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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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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집 (金泰潗, 日本式 이름: 金井泰潗 가나이 다이슈 , 1888年 陰曆 9月 21日 ~ 1947年 10月 8日 )은 日帝强占期 京城府 地域 維持이며 朝鮮總督府 中樞院 참意圖 지냈다. 本貫은 慶州 , 본적은 京城府 永登浦情이며 다른 이름으로 김태준 (金泰準)이 있다.

生涯 [ 編輯 ]

와세다 大學 經濟科에서 受學한 뒤 大韓帝國 末期인 統監府 時代에 通信官吏國 通信注射로 勤務한 일이 있다. 韓日 倂合 條約 締結 後에는 京城府와 京畿道 에서 企業人과 地域 有志로서 活潑한 活動을 펼쳤다.

金融組合制度가 實施된 以來 財界에서 오랫동안 活動하였으며, 紡織業系와 運輸業界, 主流業界에도 進出했다. 金融組合 理事, 普通學校 學務委員, 消防嘲笑두, 軍農會 通常委員 및 農村振興委員, 小作委員, 稅務調査員 等 地域 維持들이 맡는 職責을 여럿 兼任했다.

關係에 進出하여 競技도 都會議員, 京城府 府會議員, 永登浦情 第3具 銃대 等을 지냈다. 이러한 活動 끝에 日帝 强占期 末期에 中樞院 參議로 拔擢되었고, 조선임전보국단 에도 加擔하였다. [1]

1936年에 編纂된 《大京城公職者명감》이라는 冊子에 功績이 收錄되어 있다. 이 冊子에 따르면 김태집은 會社와 地域의 發展을 위해 잠을 쫓아가면서 努力하는 人物로서, "熱誠을 다한 이 사람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尊敬하여 服從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적혀 있다. "高潔한 人格과 함께 手腕, 力量, 學識을 兼備한 熱情的인 雄辯家"라는 人物評度 덧붙여져 있다.

2002年 發表된 親日派 708人 名單 2008年 公開된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中 中樞院 部門에 모두 包含되었으며 2009年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가 發表한 親日反民族行爲 705人 名單 에도 包含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

  1. 친일인명사전編纂委員會 (2004年 12月 27日). 《日帝協力團體事前 - 國內 中央便》. 서울: 民族問題硏究所. 390쪽쪽. ISBN   89953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