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환 (185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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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환 (朴齊?, 1859年 陽曆 12月 2日 ~ 1938年 陽曆 1月 5日 )은 大韓帝國 의 官僚로, 日帝强占期 에는 朝鮮總督府 中樞院 參議를 지냈다. 本來 이름은 박제환(朴齊煥)이나 1906年 漢字 를 바꾸어 改名했다. 本貫은 潘南 이다.

家族關係 [ 編輯 ]

  • 曾祖父 : 박성원(朴成源)
    • 祖父 : 박종진(朴宗晉)
      • 部 : 박남수(朴南壽)

生涯 [ 編輯 ]

1899年 옥구監理署 主事를 지내는 等 大韓帝國에서 官吏로 일했다. 1906年 大韓帝國 中樞院 의 慘事로 任命된 後 中樞院에서 主로 勤務했다. 1910年 韓日 倂合 條約 이 締結되고 朝鮮總督府 는 朝鮮 中樞院의 이름을 그대로 維持한 채 總督府 諮問機構인 中樞院을 設置했다. 박제환은 이때 中樞院 副贊儀로 任命되었다.

1914年 第1次 世界大戰 에 參戰한 日本軍 과 家族을 慰勞하기 위해 組織된 鏡城郡人後援會에 寄附金으로 2원을 納付했고, 韓日 倂合 5周年 記念으로 植民統治를 宣傳할 目的으로 開催된 京城物産공진회 에는 10원을 寄附했다. 1916年 朝鮮總督府가 半島社編纂事業을 벌일 때 調査主任으로 參加했다. 朝鮮史編修會 의 前身인 이 事業에서는 日本人 學者들의 硏究에 中樞院 參議들이 調査員으로 任命되어 補助 役割을 했다.

1921年 中樞院 編制 改編 때 主任待遇 參議로 任命되어 任期가 滿了된 1927年 까지 6年 동안 在職함으로써 總 17年間 朝鮮總督府 中樞院에서 勤務했다.

1912年 日本이 韓日 倂合을 記念하여 功勞者들에게 授與한 韓國倂合記念章 을 授與받았고, 1926年 勳6等 서보장度 授與받아 日本으로부터 功을 認定받았다. 1924年 천장절 記念行事에도 招待받은 일이 있다.

2002年 發表된 親日派 708人 名單 2008年 公開된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에 모두 包含되었다. 2007年 大韓民國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가 發表한 親日反民族行爲 195人 名單 에도 들어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2007年 12月). 〈박제환〉 (PDF) . 《2007年度 調査報告書 II - 親日反民族行爲決定理由서》. 서울. 631~636쪽쪽. 發刊登錄番號 11-1560010-0000002-10.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