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안데르손
Roy Ander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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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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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名
| 로위 아르네 렌나르트 안데르손
Roy Arne Lennart Ander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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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生
| 1943年 3月 31日
(
1943-03-31
)
(81歲)
스웨덴
예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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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籍
|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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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業
| 映畫 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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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動
期間
| 1967年 - 現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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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안데르손
(
스웨덴語
:
Roy Andersson
로위 안데르손
[
*
]
,
1943年
3月 31日
~ )은
스웨덴
의
映畫 監督
으로 <
스웨덴 러브 스토리
>(1970年), <
끝없음에 關하여
>(2019年), 그리고 "삶의 三部作"이라 일컬어지는 <
2層에서 들려오는 노래
>(2000年), <
有, 더 리빙
>(2007年), <
비둘기, 가지에 앉아 存在를 省察하다
>(2014年)로 有名하다. 特히 다른 映畫들 보다도 그의 特徵인 롱테이크, 不條理한 코미디, 스웨덴 文化의 諷刺畫, 그로테스크를 確定시킨 것은 <
2層에서 들려오는 노래
>였다. 그의 經歷 大部分은 400個 以上의 廣告 製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60年間 두 篇의 短篇과 여섯 個의 長篇이 있다. 2014年 映畫 <
비둘기, 가지에 앉아 存在를 省察하다
>가 第71回
베네치아 國際 映畫祭
黃金使者床
을 受賞하면서
[1]
스웨덴
映畫 監督
으로는 唯一하게, 그리고 北유럽을 통털어서도 1955年
덴마크
의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監督 以後 唯一한 受賞者가 되었다. 안데르손은 現在 生存해 있는 가장 重要한 유럽 映畫 監督들 中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삶과 映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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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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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손은 1943年
스웨덴
예테보리
에서 태어났고 스웨덴 映畫 硏究所를 卒業한 지 1年 後인 1969年 젊은 사랑의 本質과 뉘앙스를 담은 첫 長篇 映畫 <
스웨덴 러브 스토리
>가 人氣를 얻으며 같은 해 20回
베를린 國際 映畫祭
에서 네 個의 賞을 受賞했다. 이 成功 以後 안데르손은 憂鬱症에 빠졌다. 같은 스타일과 期待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이미 臺本을 半쯤 써놓았던 다음 프로젝트를 取消하고 以前에 생각해 놓았던 몇 個의 플롯을 가지고 다음 映畫 <길리압>을 만들어 1975年 開封한다.
[2]
이 映畫는 豫算이 훌쩍 넘어버렸고 編輯 作業은 甚하게 미뤄지면서 財政的으로나 坪에 있어서 災殃이었다. <길리압>은 <
스웨덴 러브 스토리
>에서 처럼 大衆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가벼운 유머를 다루기 보다는 無表情하고 어두운 코미디로 全혀 다른 方向을 追求했다. <길리압> 以後 안데르손은 25年間 映畫를 만들지 않았고 主로 商業的 映像만을 했다.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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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年 그는
스톡홀름
中心部에 스튜디오 24라는 獨立映畫製作社를 세우고
스웨덴
國立 保健福祉部에서 依賴를 받은 短篇映畫 <Something Happened>를 만들었다. 1987年 만들어진 이 映畫는
스웨덴
全 地域의 學校에서
에이즈
에 關聯한 敎育用으로 上映될 豫定이었는데 4分의 3쯤 만들어졌을 때 너무 어둡고 論難의 餘地가 많아지면서 取消되었다. 公式的인 解明은 그 映畫가 "傳達하려는 메시지에 비해 너무 어둡다"는 理由였고 1993年이 되기까지 公式的으로 上映되지 않았다. 그리고 1991年의 短篇 <榮光의 世界>는 이러한 스타일을 더욱 밀고 나갔고 評壇의 讚辭를 받으며
카날 플러스
어워드와 1992年
클레르몽페랑
短篇映畫祭에서 言論賞을 받았다. 이 映畫는
클레르몽페랑
短篇映畫祭에서 歷代 베스트 短篇映畫 톱 10 리스트에 들어 있다.
1996年 3月 안데르손은 <
2層에서 들려오는 노래
>를 찍기 始作했고 4年이 걸려 2000年 5月에 完了한다. 2000年
칸 映畫祭
에서 初演되고 또다시 國際的인 讚辭를 받으며 칸에서 審査委員賞
[3]
과
스웨덴
굴드바게 어워드
에서 作品賞, 監督賞, 撮影賞, 脚本賞, 및 사운드賞을 受賞했다. 이 映畫는 46個의 긴 場面들로 構成되어 있는데 거칠고 暗鬱한 社會 批判이 그의 特徵이 不條理한 無表情의 喜劇과 超現實主義로 表現되어 있다.
로이 안데르손은 스튜디오 24에서 繼續하여 商業的 作業들을 하다가 2007年 칸 映畫祭에서 <
有, 더 리빙
> 映畫 初演을 했고 2008年 노르딕 카운슬 映畫賞을 받았다.
2009年 9月
뉴욕현대미술관
에서 안데르손의 作品 回顧展이 있었다.
그는 앞선 두 映畫에 이은 三部作을 完結하는 作品을 찍고 싶다는 얘기를 公開的으로 했고 그 映畫는 "세 番째는 巨大하고 깊고 幻想的이며 유머러스하고 悲劇的이며 哲學的인
도스토예프스키
映畫다"라고 했다.
[4]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 映畫는 아마도 레드 원 카메라를 가지고 高畫質 비디오로 撮影할 것이며 以前 두 映畫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映畫일 것이라고 밝혔다.
[5]
<
비둘기, 가지에 앉아 存在를 省察하다
>라는 題目
[6]
의 三部作 完結작은 2014年 開封되었고 71回
베니스 映畫祭
에서 黃金獅子 作品賞을 받았다.
2015年 뉴욕 藝術 및 디자인 博物館에서는 <人間되기의 어려움: 로이 앤더슨 映畫들>이라는 題目의 回顧展을 열었다.
[7]
[8]
影響과 좋아하는 映畫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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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 안데르손은 <
사이트 & 사운드
>의 映畫 投票에 參與했는데 열 個의 映畫를 꼽아달라는 要請에서 "여기 열 篇의 映畫는 모두 내가 人類의 날 것이며 愉快한 存在에 對한 훌륭하고 魅惑的인 藝術的 表現이다. 이 映畫들은 우리를 더욱 賢明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면서 "내가 絶對的으로 좋아하는 映畫는 <
自轉車 도둑
>으로 歷史的으로 가장 人間的이며 政治的인 映畫다. <
비리디아나
>는 가장 知性的인 映畫이며 <
히로시마 내 사랑
>은 가장 詩的인 映畫다"라고 했다.
[9]
아래가 그가 選擇한 映畫들로 가나다順이다.
- <
라쇼몽)
> (日本, 1950年)
- <
배리 린든
> (美國, 1975年)
- <
비리디아나
> (멕시코, 1961年)
- <
아마코드
> (이탈리아, 1972年)
- <
안드레이 루블료프
> (러시아, 1966年)
- <
인톨러런스
> (美國, 1916年)
- <
알제리 戰鬪
> (이탈리아, 1968年)
- <
自轉車 도둑
> (이탈리아, 1948年)
- <
재와 다이아몬드
> (폴란드, 1958年)
- <
히로시마 내 사랑
> (프랑스, 1959年)
作品 目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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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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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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