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島防禦訓鍊
(獨島防禦訓練)은
大韓民國 海軍
이
獨島
海域에서
海上自衛隊
의 侵略을 막기 위한 訓鍊이다.
東方訓鍊
이라고 부르며, 1996年 始作되었다.
反面에, 韓日間 獨島 海上에서 合同海上訓鍊도 施行하고 있다. 1999年부터 施行하는
韓日 搜索 및 構造訓鍊
(
SAREX
: Search And Rescue Exercise)이다.
作戰計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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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島防禦作戰計劃
은 1991年 4月
노태우 政府
의 國防部
合同參謀本部
賈 最初로 作成했다. 2002年
노무현 政府
가 1次 改正했다.
作戰計劃
은 3年마다 改正하는데 10餘年째 介淨이 안 되었다는 點을 2012年 國政監査에서 國會 國防委員會 민주당 김광진 議員이 指摘했다.
[1]
作戰計劃 5027
,
作戰計劃 5029
과 같이 普通 韓國의 作戰計劃은 番號로 불리는데, 番號가 몇番인지 조차 言論에 公開가 되지 않았다.
韓國軍의 作戰計劃 作成權은 1993年
平時作戰權 還收
의 例外事項으로서, 駐韓美軍 司令官에게 委任되어 있다. 그러나 美國은 韓國보다 日本에 友好的인데, 1991年과 2002年에 駐韓美軍이 作成을 한 것인지, 韓美聯合으로 함께 作成한 것인지, 韓國 合參이 單獨으로 作成한 것인지는 明確하지가 않다. 1991年에는 平時作戰權度 모두
駐韓美軍
에 委任되어 있던 時節이다.
軍隊가 實施하는 每年 定期 訓鍊은 모두 作戰計劃에 依據해, 作戰計劃대로 訓鍊해 보는 것인데, F-15K 이지스艦이 獨島防禦訓鍊에 參加했다면서, 作戰計劃은 그 武器들이 導入되기 前인 2002年 버전이라고 한다.
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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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年 - 東方訓鍊 始作. 6回 實施.
- 1997年 - 東方訓鍊 始作. 9回 實施. 以後 每年 6~7回 實施.
- 1999年 10月
- 韓美 聯合軍이 獨島 周邊 海域에서 合同 軍事訓鍊을 非公開로 實施했고, 이에 對해 日本의 抗議가 있었다.
[2]
- 2005年 3月 25日,
合同參謀本部
는 1999年 10月末에서 11月初께 實施된
禿수리 練習
(Foal Eagle) 當時 獨島 起點 12海里 안쪽에서 實施되었다고 밝혔다.
[3]
紛爭地域에서의 軍事訓鍊은 相對國에 通報하는
國際 慣習
에 따라 日本 政府에 事前通報가 되었고, 日本은 韓國大使를 통해 抗議를 해왔지만, 練習은 計劃대로 進行되었다.
- 김대중 政府
때 初代 國政狀況室長을 지낸
장성민
世界와 東北亞 平和포럼
代表는 "美軍이 移動할 때는
美軍 太平洋司令部
에 報告가 되는데 合同軍事訓鍊에 美軍이 動員된 것은 結局 美國과 美軍이 獨島를 韓國領土로 認定한 것"이라고 말했다.
[4]
- 2003年 - 每年 2回 實施.
- 2004年 - 高油價로 인해 未實施 했다고 알려졌다.
- 2004年 2月末 - 海軍이 單獨으로 獨島 近處 海域에서 傳單機動訓鍊을 實施했고, 日本이 外交채널을 통해 抗議해 왔지만 訓鍊을 强行했다.
[5]
- 2008年 7月 29日
- 史上 最初로 東方訓鍊 言論에 公開.
F-15K
戰鬪機 2大 史上 最初로 參加.
- 2008年 7月 29日부터 나흘間
F-15K
2臺를 獨島防禦訓鍊에 參加시켰는데 이때 操縱士들이 戰鬪機 地圖에 "다케시마"라고 나오는 事實을 最初로 認知, 空軍作戰司令官이 2008年 8月12日 指名誤謬를 修正할 것을 指示해 陸軍 地形情報團과의 協議를 거쳐 2009年 2月 修正됐다.
[6]
- 獨島防禦訓鍊 史上 最大의 訓鍊으로,
海軍 1艦隊
旗艦인
廣開土大王艦
,
馬山函
,
晋州函
,
安東函
益山函
等 海軍 艦艇 6隻과
太平洋7號
,
漢江8號
等 海警 艦艇 2隻,
P-3C
對潛哨戒機,
링크스
對潛헬기,
F-15K
2臺가 動員되었다.
[7]
[8]
- 2008年 7月 31日 - 親朴連帶 代辯人 송영선 議員은 獨島防禦訓鍊을 1年에 5~6回는 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9]
- 2013年 10月 25日 - 史上最初로 UDT兵力이 防禦訓鍊에 參與하였으며 最初로 海軍兵力이 獨島에 上陸하는 訓鍊을 竝行했다.
[10]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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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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