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아유신記念塔
(興亞維新記念塔)은
日帝强占期
에
京城府
臺현정(大峴町)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세워졌었던 記念塔이다. 이 記念塔은 只今의
서울特別市
西大門區
延世大學校
신촌캠퍼스 校庭에 남아 있다.
由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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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年, 연희전문학교의 創設者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를 記念하기 위하여 敎職員과 社會 人士의 寄附로 銅像을 校庭에 세웠다.
[1]
그러나 日帝 强占期 末期, 新東亞(神東亞)의 指導者를 養成하는 半島學院
[2]
에 個人의 功勞는 敵國
[3]
의 銅像을 둘 수 없다는 理事會의 議決로 招待 언더우드 敎藏의 銅像을 없애기로 하였다. 이에 1942年 4月 24日,
윤치호
와 職員과 學生代表者가 모인 가운데 흥아유신記念塔을 銅像을 撤去한 자리에 세웠다. 記念塔의 前面에는 敬虔하게 拜禮하는 新東亞(神東亞)
[4]
의 聖地로 造成했다.
形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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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念塔은 正方形의 基壇石 위에 正方形의 四面體로 中臺石의 塔神父 上段에 社角뿔形의 前面에 朝鮮總督府
미나미 지로
(南次郞, みなみじろう) 總督의 揮筆로 ‘흥아유신記念塔’(興亞維新記念塔)이라고 各自하였다. 記念塔의 側面에는
쇼와
(昭和) 16年(1941年) 12月 8日이 새겨져 있는데, 이 날짜는 1941年 12月 7日에
日本 帝國 海軍
이 하와이
眞珠灣 攻襲
을 開始한 日時와 無關하지 않다.
現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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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放 以後 흥아유신記念塔을 撤去하고, 1948年에 존 토마스 언더우드의 銅像을 다시 세웠으나
韓國 戰爭
때 破壞되어 1955年에 다시 銅像을 세워서 只今에 이른다.
[5]
흥아유신記念塔은 延世大學校 신촌캠퍼스 수경원이 있었던 터 뒤쪽 ‘연세 歷史의 뜰’에 尖塔部가 現存해 있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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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延世大學校 弘報팀 (2004年 4月 16日).
“[기타 消息] 이달의 延世歷史”
. 《延世大學校》
. 2020年 3月 9日에 確認함
.
- ↑
半島學院의 半島는 韓半島의 朝鮮을 말하고 學院은 日帝에 依한 軍國主義者 陽性을 示唆한다.
- ↑
敵國은 美國을 말한다.
- ↑
신동아는 日本의 侵略戰爭으로 東아시아 霸權主義 服屬을 의미한다.
- ↑
異說 (2007年 5月 7日).
“가장 오래된 銅像 ‘延大언더우드上’”
. 東亞日報
. 2011年 8月 23日에 確認함
.
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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