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현
(金始顯,
1883年
6月 9日
[1]
~
1966年
1月 3日
[2]
)은 韓國의 獨立 運動家이며 政治人이다. 字는 구화(九和), 號는 하구(何求)이다. 義烈團員으로
金元鳳
과 思想的 同志였고, 상하이
高麗共産黨
,
朝鮮共産黨
의 政治人이였다.
日本
메이지 大學校
法科를 卒業하고
3·1 運動
後 滿洲에서
義烈團
活動 等을 하면서 獨立運動을 하고 數次例 投獄되고 풀려나길 反復하였다. 獄中에서
光復
을 맞고 풀려났으며, 그 後 第2代
安東郡
國會議員에 當選된다.
1920年
김규식(金奎植)·呂運亨(呂運亨) 等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革命團體代表者大會에 韓國代表로 參席하였다.
1920年 9月頃 義烈團이 國內에 들어와 全國的인 規模의 暴動과 要人 暗殺 및 朝鮮總督府에 爆彈을 投擲할 目的으로 國內에 爆彈搬入을 試圖할 때 이에 加擔하다 大邱에서 逮捕되어 大邱刑務所에서 懲役 12年型을 宣告받고 服役하던 中 1年間 投獄되었다.
1952年
6月 25日
釜山
에서 열린 6·25 記念式場에서
유시태
로 하여금
李承晩
大統領을 暗殺하도록 하였으나, 拳銃이 不發에 그쳐 失敗하였다. 이 事件의 主謀者로 無期懲役을 宣告받고 服役하다가,
4·19 革命
과 함께 服役 滿 7年 10個月만인
1960年
4月 28日
에 釋放되었다.
[3]
그 後에 第5代 國會議員에 當選된다.
1960年
7月
民議員
에서 열린 大統領 選擧에 出馬하였다.
[4]
1966年
1月 3日
別世하였다.
創作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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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 選擧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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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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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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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年 5月 31日 ~ 1954年 5月 3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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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年 7月 29日 ~ 1961年 5月 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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