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 (朝鮮共産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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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숙
出生 1917年 12月 18日 ( 1917-12-18 )
日帝强占期 平安南道 鎭南浦部 近郊
(只今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平安南道 남포시 一帶)
死亡 1947年 1月 1日 ( 1947-01-01 ) (29歲)
美軍政 朝鮮 京畿道 楊州郡 北漢山 近郊 三角山자락
(只今의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江北區 北漢山 一帶)
國籍 日帝强占期
居住地 日帝强占期 京城府
經歷 朝鮮共産黨 黨務委員
兄弟 오빠 1名
配偶者 정진룡
子女 없음
正當 朝鮮共産黨
黨內 職責 黨務委員

김해숙 ( 韓國 漢字 : 金海肅, 1917年 12月 18日 ~ 1947年 1月 1日 )은 美軍政 朝鮮 時代 末期 朝鮮共産黨 의 黨員이었었다. 1937年 朝鮮共産黨 에 入黨하여 1947年 射殺될때까지 10年間의 黨員으로 몸담았다.

1937年 京城府 에서 朝鮮共産黨 에 入黨하였으며, 1943年에 蘇聯 의 沿海州를 처음으로 訪問한 以後 日帝强占期 時代의 平安南道 平壤 을 거쳐 平南 鎭南浦 의 오빠 夫婦가 사는 집으로 鬼車하여, 鎭南浦에서 蘇聯人 및 朝鮮人 共産黨員들과 소소히 交流를 하던 가운데, 1945年 8月 15日  ( 1945-08-15 ) 에 光復(乙酉 解放)을 平南 鎭南浦에서 目睹한 以後로는 같은 해 1945年 10月 8日  ( 1945-10-08 ) 에 오빠 夫婦를 비롯한 職族들과 아울러 모두 같이 함께, 三八線 南쪽의 京畿道 高陽郡 으로 越南하였고, 이듬해 1946年 11月 30日  ( 1946-11-30 ) 에는, 정진룡 (丁鎭龍)의 2番째 夫人으로 結婚하였다. 그 當時의 정진룡 (丁鎭龍)은 지난날의 첫 床排한 前妻와 사이에 1男 1女를 두었었던, 當時 共産黨 黨內 同僚 出身이었는데, 1946年 冬至달 말순에 김해숙은 바로 그 同僚 정진룡 (丁鎭龍)의 2番째 夫人으로 結婚하여 달포 남짓의 新婚 時節이던, 그 이듬해 1947年 1月 1日 ( 1947-01-01 ) 에는, 民靑臺에서 祕密裏에 京畿道 楊州郡 北漢山 (三角山 山자락 洞네)의 團合大會가 열렸는데, 김두한 (金斗漢)이 이 消息을 듣고 襲擊해 수많은 電位隊員들을 銃으로 쏘아 죽이는 過程에서 射殺되면서 죽었다. [1]

김해숙이 登場한 作品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