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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漫으로 包裝된 女性 搾取|週刊東亞

週刊東亞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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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作家의 音談樂談(音談樂談)

浪漫으로 包裝된 女性 搾取

1960, 70年代 그루피 文化

  • 大衆音樂評論家

    noisepop@daum.net

    入力 2019-09-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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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한 장면. [IMdB]

    映畫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한 場面. [IMdB]

    浪漫은 過去의 다른 이름이다. 現在는 容認되지 않지만 過去에는 비록 손가락질을 받았어도 어쨌든 일어나곤 했던 일들에 對한 鋪裝이다. 現實의 有不利를 따지지 않고 卽刻的인 感情과 衝動에 依해 行動을 앞세우던 時代, 미디어가 發達하지 않아 行動을 隱蔽할 수 있던 時代, 家家戶戶의 이름과 電話番號가 두툼한 冊으로 묶여 집마다 備置돼 있던 匿名의 時代, 只今으로서는 想像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에서나 일어나곤 했다. 

    應援하는 野球팀이 競技에서 졌다고 相對팀 버스를 불태우고, 짝사랑하는 女子를 尾行해 알아낸 집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敎室 끝에서 끝까지 學生의 따귀를 때리던 것들이 ‘그때는 그랬지’라며 가십거리로 消耗된다. 時間의 洗濯所를 거쳐 浪漫이라는 이름으로 再誕生한다. 

    音樂界度 마찬가지다. 過去 活動했던 歌手들의 이야기에 共通的으로 登場하는 素材는 不合理한 精算 시스템이다. 著作權도, 印稅 槪念도 稀薄하던 時代의 王은 製作者였다. 契約金 한 푼 안 주고 “音盤 내줄게” 한마디로 歌手를 掌握한 後 音盤이 잘 팔리면 車 한 臺 뽑아줬다거나, 大舶이 나면 아파트 한 채 사줬다거나 하는 式의 後日談은 不知其數다. 

    著作權 槪念이 確立된 後에도 事業이 어려워졌다는 理由로 歌手한테 한 마디 안 하고 版權을 팔아넘겨 精算을 제대로 받지 못한 歌手도 많다. 訴訟까지 갔지만 權利關係를 證明할 수 있는 資料가 남아 있지 않아 속만 끓인 音樂人도 많다. 時代를 超越해 尊敬받았음에도 이런 一連의 일들이 남긴 傷處 탓에 어느 瞬間 創作을 접어버린 音樂人들의 事例도 種種 들려온다. 被害者는 絶對 이를 美化하지 않는다. 오직 加害者만이 包裝한다. 浪漫이라는 이름으로. 그때는 그랬지, 라며.

    록 스타와 하룻밤을 勳章처럼 여긴 少女들

    1970년대 록밴드와 그루피를 그린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한장면과
197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된 세이블 스타와 영국의 록밴드 슬레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힐, 로리 매틱스.
(왼쪽부터) [IMdB, gettyimages]

    1970年代 록밴드와 그루피를 그린 映畫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한場面과 1973年 美國 로스앤젤레스에서 撮影된 세이블 스타와 英國의 록밴드 瑟레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힐, 로리 매틱스. (왼쪽부터) [IMdB, gettyimages]

    어두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자. 스타의 權力이 只今에 비할 바 없이 컸던 곳과 時間, 卽 아날로그 時代 팝音樂界의 에피소드들이다. 캐머런 크로 監督의 映畫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는 1970年代, 록이 音樂의 中心에 우뚝 서 있던 時代의 裏面을 보여준다. 映畫는 音樂에 빠진 한 少年이 迂餘曲折 끝에 當代 最高 밴드의 全美 투어에 同行하는 過程에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그 核心 素材 가운데 하나가 그루피 文化다. 



    백스테이지 앞에서 기다렸다 公演場 가드의 ‘簡擇’을 받아 待機室로 간 後 뒤풀이는 勿論, 하룻밤을 같이 보낸 이들을 그루피라고 불렀다. 그루피는 그 나름의 世界를 만들었다. 自身이 누구하고 잤는지를 勳章처럼 달고 다녔다. 그들의 자랑은 그저 뜬所聞에 머물지 않고 種種 옐로 저널의 主要 素材가 되곤 했다. 勳章을 주렁주렁 달았던 有名 그루피는 自敍傳도 냈다. 그들의 證言과 資料는 고스란히 남아 그 ‘浪漫의 時代’의 主席이 됐다. 

    1970年代 美國 캘리포니아는 그루피가 말 그대로 猖獗했던 곳이다. 1960年代 히피 文化의 遺産이었을 것이다. 그中에서도 가장 有名한 人物이 로리 매틱스다. 10代 中盤밖에 안 돼 ‘베이비 그루피’로 불린 集團의 一員이던 그가 거쳐 간 巨物 록 스타는 한둘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보위,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지미 페이지는 그와의 關係를 바탕으로 1975年 앨범 ‘Physical Graffiti’에 실린 ‘Sick Again’을 썼다. 

    매틱스의 親舊이자 그를 그루피系로 引導한 세이블 스타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비 그루피의 리더였던 그는 록 스타들을 誘惑했을 뿐 아니라 믹 재거의 아내에게 是非를 걸어 口舌에 오르는 것도 躊躇하지 않았다. 로드 스튜어트, 마크 볼란(티렉스), 앨리스 쿠퍼, 그리고 믹 재거 等 로스앤젤레스(LA)를 訪問한 록 스타와 어울렸으며, 1970年代 펑크의 아버지로 불린 李芑 팝과는 自身의 女同生과 셋이 함께 잠자리를 하기도 했다. 또한 펑크 록 스타 조니 선더스와 愛情의 逃避 行脚까지 벌였다. 

    2015年 美國에서 미투(Me Too) 運動이 始作됐을 때 매틱스는 인터뷰를 통해 데이비드 寶位를 처음 만난 때를 回想했다. “保衛는 寢室에서 化粧室로 간 後 걸치고 있던 기모노를 벗었다. 浴槽에 물을 가득 채운 後 自己를 씻겨달라고 했다. 勿論 나는 그렇게 했고. 그 後 그는 나를 寢室로 데려가 점잖게 내 옷을 벗긴 後 내 첫 經驗을 가져갔다.” 이 인터뷰는 미투 運動 烈風과 함께 再照明된 過去 文化藝術界의 一面을 보여준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미투 運動이 過去의 自身을 成熟하고 批判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告白했다.

    미투 運動으로 비춰진 그루피의 實體

    낸시 스펑겐(왼쪽)과 시드 비셔스.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시드와 낸시’의 한 장면. [IMdB, gettyimages]

    낸시 스펑겐(왼쪽)과 시드 비셔스. 그들의 이야기를 映畫化한 ‘시드와 낸시’의 한 場面. [IMdB, gettyimages]

    通念이 바뀐 時代에까지 살아남아 自身의 過去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나마 多幸이다. 有名 그루피는 大部分 끝이 좋지 못했다. 꽃다운 時節 痲藥과 알코올, 暴力으로 點綴된 時間을 보내다 일찍 世上을 떠났다. 게리 올드먼의 첫 主演作 ‘시드와 낸시’의 實際 모델이던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 그리고 그루피 出身으로 그의 戀人이던 낸시 스펑겐이 代表的 事例다. 

    1977年 英國 런던을 中心으로 끓어올랐던 펑크는 하나의 運動으로 불릴 만큼 當時 언더그라운드를 象徵한 장르이자 文化였다. 갑작스레 닥친 英國의 不況으로 來日이 없는 失業者인 白人 靑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들은 其他 코드 3個와 無政府的 歌詞로 憤怒의 騷音을 만들어냈다. 個中에는 더 클래시처럼 ‘希望 없는 世上에서 스스로 希望이 되겠다’고 외친 이들도 있었지만 大部分 對案 없는 憤怒를 쏟아냈다. 

    펑크 그루피를 代表했던 스펑겐 亦是 10臺 中後半에 그루피 世界에 발을 들였다. 痲藥 값을 堪當하고자 몸을 팔던 그의 마지막 戀人이 펑크족 中에서도 가장 막나갔던, 하지만 가장 잘생겼던 시드 비셔스였다. 섹스 피스톨스의 美國 公演 때 만나 눈이 맞았고, 2年間 同居 生活 끝에 호텔에서 變死體로 發見됐다. 어쨌든 映畫에 그 짧은 一代記가 담겼으니 그루피의 歷史에 이름 한 줄을 남긴 셈이다. 

    끝이야 어찌됐든, 有名 그루피는 共通點이 있다. 大部分 成長 環境이 좋지 못했다. 그 缺乏을 有名人과 交際로 풀려 했다. 록 스타들은 그런 그들을 利用했다. 勿論 서로 즐겼다고 回想할 것이다. 그때는 그랬을지 모른다. 世上이 바뀌었다. 많이 바뀌었다. 남은 者와 떠난 者, 모두에게 다시 한 番 묻는다면 如前히 그랬다고 말할 수 있는 者가 果然 얼마나 될까. 

    매틱스는 말했다. “當時에는 그 關係들이 搾取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미투 運動이 그때에 對한 다른 視角을 가져다 줬다.” 實際로 그랬다. 不過 몇 年 前까지 그루피 文化는 흔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只今은 아니다. 過去 浪漫이 아니다. 미투 運動, 그리고 性政治家 바꾼 世上의 認識이다. 앞으로의 音樂이, 藝術이 반드시 念頭에 둬야 할 變化된 認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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