泗沘城
(泗?城)은
聖王
16年(
538
)에 國號를 南夫餘로 바꾸면서
熊進
에서 遷都한
百濟
의 首都였다. 오늘날
大韓民國
忠淸南道
扶餘郡
에 該當하며, 遺跡으로는
扶蘇山城
,
落花巖
,
정림사址 石塔
이 있다.
泗沘城은 遷都때 새로 쌓은 것이 아니고 旣存 城郭을 收縮만 하였다.
[1]
錦江
河口에 位置하여 比較的 넓은
平野
가 이어져 모여살기 좋았고,
바다
를 통해서
中國
,
日本
과 交流하기 좋은 立地였다.
[2]
私碑 遷都 關聯 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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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三國史記
(三?史記)》 〈백제본기〉
聖王
16年朝 : 16年 봄, 私費(泗?)[소부리(所夫里)라고도 한다.]로 都邑을 옮기고 國號를 南夫餘(南扶餘)라 일컬었다.(十六年 春 移都於泗?[一名所夫里] 國號南扶餘)
- 《
三國史記
(三?史記)》 〈新羅本紀〉
태종무열왕
7年朝 : (7月) 12日 新羅軍이
椅子
의 都城을 包圍하려고 소부리(所夫里)의 들판에 나아갔다.(十二日 唐羅軍□□□圍義慈都城 進於所夫里之原)
- 《
三國史記
(三?史記)》 〈地理誌〉 百濟 : 26歲
聖王
에 이르러 소부리(所夫里)로 都邑을 옮기고 國號를 南夫餘(南扶餘)라 일컬었는데, 31歲
의자왕
에 이르기까지 122年을 지냈다.(至二十六世聖王移都所夫里 國號南扶餘 至三十一世義慈王 歷年一百二十二)
- 《
三國史記
(三?史記)》 〈地理誌〉 百濟
熊川州
兆 : 熊川州(熊川州)에 소부리群(所夫里郡)[사비(泗?)라고도 한다.]이 있었다.所夫里郡[一云泗?]
- 《
三國遺事
(三?遺事)》 〈王力〉 性王朝 : 私費(泗?)로 都邑을 옮기고 南夫餘(南扶余)라 일컬었다. (移都泗? 稱南扶余)
- 雄鎭이 너무 狹小하고 聖王 卽位 當時 被殺事件의 展開에 따라 옆에 있는 扶餘로 私費天道를 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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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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