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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쿠人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本文으로 移動

고토쿠人

가마쿠라 大佛

고토쿠人 ( 日本語 : 高?院 こうとくいん [ * ] )은 日本 가나가와縣 가마쿠라시 하세 에 있는 淨土宗 寺院 이다. 가마쿠라 大佛 (鎌倉大佛)로 알려진 阿彌陀如來 본존 으로 한다. 珊瑚(社員의 이름 위에 붙이는 稱號)는 다이이 산 (大異山), 皆旣(創立者)와 改刪(初代 주지)은 모두 不明이다.

起源과 歷史 [ 編輯 ]

國寶 人 同調 阿彌陀如來 坐像, 이른바 가마쿠라 大佛 (하세 대불이라는 이름도 있음)을 본존 으로 하는 절이다. 仔細한 이름은 다이이 산 고토쿠人 쇼조센지(大異山高?院??泉寺)이다.

고토쿠人은 가마쿠라의 심벌이라 할 만한 大佛을 본존 으로 하는 節임에도 不拘하고, 그 草創期에 對해서는 개산과 契機를 包含해 알려지지 않은 點이 많다. 뿐만 아니라 對佛 自體의 製作 經緯,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그 事實에 關해서도 資料가 貧弱하여 現在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절의 草創期에 對해서는 가마쿠라시 字姨母쿠子(材木座)의 高墓地오쿠노人(光明寺?の院)을 옮겨 지은 것이 고토쿠인이라는 說도 있지만 正確한 것은 아니다.

當初에 절은 眞言宗 으로, 가마쿠라· 고쿠라쿠지 (極?寺)의 改刪人 닌쇼 (忍性) 等의 密敎 界 僧侶들이 住持가 되었다. 後에 臨濟宗 에 屬하게 되어 겐草芝 (建長寺)의 附屬 절이 되었다. 에도 時代 쇼토쿠 (正?) 期間 ( 1711年 ~ 1716年 )에 에도· 조조지 (?上寺)의 有텐쇼닌 (祐天上人)에 依해 그 以後로 淨土宗 에 屬하게 되어 字姨母쿠子 高墓地 ( 淨土宗 간토 總本山)의 附屬 절이 되었다.

大佛의 建立에 對해서는 情事(正史)인 『 아즈마카가미 (吾妻鏡)』에 랴쿠닌 (?仁) 元年( 1238年 )에 木造大佛의 建立이 始作되어, 5年後에 完成되었다는 記錄이 있다. 또한 『아즈마카가미』에는 겐初 (建長) 4年( 1252年 )에 同調대불이 만들어졌다는 記錄도 있지만, 木造大佛과 同調大佛과의 關係를 包含해 建立 警衛는 現在 아무것도 確實히 밝혀진 바가 없다. 처음에는 木造대불이 建立되었지만 어떤 事情으로 滅失되어 代身 세워진 것이 只今의 同調大佛이라고 하는 쪽이 맞는 解釋일 것이고 實際로 그것이 定說로 되어 있다.

『아즈마카가미』에 依하면 大佛의 建立을 "조코(?光)"라는 僧侶가 推進했다고 되어있지만, 이 조코에 對해서는 다른 行跡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이 程度의 巨商이 一介 僧侶의 發源, 推進으로 建立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理致에 맞지 않고, 建立에는 어떤 方式으로든 가마쿠라 幕府 가 關與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點에 對해서도 同時代의 史料가 너무나 貧弱하기 때문에 推測의 領域을 벗어나지 못한다.

大佛은 元來 大佛殿 안에 安置되어 있었으나 무로마치 時代 ( 메이오 (明?) 4年( 1495年 )과 메이오 7年( 1498年 ) 2가지 說이 있다.)의 海溢로 建物이 崩壞되어, 그 以後로 只今처럼 바깥에 位置하게 되었다.

  • 가마쿠라 대불이 建立되어 있는 場所는 下世의 옛 地名인 "오사라機(おさらぎ)"였다. 그래서 가마쿠라 大佛에 한해서는 "다이부츠(大?)"로 쓰고 "오사라機"라고 읽는 境遇가 있다. 또한 그 땅에 由來한 家計 中에 "다이부츠"로 쓰고 "오사라機"라고 읽는 姓이 있다. 作家인 오사라機 지로 (大佛次?)는 그런 家計와는 關係없이, 大佛의 뒷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펜 네임으로 했다.

가마쿠라 다이부쓰 [ 編輯 ]

同調 阿彌陀如來 坐像 (國寶) - 높이 約 11미터. 가마쿠라 大佛 로 친숙하다. 單純히 크기뿐만 아니라 가마쿠라 時代 를 代表하는 佛敎 彫刻으로서 國寶로 指定되어 있다. 後世에 많은 報酬가 行해진 나라 (奈良)· 도다이지 (東大寺)의 大佛과 比較해 製作 當時의 모습을 거의 保存하고 있다는 點도 注目할 만하다. 각지고 平面的인 顔面像, 낮은 肉鷄(머리 部分에 혹처럼 살이 올라온 것이나 뼈가 튀어나온 것), 고양이 등처럼 若干 구부정한 姿勢, 몸에 비해 머리 部分이 크다는 點 等에서 가마쿠라 時代 에 流行했던 送風(宋風) 佛像의 特色을 나타내고 있다.

간게쓰도 [ 編輯 ]

간게쓰도(觀月堂, 關月當)는 觀世音菩薩을 모시는 法堂으로 利用되는 建物이다.

간게쓰도는 朝鮮王室에서 金融擔保로 朝鮮拓殖銀行에 提供한 것을, 以後 야마이치 證券의 設立者 스기노 키세이의 邸宅으로 옮겨져 所有하고 있다가 1924年 日本 가나가와縣 카마쿠라市의 査察 고도쿠人(高德院)에 寄贈하였다.

간게쓰도에는 무량수각(無量壽閣)란 懸板이 걸려 있고, ‘辛未年 봄 3, 4月頃 정학교가 썼다’는 記錄이 남아있다. 정학교(1832-1914)는 景福宮 正門인 光化門 懸板을 쓴 名筆이다. 大院君이 景福宮 重建을 完了한 뒤인 1871年頃 無量水閣 懸板을 썼으리라 推定된다. 무량수각은 ‘無量壽經을 담아두던 角이라는 뜻으로, 景福宮 內 明成皇后의 社說 法堂인 원당(願堂)으로 推定되나 排佛崇儒 政策에 따라 1777年 正祖가 社說 法堂을 禁止했기 때문에 正式의 宮闕 圖面에는 關聯된 殿閣의 이름이 없다. 景福宮內의 月宮殿(月宮殿)을 옮긴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元來의 正確한 位置나 用途는 알기 어려운 狀態에 있다.

고토쿠人에서는 朝鮮 王宮에 있던 建物을 1924年에 日本人이 捧納하였다는 說明만 되어있으며 仔細하게 紹介되어 있지 않으며, 建物 大部分은 毁損되어 시멘트가 漆해진 狀態이다.

大韓民國 에서는 建物의 存在가 文化財委員 김정동 목원대학교 建築學科 敎授가 1997年 『日本을 걷는다』라는 冊을 내면서 알려졌으며, 2010年 5月 韓日佛敎系間 合意에 따라 韓國으로 返還되기로 하였으나 아직까지 고토쿠人에 남아 있다. 이에 對해 고토쿠人 關係者는 "韓國 文化財廳이 日本訪問을 繼續 늦추고 있다"며 "빠른 時日內 返還이 이뤄지도록 韓國佛敎界에서 힘써 달라"고 밝혔으며 解體時機를 言及하며 "濕氣가 가장 적은 來年 正月에 解體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며 "正月까지는 반드시 解體해야 한다"고 强하게 返還意思를 表明했다. 그러나 文化財廳 關係者는, 總 4次例에 걸쳐 日本에 다녀왔으나 그 때마다 고도쿠人이 言論 報道와 日本內 反撥 等을 問題 삼아 返還에 關한 論議가 全혀 進陟이 없다고 밝혔다. 文化財廳은 오히려 韓日佛敎間 만남에서는 日本側이 友好的으로 發言하지만 實際로 返還하는 問題에 있어서는 躊躇하고 있음을 言及했다. [1]

기타 [ 編輯 ]

그 밖에 境內에는 도쿠가와 히데타다 (2代 쇼군 )가 所持하고 있었다는 聖觀音賞을 安置한 管名當, 寮舍盧 아키코 (?謝野晶子)의「鎌倉やみほとけなれど?迦牟尼は美男におわす夏木立かな」의 노래 碑石 等이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保管된 寫本” . 2020年 9月 2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9月 10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