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군 墳墓 盜掘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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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 墳墓 盜掘事件
날짜 1868年 5月 11日 ~ 5月 18日
場所
忠淸道 행담도 ~ 忠淸道 德山 一帶
結果 盜掘꾼 一黨의 盜掘 未遂, 朝鮮의 通商修交 拒否 政策 强化
交戰國
프랑스의 기 프랑스
독일 제국의 기 獨逸 帝國
미국의 기 美國
指揮官
實行策 에른스트 오페르트
物主 프레더릭 젠킨스
앞잡이 스타니슬라 페롱

남연군 墳墓 盜掘 事件 (南延君墳墓盜掘事件)은 1868年 高宗 5年 商人이자 學者인 獨逸人 에른스트 오페르트 가 忠淸道 德山(德山)에 있는, 흥선大院君 의 아버지인 남연군 (南延君)의 墓를 盜掘 하려다 失敗한 事件이다. [1] 에른스트 오페르트 盜掘 事件 (Ernst Oppert 盜掘事件)으로도 불린다.

이 일로 因해 丙寅迫害 때부터 始作된 天主敎 에 對한 彈壓이 더욱 거세졌고 [1] 大院君의 通商修交拒否政策은 더욱 强化되었다. [2]

開設 [ 編輯 ]

中國 상하이에서 商業에 從事하던 오페르트는 1866年 高宗 3年, 鎖國中이었던 朝鮮과 通商을 要求하였으나 2次例나 거절당한다. 오페르트는 天主敎 彈壓에 報復한다는 名分下에 1868年 高宗 5年에 차이나號(湖)를 빌려서 忠淸道 牙山灣 에 내航海 덕산군 에 上陸해 흥선大院君 의 父親인 남연군 墓 를 盜掘하려다 失敗했다. [3]

急報를 받고 忠淸 監査가 軍兵을 急히 派遣했을 때는 오페르트 一行이 돌아가고 난 뒤였다. 오페르트 一行은 다시 北港(北航)해 仁川 永宗島 (永宗島) 앞바다에 들어와 個國 通商을 交涉코자 管理 派遣을 要請했으나 朝鮮 守備兵과 衝突해 아무 成果도 없이 상하이 로 돌아갔다. 남연군 墳墓 盜掘 事件은 後日 興宣大院君의 通商 修交 拒否 政策 에 影響을 미치는 事件이 된다.

워낙 오페르트는 朝鮮의 使臣 1名을 招聘하고 世界 一周를 시키려던 計劃이었다.

寫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 編輯 ]

  1. 이이화 <韓國史 이야기 17> 한길사 2009.4.10 p126
  2. [네이버 知識百科] 에른스트 오페르트 [Ernst Jacob Oppert] (두산百科)
  3. 유홍준 <나의 文化遺産踏査記> 창작과비평사 1993年 p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