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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察 調査받던 베트남 同胞 通譯하다 始作된 19年 奉仕 人生|週刊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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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察 調査받던 베트남 同胞 通譯하다 始作된 19年 奉仕 人生

歸化 外國人 最初로 ‘서울市 奉仕賞’ 大賞 받은 응우옌 티 땀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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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記者

    island@donga.com

    入力 2023-01-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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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응우옌 티 땀띵 씨는 2003년부터 꾸준히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병원에서 베트남 환자의 통역을 돕는 땀띵 씨. [서울시 제공]

    2022年 ‘서울市 奉仕賞’ 大賞 受賞者로 選定된 응우옌 티 땀띵 氏는 2003年부터 꾸준히 通譯 奉仕를 하고 있다. 寫眞은 病院에서 베트남 患者의 通譯을 돕는 땀띵 氏. [서울市 提供]

    “그때 알았어요. 오직 먹고살려고 韓國으로 온 同胞들이 있다는 걸. 留學生인 저에게는 낯선 世上이었죠.”

    歸化 베트남人 응우옌 티 땀띵(45) 氏는 2003年 京畿 光州警察署로부터 “한 베트남人을 調査하고 있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通譯을 도와달라”는 電話를 받았다. 땀띵 氏가 在學 中이던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을 통해 온 連絡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 調査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곧장 警察署로 向했다. 韓國 滯留 베트남人이 只今처럼 많지 않던 時節이라 ‘내가 拒絶하면 도와줄 사람이 別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具體的인 事件 內容은 밝힐 수 없지만 韓國 農家에 일하러 온 베트남 勞動者와 雇用主 사이에 甚한 葛藤이 있었어요. 工夫하러 韓國에 온 저와 달리 劣惡한 處地에 놓인 베트남人도 있다는 걸 알게 된 瞬間이었죠.”

    “나는 韓國에서 받은 게 많은 사람”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시청 본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시 봉사상 시상식에서 땀띵 씨가 수상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2年 11月 15日 서울 中區 視聽 本廳 多目的홀에서 열린 서울市 奉仕賞 施賞式에서 땀띵 氏가 受賞하고 있다. [서울市 提供]

    ‘通譯 奉仕를 繼續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警察署로 달려가기를 反復한 時間은 어느덧 19年이 됐다. 韓國語가 서투른 베트남人을 앞에 두고 곤란해하던 韓國 警察官의 얼굴도 눈에 밟혔다. 땀띵 氏는 “大學院 全額 奬學金도 그렇고 韓國에 와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兩쪽 모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週刊東亞’와 書面 인터뷰에서 말했다. 서울市는 이 같은 땀띵 氏의 勞苦를 致賀하고자 11月 14日 그를 2022年 ‘서울市 奉仕賞’ 大賞 受賞者로 選定했다. 歸化 外國人이 이 賞을 받은 건 1989年 詩想을 始作한 以來 처음이다.

    “저보다 더 대단한 奉仕를 하는 분이 많다는 걸 알기에 부끄러워요. 작은 일이지만 꾸준히 奉仕해왔다는 意味로 준 ‘皆勤賞’이라고 생각해요.”



    留學生으로 韓國에 온 땀띵 氏는 2017年 歸化를 擇했다. 元來대로라면 碩士學位를 끝마친 2004年 故鄕 하노이로 돌아가야 했다. 出國 前 韓國에서 짧게나마 經驗을 쌓으려 自動車 部品을 輸出하는 會社에 就業했는데, 只今 이 業體에서 18年째 勤務하고 있다. 現在 海外營業팀 次長인 그는 入社 當時 會社의 唯一한 外國人이자 外國語 能通者였다. 그는 “海外 出張이 잦은데 그때마다 비자를 發給받아야 해 不便했다”며 “무엇보다 일하면서 韓國에 繼續 살아야겠다는 確信이 커져 歸化하게 됐다”고 말했다.

    “多文化家庭 위한 奉仕하고파”

    땀띵 氏는 結婚과 出産을 하면서도 奉仕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2017年 歸化와 함께 親舊로 지내던 호찌민 出身 男性과 結婚했다. 이듬해에는 딸 응우옌 하아잉을 낳았다. 일과 育兒를 竝行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渦中에도 退勤 後, 週末 等 個人 時間을 쪼개 奉仕를 繼續했다. 現在도 警察 調査 通譯은 勿論, 大學院生 때부터 因緣을 이어온 서울 城東區 外國人勞動者센터에서 通飜譯을 돕고 있다.

    “자주 가던 아시안 食料品店 社長님 紹介로 (外國人勞動者센터에서) 奉仕를 始作하게 됐어요. 學生 때는 센터에 찾아온 外國人을 對象으로 韓國語·컴퓨터 敎育을 하고 勞務 相談도 하는 等 다양한 活動을 했어요. 只今은 會社 다니면서 5歲 딸까지 키우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通飜譯 爲主로 도와드리고 있어요.”

    大學院生 때부터 通譯 奉仕를 해온 그는 말을 傳하는 過程에서 通譯을 받는 사람의 內密한 事情을 잘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記憶에 남는 事緣도 많다. 大學院生 時節 韓國善意福祉財團의 ‘開發途上國 心臟病 어린이를 위한 無料 手術’ 事業에서 通譯을 맡았을 때가 代表的이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 心臟病으로 얼마나 힘들게 生活했는지, 어떻게 機會를 잡아 韓國에 오게 됐는지 等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아이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事情을 듣다 그 家族과 親해져 只今까지 連絡하며 지내요. 아이는 手術받은 뒤 韓國에 對한 關心이 커져 大學도 韓醫學科로 進學했죠. 이제는 어엿한 靑年이 돼 베트남에서 韓醫師로 일하는데 아무래도 그 親舊가 가장 記憶에 남아요.”

    땀띵 氏의 서울市 奉仕賞 受賞 消息에 가장 먼저 祝賀를 傳해온 곳은 國內 滯留 베트남人 커뮤니티다. “베트남인에 對한 認識 改善에 앞장서줘 고맙다”는 말이 땀띵 氏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外國人 或은 歸化者도 韓國에서 奉仕하며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뭉클했다”며 “딸이 좀 더 커서 時間的 餘裕가 생기면 多文化家庭을 위한 奉仕에도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結婚移住女性이 韓國에 많아졌어요. 多文化家庭에서 發生하는 葛藤은 結局 言語와 文化 差異에서 온다는 걸 警察署에서 자주 느껴요. 韓國人 男便에게는 베트남 文化를 알려주고 베트남人 아내에게는 韓國語와 韓國 文化를 가르쳐주는 無料 授業을 해보고 싶어요. 言語에 能通한 外國人이 奉仕할 機會가 正말 많이 늘었기 때문에 저뿐 아니라 다른 外國人, 歸化者도 이런 일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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