 大廳 아래를 통하여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明倫堂 밑을 통하여 內三門과 大成殿의 지붕이 겹쳐서 보인다.

講堂인 明倫堂이 樓閣型式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正門을 平大門으로 處理하였으며, 大門의 兩 옆으로는 긴 行廊채를 이루고 있다. 明倫堂의 뒷쪽 左右에 學生들의 生活空間인 東齋와 書齋를 配置하였다. 一般的인 鄕校와 달리 양재가 明倫堂보다 안쪽에 配置되었기 때문에, 뒷쪽에 있는 內三門 쪽이 앞面이 되고 앞쪽의 大門쪽은 뒷面이 된다. 따라서 大廳과 마루는 양재가 있는 內三門쪽으로 開放되는 特異한 構造를 보이고 있다. 또한 明倫堂의 지붕은 옆面에서 볼 때 사람 人(人)字 模樣인 맞배지붕이며, 內三門의 지붕도 이와 비슷하다. 內三門은 앞面 7칸의 큰 規模로, 가운데 3칸은 三門을 달고 兩쪽 끝 1칸씩에는 日常的으로 出入하는 門을 달고 그 앞으로 階段을 두었다. 內三門 안에는 大成殿이 있는데, 大聖殿 앞 兩쪽으로 兩廡 代身 典祀廳과 祭器庫의 役割을 하는 두 建物을 둔 點도 注目된다.

朝鮮時代에는 나라에서 土地와 奴婢·冊을 支給받아 運營되었다. 只今은 敎育的 機能은 없어지고 祭祀의 機能만 남아있다. 長徑고에는『단성현 戶籍臺帳』(慶尙南道有形文化財 第39號)李 保管되어 있는데, 當時의 人口構成과 生活相을 알 수 있는 貴重한 資料이다.

單性鄕校는 建物의 排置나 形態에 있어서 慶南地域의 다른 鄕校보다 獨特한 構成을 하고 있는 鄕校이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