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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歷史속 乙酉年엔 어떤 일이…|동아일보

[歷史]歷史속 乙酉年엔 어떤 일이…

  • 入力 2005年 1月 2日 17時 48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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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的으로 乙酉年(乙酉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乙幼年은 1945年 8月 15日의 기쁨으로 ‘光復의 해’로 알려진 만큼 반가운 해다. 그러나 歷史的으로 살펴보면 그리 반가운 해만은 아니었다. 큰 變亂은 적었으나 權力鬪爭으로 얼룩진 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1945年은 光復의 해이지만 그 後 解放政局에서 極烈하게 벌어진 左右 理念對立의 元年이기도 했다. 理解 美國과 蘇聯의 信託統治案을 둘러싼 贊反 鬪爭이 벌어지던 中 12月 30日 國內 民族主義 陣營의 거두였던 古下 宋鎭禹가 暗殺됐고, 이는 以後 赤色테러와 白色테러의 前奏曲이 됐다.

1705年에는 肅宗이 王世子(後날의 警鐘)에게 王位를 讓位하겠다고 發表했다가 飜覆한 ‘乙酉年 登錄(謄錄·記錄)’ 事件이 發生했다. 이 事件은 以後 老論과 少論 聯立政權에 龜裂을 낳았다. 警鐘은 張禧嬪의 所生이었기 때문에 그가 王位에 오르면 第2의 燕山君이 될 것을 두려워한 老論과 그를 同情하던 少論 間에 激烈한 政治鬪爭이 展開됐다. 이 事件은 後날 景宗이 疑問의 죽음을 當하고 登極한 영조가 思悼世子에게 兩位의 뜻을 밝힌 뒤 ‘乙幼年의 登錄을 上告하라(詳細히 檢討하라)’는 傳敎를 내리면서 또 다른 權力鬪爭의 씨앗이 됐다.

1645年에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丙子胡亂으로 請에 끌려갔던 소현世子가 7年 만에 歸國했다가 70日 만에 疑問의 죽음을 當했다. 소현世子는 請에 머무르는 동안 宣敎師 아담 샬을 사귀며 西洋의 신문물에 눈 뜨면서 淸과 가까워졌다. 그의 아버지 仁祖는 이런 아들에게 自身의 王位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들의 面前에 淸나라 順治帝가 膳物한 벼루를 집어던지며 冷待했다. 結局 소현世子는 仁祖의 御衣가 놓은 침을 맞고 4日 만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 밖에 1885年 最初의 西洋式 綜合病院 廣惠院(廣惠院)李 設立됐고, 같은 해에 入國한 宣敎師 아펜젤러에 依해 西洋式 敎育機關 배재學堂이 設立됐다.

乙幼年 主要事件
鳶島 事件
1945年 8·15 光復, 古下 宋鎭禹 被殺
1885年 廣惠院(廣惠院) 設立, 배재學堂 建立, 韓國 最初의 改新敎會人 소래敎會 建立
1765年 洪啓禧 等 ‘海東樂章’ 編纂, 홍대용 ‘燕行錄’ 編纂
1705年 肅宗, 王世子에게 禪位한다고 했다가 飜覆한 乙幼年 登錄 事件
1645年 소현世子의 歸國과 죽음
1285年 一然 ‘三國遺事’ 完成
1225年 몽골 使臣 저고여 歸國 中 被殺돼 몽골 考慮關係 惡化
685年 新羅 9州 5小京 設置

권재현 記者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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