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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元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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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元俸
毛元鳳
出生 1899年 4月 6日 ( 1899-04-06 )
大韓帝國 平安北道 定州郡 덕언면 대성리(德彦面 大成里) 65番地
死亡 1919年 3月 31日 ( 1919-03-31 ) (19歲)
日帝 强占期 朝鮮 平安北道 定州郡 정주읍
居住地 大韓帝國 平安北道 定州郡 덕언면 대성리(德彦面 大成里) 65番地
本館 光州 (廣州)
父母 모신영 (簿)
昌寧 姓氏 否認(某)
兄弟 모원규 (異腹 庶兄)
正當 無所屬
賞勳 1980年 大韓民國 大統領 表彰狀 追敍
1991年 建國訓長 愛國章 追敍

某元俸 (毛元鳳, 1899年 4月 6日 ( 1899-04-06 ) ~ 1919年 3月 31日 ( 1919-03-31 ) )은 大韓帝國 獨立運動家이다.

生涯 [ 編輯 ]

一生 [ 編輯 ]

平安北道 定州(定州) 出生인 그는 1919年 3月 31日 平安北道 定州郡 정주읍 場날을 利用하여 일으킨 對한 獨立 萬歲 示威에 參與하였다. 結局 이날 新安(新安)·同舟(東州)·고현(高峴)面民들은 邑城 同門(邑城東門)으로, 이언(伊彦)·복달(復達)·아이포(阿耳浦) 面民들은 南門으로, 臨해(臨海) 面民들은 西門으로 들어와서 示威群衆이 約 2萬5千餘 名을 넘는 大大的인 獨立萬歲示威를 展開하였다. 對한 獨立 萬歲 示威 群衆은 獨立萬歲를 외치며 示威行進을 벌이던 中, 出動한 日本 警察·憲兵과 衝突하였다. 結局 이 때 日本 憲兵은 殘忍하게도 先頭에서 太極旗를 흔들며 萬歲를 외치던 최석일(崔晳一)의 兩팔을 잘라 죽이고, 최석일을 代身하여 太極旗를 주워들고 萬歲를 외치던 摧謝걸(崔士傑)도 짐승을 죽이는데 使用하는 쇠갈구리로 배를 찌르는 蠻行을 恣行하였다. 그러나 示威群衆이 이같은 日帝의 蠻行에도 屈하지 않고 繼續 萬歲示威를 벌이자, 日帝는 드디어 無差別 射擊을 加하였다. 結局 이때 先頭에 있던 그는 凶彈에 맞아 現場에서 殉國하였는데, 이福 兄 모원규(毛元奎)·아버지 모신영(毛信永)과 함께 한 집안에서 3名이 殉國하는 悲運을 맞이하였다.

事後 [ 編輯 ]

大韓民國 政府에서는 故人의 功勳을 기리고자 1980年 8月 15日을 期하여 大統領 表彰狀을, 1991년 3月 1日을 期하여 건국훈장 愛國章을 各各 追敍하였다.

外部 링크 [ 編輯 ]

  • [1] - 功勳電子史料館 獨立有功者 公的調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