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鎬
(金在浩,
1914年
9月 28日
~
1976年
7月 6日
)는
日帝强占期
의 抗日 運動家이다. 다른 이름으로
김호건
(金胡建)이 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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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南道
羅州郡
에서 出生하였다.
中國
으로 亡命하여
1933年
經에
난징
에서
義烈團
이 세운 幹部學校에 入學하면서 抗日 運動에 뛰어들었다. 이 學校를 第2期로 卒業한 뒤 地下工作員으로 活動하였다.
조선민족혁명당
創立에 主導的으로 參與하였으며,
1937年
에
中日 戰爭
이 勃發하자
산시省
一帶에서 宣撫工作에 從事하였다.
1941年
에는
조선의용대
에 入隊하였으며, 朝鮮義勇隊 第1地帶 第1全區 司令部에서 服務했다.
金九
가
충칭
에서
大韓民國 臨時政府
宣傳部를 構成했을 때, 15人의 宣傳委員 中 한 名으로 任命되기도 했다. 이때 招待 宣傳部長은
김규식
이 맡았다.
1942年
부터 發行部 主任도 兼任하였으며, 臨時의정원 全羅道 議員으로도 選出되었다.
1943年
臨時政府 內務部 社會課長,
1944年
總務課長 等을 지냈다.1969년
三選改憲反對汎國民鬪爭委員會
指導委員으로 參與하였다.
太平洋 戰爭
終戰 後
大韓民國
地域에서 居住하였다.
第4共和國
에서
維新憲法
을 反對하는
民主回復國民宣言
에 獨立有功者를 代表하여 參與한 바 있다.
死亡 後인
1980年
에 建國褒章을 追敍 받은 데 이어,
1990年
에 建國訓長 愛國章이 追敍되었다.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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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年
民主回復國民宣言 署名者(銃 71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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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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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鬪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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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憲議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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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主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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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新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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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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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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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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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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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曹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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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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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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