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온지 킨시게의 딸 (
日本語
:
西園寺公重女
さいおんじきんしげのむすめ
[
*
]
,
生沒年 未詳
)
은
難보쿠初 時代
의 皇族이다.
쵸케이 天皇
의 中宮으로 比定되었다. 아버지는
태정대신
사이온지 킨시게
이다.
南朝
의
쵸케이 天皇
에게 中宮이 存在했다는 것은 『
伸腰 와카집
(新葉和歌集)』에 依해 明白하지만, 그 詳細한 內容에 關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조금 宮內廳 西陵部長의 就床本 『帝王啓導(帝王系?)』의 卷 말 附錄에서 「유타나리(?成)」 (
쵸케이 天皇
)의 아들
巧故
에 「어머니 女人 킨시게 貢女(御母女院公重公女)」라는 소맷글씨 (週期)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이온지 킨시게의 딸일 것으로 推定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 附錄에 關해서는
에도 時代
初期의 寫眞인데다, 다른 史料에 依한 傍證이 全혀 缺如되어 있지 않아 信憑性에 疑問을 提起하는 傾向도 있다.
또한, 入後 時期에 對해서는 『
카키몬인집
(嘉喜門院集)』에 보이는 사서와 贈答價를 통해
겐토쿠
2年/
오우안
4年 (
1371年
) 9月 末 以後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으로 推測된다.
けんとく二年なが月のすゑつかた、びはの大なる枝につたの紅葉のか?りたりしを、わきてそめけるもなにとなく御めとまる心ちしてとて、女御殿よりまゐらせられたりし御返事に 君がはや秋の宮居にうつるべきほども?みぢの色にこそしれ と申されたりし御返事を、?の御かたより ちらで猶秋は千とせにめぐるともはこやの山のみねの紅葉ば ??『嘉喜門院集』
卽,
겐토쿠
2年 (
1371年
) 9月 末,
뇨高
로부터 丹楓을 眞相받은
카키몬인
(
高무라카미 天皇
의 뇨高)은 뇨고들이 빨리 가을의 宮거(中宮)가 되기를 期待하는 뜻을 담은 노래를 불렀고, 이에 우리 便은 (
쵸케이 天皇
)은 餘원의 長壽를 祈願하는 뜻을 되새겼다고 하는데, 그 事實은 餘원의 期待에 符合함을 諒解하는 뜻일 것이다. 이 2首는 『
伸腰 와카집
(新葉和歌集)』 秋河 400-401에도 採用되었으며, 그 史書에 "中宮, 뇨高架 말씀하시는 비" 라고 하는 것이 보여짐으로써, 仲弓, 뇨高架 中宮과 同一人인 것은 明白하므로, 이 贈答을 契機로 뇨고는 入後 선하를 받아 中宮에 冊立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코키하시는 이 해 겨울이나 늦어도 이듬해 (1372年) 中에는 入後가 實現된 것으로 보고 있다.
덴쥬
3年/
에이와
3年 (
1377年
), 皇子
巧故
를 낳았다. 南朝歌壇에서는
요시노 行宮
白手가
에 榮進하고, 『
伸腰 와카집
(新葉和歌集)』에는 "中宮"으로써 15首가 들어가게 되었다. 뛰어난 歌人은 아니지만, 女性스럽고 仔詳한 感情을 切實히 읊어낸 것이 많다.
쵸케이 天皇
의 中宮인 만큼
겐지모노가타리
에 對한 造詣를 엿볼 수 있는 作品도 있다 (抽象 251).
또한, 近世에는 『
伸腰 와카집
(新葉和歌集)』 中의
쵸케이 天皇
"어제(御製)"를 모두
高카메야마 天皇
의 作品과 錯覺했기 때문에 "中宮"도
高카메야마 天皇
의 中宮으로 誤解받았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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