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4·13總選의 公薦 칼자루를 쥔 새누리黨 이한구 公薦管理委員長(71)과 더불어民主黨 김종인 代表(76), 國民의黨 전윤철 公薦管理委員長(77) 等 百戰老將 3人放의 ‘無限疾走’에 汝矣島가 떨고 있다. 이들의 손끝에 向後 4年間 大韓民國 國會의 未來가 달렸다. ‘最惡의 19代 國會 淸算’이란 時代的 課題를 떠안은 韓國 政治의 저승使者들이다. 이 委員長은 김무성 代表와의 衝突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一角에선 公薦 內戰 狀況에서 中心을 잡기보다 系派 葛藤을 擴大 再生産하고 있다는 批判도 나온다. 金 代表는 野黨의 DNA를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나서며 새로운 全盛期를 누리고 있다. 與圈은 그의 거침없는 行步에 唐慌한 氣色이 歷歷하다. 前 委員長은 難破 危機에 놓인 ‘安哲秀號’의 甲板에서 孤軍奮鬪하고 있다. ▼ “一貫性이 밥 먹여주나”… 콕콕 降水 두는 ‘차르’ ▼“代案 있으면 내놔 보라고 해.” 더불어民主黨이 鄭淸來 議員을 비롯해 現役 議員 5名의 公薦 排除를 發表한 10日 午後 金鍾仁 非常對策委員會 代表는 이렇게 말했다. 代表 周邊에서 “言論이 ‘親盧(親盧武鉉) 核心은 못 건드리고 邊죽만 두드린다’고 할지 모른다”고 얘기하자 던진 말이었다.차르 黨에 온 뒤 金 代表는 親盧(親盧武鉉) 霸權主義 淸算과 運動圈 政黨文化 克服 意志를 여러 次例 드러냈다. 文在寅 前 代表 時節의 ‘議員 評價 下位 20% 컷오프(公薦 排除)’에 더해 追加 精密調査를 통한 2次 컷오프 推進을 밝혔다. 黨 안팎에선 이를 親盧와 86그룹(1980年代 學番, 1960年代生) 現役 議員 물갈이用으로 解釋했다. 그랬기에 10日, 11日 發表한 두 次例의 2次 컷오프 內容은 充分치 않다는 輿論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金 代表는 그런 意見을 한마디로 一蹴했다. 金 代表는 지키지 못할 約束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동안 金 代表 發言을 다시 읽어 봐라. 公薦에 對해서는 언제나 當選 可能性을 가장 强調한다고 했다.” 11日 黨 關係者가 한 얘기다. 그는 “金 代表는 ‘代替할 資源이 있어야 代替할 것 아니냐. 野黨의 人的資源은 豐富하지 못하다’고 말해 왔다”고 했다. 金 代表는 實際 여러 次例 言論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當選 可能性이 1次的 課題다”, “물갈이는 人爲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議員을 公薦) 排除만 하고 代替할 사람이 없으면 選擧區 하나를 空짜로 넘겨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에겐 물갈이라는 名分보다 總選 勝利라는 實利가 앞선다. 理念보다 實用을 强調하는 金 代表의 特性이 그대로 드러난다. “一貫性이 무슨 밥 먹여 주는 줄 아느냐”, “이 黨의 正體性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對答하지 못하더라”라며 더민주당의 아픈 데를 콕콕 찌른다. 金 代表가 就任한 뒤 黨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거침없다’는 表現이다. 말과 行動 모두 그렇다. 金 代表는 한 言論 인터뷰에서 “나는 率直히 얘기하는 게 좋다. 옛날에 大統領을 모실 적에도 直說話法으로 얘기했지 間接的으로 돌려 얘기한 적 없다”고 했다. 그동안 보지 못하던 類型의 政治人이 汝矣島에 登場한 셈이다. “누가 얼굴마담 하러 온 줄 아느냐”며 一喝했던 金 代表가 漸漸 ‘차르(皇帝)’가 되어 간다.알파고 더民主黨은 1日 테러防止法 ‘毒素條項’ 修正을 要求하며 始作한 필리버스터(合法的 議事進行 妨害·無制限 討論)를 멈췄다. 金 代表가 李鍾杰 院內代表에게 “4·13總選 敗北하면 院內代表가 책임질 거냐”며 事實上 中斷을 指示했다. 金 代表를 向한 野黨 積極 支持層의 反撥과 非難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床에서 거세게 일었다. 그 다음 날 午前 金 代表는 突然 野圈 統合을 提案했다. 필리버스터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金 代表의 豫想치 못한 한 數에 國民의黨은 右往左往하다 破局에 直面하고 있다. “어…, 어…” 하다 局面은 完全히 바뀌었다. 비슷한 場面을 우리는 10日 이세돌 9段과 알파고의 바둑 第2局에서 目擊했다. 끝내기에서 알파고의 한 數에 프로 9段인 放送 解說家는 “분명한 敗着”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알파고는 勝負處에서 鬼神과 같은 反轉 實力을 보이며 勝利했다. 金 代表도 마치 알파고와 같은 行步를 하고 있다. 더民主黨 內에서는 그의 野圈 統合 提案 ‘한 數’를 보고 “金 代表는 政治 9段 DJ(김대중 前 大統領), YS(김영삼 前 大統領), JP(김종필 前 國務總理)를 넘어서는 政治 10段 같다”는 歎聲이 나왔다. 變則과 失手처럼 보인 알파고의 한 首가 數千萬 番의 演算과 學習의 結果였듯 金 代表의 ‘한 數’도 緻密한 計算에서 던진 會心의 數였다. 野圈 統合 提案을 하기 直前 열린 非公開 非常對策委員會(非對委) 會議에서 金 代表는 提案의 背景과 展望을 얘기했다고 한다. 한 非對委員은 “金 代表는 이 提案으로 國民의黨은 風飛雹散 날 것이라는 趣旨의 말을 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金 代表의 ‘뜻대로’ 11日 國民의黨은 黨이 갈라질 危機에 놓였다.금수저 金 代表가 가장 尊敬하는 人物은 그의 祖父 街人 金炳魯 先生(1887∼1964)이다. 初代 大法院長을 지냈고, 靑年 時節부터 인촌 金性洙, 古下 宋鎭禹, 海公 申翼熙 先生 等과 交遊하며 韓國 野黨 政治史에 한 劃을 그은 人物이다. 金 代表는 1963年 歌人이 民政黨, 國民의黨 創黨을 잇달아 主導하며 野圈 統合과 野圈 大選候補 單一化에 注力할 때 그의 祕書室長 役割을 했다. 當代의 政治人들이 佳人의 집을 드나들며 政局을 構想했고 金 代表는 그 자리에서 政治를 배웠다. 金 代表가 “나도 選擧를 50年 동안 내 나름대로 分析한 사람”이라고 自身 있게 말할 수 있는 根源이 거기에 있다. 金 代表는 데이터를 信奉한다. 더民主黨 公職選擧候補者推薦管理委員會를 構成할 때 輿論調査 專門家로 野圈에 알려진 김헌태 全 社會輿論硏究所腸을 부른 것도 그였다. 한 黨職者는 “金 代表는 그동안 黨에서 이뤄진 輿論調査 結果를 信賴하지 않는 듯했다”고 말했다. 金 代表는 金 前 所長을 情勢分析室長으로도 앉힌 뒤 公薦을 위한 事前 輿論調査 作業을 그에게 모두 맡겼다. 그 結果를 土臺로 2次 컷오프가 이뤄졌다. 그러나 金 代表는 最近 記者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輿論調査만 專門的으로 3年을 硏究했지만 내가 믿는 것은 감(感)이오. 내 감에서 틀린 적은 1988年 總選 때 冠岳 選擧밖에 없어요.” 1988年 總選에서 金 代表는 민정당 候補로 나섰지만 평민당 이해찬 候補에게 졌다. 그의 감에 따르면 이番 4·13總選에서 野黨은 悲觀的이지 않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이길 自信 있으니 悲觀하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豪言했다. 金 代表의 感은 어쩌면 非合理的이다. 그러나 政治는 非合理的이다. 野圈에서는 金 代表를 국민의당 김한길 全 常任選擧對策委員長과 比較하는 사람들이 間或 있다. 둘 다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으고 緻密하게 計算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決定的으로 다른 點이 있다. 金 前 委員長은 2013年 민주당(더民主黨 前身) 代表가 되고 난 뒤 이른바 ‘親盧 淸算’을 着手하지 못했다. 國家情報院 댓글 事件 等 環境的 要因이 컸지만 決定을 내릴 때까지 이것저것 變數를 꼼꼼히 따지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는 分析이 있다. 反面 金 代表의 決定은 非合理的으로 보일 程度로 빠르다. 국민의당 關係者는 “金 代表는 韓國 政治의 金수저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않고 果敢히 勝負를 걸 수 있다”고 解釋했다.어젠다 8日 끝날 것이라던 더民主黨 2次 컷오프(公薦 排除)는 時間이 더 걸리고 있다. 이르면 13日 밤 或은 14日 午前에야 마지막 公薦 排除 對象을 發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親盧 霸權主義와 運動圈 政黨文化 克服’李 總選用으로 쓰이기에 이番 公薦 結果는 未洽한 水準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經濟民主化’라는 武器가 있다. 經濟民主化는 朴槿惠 政府의 經濟 實情을 審判하는 論據日 뿐만 아니라 代案의 性格도 갖고 있다. 그는 黨 안팎 傳統的 支持層의 憂慮를 一蹴하며 주진형 前 한화투자증권 社長, 김현종 前 通商交涉本部長을 迎入했다. 政府 與黨의 ‘安保몰이’도 氣勢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判斷한다. 金 代表는 이미 “經濟 政策에 失敗한 朴槿惠 政府를 向한 戰爭”을 宣布했다. 李哲熙 戰略弘報本部長은 “金 代表의 强點은 政治的 리더십이 아니라 ‘어젠다 리더십’이다. 黨이 政治政黨이 아닌 經濟政黨으로 바뀌었다”며 “그의 登場은 더民主黨이 政治道德的 이슈가 아닌 먹고사는 問題에 集中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金鍾仁, 그는 ‘眞짜’가 될 수 있을까. 4·13總選 結果가 그 答을 줄 것이다.이재명 記者 egija@donga.com·민동용 記者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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