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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世勳 “서울을 古宮 魅力이 담긴 定員都市로 만들겠다”|주간동아

週刊東亞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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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世勳 “서울을 古宮 魅力이 담긴 定員都市로 만들겠다”

“서울 文化財와 歷史 復元해 市民들에게 돌려주는 市場이라 子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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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記者

    display@donga.com

    入力 2023-11-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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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월 13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吳世勳 서울市長이 11月 13日 서울市廳 執務室에서 週刊東亞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記者]

    “吳世勳 하면 ‘開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요, 저야말로 서울 文化財와 歷史를 ‘復元’하고 ‘保存’해 市民들에게 돌려드리는 市場이라 自負합니다.”

    吳世勳 서울市長은 11月 13日 ‘週刊東亞’와 인터뷰에서 文化財 復元에 對한 所信을 밝히며 이같이 强調했다. “都市開發에만 關心 있다”는 一角의 評價에 同意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實際로 吳 市場은 2006年 民選 4期로 서울施政을 맡은 後 15年 任期 동안 꾸준히 文化財 復元 政策을 推進해왔다. 興仁之門에서 光化門으로, 光化門에서 다시 崇禮門으로 이어지는 서울市의 ‘役事축 事業’은 이러한 努力의 結實이다(지도 參照).

    吳 市長이 꿈꾸는 서울은 ‘定員都市’다. 그가 서울 文化財 復元에 關心을 쏟는 理由도 이와 맞닿아 있다. 吳 市場은 “우리 古宮 亦是 一種의 定員으로 볼 수 있다”며 “市民들이 歷史 空間을 거닐면서 歷史性을 마음껏 皮膚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을 綠地生態와 古宮 魅力이 담긴 定員都市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吳 市場은 文化財 復元에서 ‘디자인’을 特히 强調했다. “歷史性을 主題로 文化財가 돋보이게 하는 것이 重要하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文化財廳과 視角差가 있다는 吳 市場은 “文化財廳이 文化財 復元에 關心이 많고 關聯 分野에 專門性이 있는 것은 事實”이라면서도 “무엇이 文化財를 돋보이게 하는지 等 디자인 感覺은 相對的으로 不足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興仁之門 復元, 가장 자랑스러워”

    서울 文化財 復元에 힘을 쏟고 있는데 어떤 理由에서인가.

    “歷史를 바라보는 視角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歷史 自體의 事實關係에 穿鑿하는 視角이 있고, 歷史를 끊임없이 再解釋하며 意味를 附與하는 視角도 있다. 相反되는 이 두 視角이 때로는 衝突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는 永遠한 論爭거리다. 이 가운데 歷史를 客觀的이고 科學的으로 밝혀내 復元하는 作業은 文化財廳의 任務다. 서울市長으로서 해야 할 일은 後者라고 본다. 2006年 就任 後부터 서울의 큰 資産 中 하나인 歷史 文化財 復元에 集中해온 理由다. 서울의 本모습을 市民과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都市發展은 勿論, 市民의 自負心과 連帶意識을 强化하는 데도 꼭 必要한 文化的 資産이라는 確信이 있었다.”



    45歲에 서울市長이 됐다. 그때부터 文化財 復元과 周邊 景觀 整備에 關心을 갖게 된 理由는 무엇인가.

    “‘어떻게 그 나이에 文化財에 關心이 많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正確히 말하자면 都市디자인에 關心이 많다. 都市디자인도 여러 角度에서 할 수 있다. 멋에 重點을 둘 수도 있고, 재미에 重點을 둘 수도 있다. 後者를 펀(fun)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每日 反復되는 日常 탓에 ‘삶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都市民들에게 입가에 슬며시 微笑가 지어지도록 生活 속에서 잔잔한 재미를 주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歷史性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인은 都市民에게 歷史에 基盤한 自負心을 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오랜 時間 하나하나 구슬을 만드는 作業을 해왔다. 個中에는 10年 以上 공들인 作品들도 있다.”

    文化財 復元 行步는 어디서 始作됐다고 볼 수 있나.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興仁之門 隣近을 復元한 일이다. 서울 文化財 復元의 始作點이기도 하다. (民選 4期) 當時 東大門 一帶가 훌륭한 歷史 文化財와 秀麗한 自然環境을 갖췄음에도 市民의 接近이 어렵고 周邊이 落後됐다는 事實을 알게 됐다. 디자인에서는 背景이 宏壯히 重要하다. 背景을 새롭게 디자인하면 文化財의 歷史性이 돋보이면서도 住民들이 自負心을 느낄 수 있다. 只今은 사람들의 記憶에서 잊혔지만, 東大門 一帶에 ‘東大門運動場’과 ‘이대 동대문병원’이 있었다. 2009年 10月 東大門運動場 터에 ‘東大門 歷史文化公園’을 開場했고, 2010年 5月 이대 동대문병원 터 一帶에 ‘興仁之門 公園’을 完工했다. 두 地域의 綠地公園化는 結果的으로 東大門의 景觀 變化와 發展을 이끌었다. 特히 興仁之門 公園의 境遇 施設物을 最少化하고 駱山 서울 城郭과 連繫함으로써 都市 한복판에서 散策과 트레킹은 勿論, 休息도 取할 수 있는 空間으로 자리매김했다.”

    歷史性 次元에서는 어떤가.

    “歷史性 觀點에서도 快擧였다. 過去 日帝가 우리 歷史 遺物 위에 東大門運動場을 지었다. 當時 터를 말끔히 치우지 않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建物을 올렸다. 東大門運動場을 허물고 나니 城郭 터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離間水門’ 等 歷史 遺跡들이 나왔다. 이 歷史 遺跡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안팎으로 保存한 狀態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여러 行事가 열리다 보니 이곳에 關心이 쏠리는 傾向이 있는데, 뒤쪽으로 가보면 意味 있는 歷史 空間이 그대로 保存돼 있다. 興仁之門 復元은 昌慶宮 復元과 함께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作業이다.”

    “宗廟 復元, 運命과도 같은 일”

    서순라길 일대(위)와 서울돈화문국악당. [서울관광재단 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 제공]

    鉏巡邏길 一帶(危)와 서울敦化門國樂堂. [서울觀光財團 提供, 서울敦化門國樂堂 提供]

    昌德宮 復元은 어땠나. 中間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昌德宮은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에 登載된, 서울市民이 가장 좋아하는 宮이자 代表的인 夜間 名所다. 요즘 世代는 잘 모를 수 있지만 過去 昌德宮 앞에 注油所가 2個 있었다. 이 注油所들이 昌德宮 周邊 景觀을 해쳐 마음이 아팠는데 다른 사람들은 크게 神經 쓰지 않더라. 이 空間을 復元하려면 먼저 두 注油所 敷地를 買入해야 했다. 알고 봤더니 當時 이화여대 總長이던 이배용 國家敎育委員長의 父親이 注油所 主人이었다. 感謝하게도 이 委員長의 父親이 昌德宮 復元에 協助했다. 이 委員長이 알게 모르게 父親을 說得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德分에 2009年 注油所 2個 敷地를 買入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 專門 國樂公演場人 ‘서울敦化門國樂堂’과 國內 最初 民謠博物館인 ‘서울우리소리博物館’을 지을 수 있었다. 애當初 이 자리는 우리 音樂과 關聯된 施設이 많은 곳이었다.”

    最近 젊은 層 사이에서 昌德宮 隣近이 핫하다. 最近 昌德宮 樂善齋 건너便에 있는 西巡邏길에 가봤는데 雰圍氣가 많이 바뀌었더라.

    “鉏巡邏길은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인 昌德宮과 宗廟를 잇는 都心 속 核心 가로다. 宗廟 돌담을 따라 늘어선 韻致 있는 空間인데, 數十 年間 正妃가 안 된 狀態로 버려져 있다 보니 밤에 혼자 걷기 무서울 程度로 陰濕한 雰圍氣를 풍겼다. 이에 路邊駐車場을 없애고 次로 幅을 縮小해 서울을 代表하는 걷고 싶은 거리로 造成했다. 宗廟 雰圍氣에 어울리도록 바닥에 널찍한 돌을 깔고 나무도 많이 심었다. 只今은 숲에서 散策한다는 느낌이 들 程度다. 鉏巡邏길 隣近이 힙한 카페村이 됐더라.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겨 보기에 좋았다.”

    昌慶宮과 宗廟를 잇는 ‘율곡로’를 訪問하는 젊은 層도 늘었다.

    “昌慶宮-宗廟 連結 復元 事業을 2007年에 始作했다. 알다시피 過去 日本이 宗廟와 昌慶宮을 많이 毁損했다. 只今은 옛 모습을 復元했지만, 過去에는 昌慶宮 안에 動物園이 있었다. 宗廟는 韓國 最初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인 만큼 保存과 復元을 마쳐 市民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 運命과도 같은 일이었다. 2007年 關聯 事業을 始作했다. 2011年 서울市를 떠난 後 10年 만에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工事가 마무리되지 않았더라. 다시 서울市로 돌아와 내 손으로 直接 마무리할 수 있어 뿌듯했다. 日帝가 없앤 昌慶宮-宗廟 宮闕 담牆과 北訊問을 最大限 原形에 가깝게 復元했다. 復元 過程에서 發掘된 옛 宗廟 담牆 石材와 基礎石을 30% 以上 재사용하기도 했다.”

    隣近 ‘열린송현 綠地廣場’도 하나의 文化 軸으로 봐도 될까.

    “열린송현 綠地廣場은 昌德宮과 宗廟, 仁寺洞, 景福宮 等을 잇는 文化 連結고리다. 서울을 代表하는 文化 軸으로 자리 잡고 있다. 松峴洞 敷地(3萬6903㎡)는 서울廣場의 3倍 規模다. 敷地를 둘러싸고 있던 4m 障壁을 1.2m 돌담으로 낮췄고, 담牆 안에 1萬㎡ 넓이의 中央잔디廣場을 造成해 市民들에게 公開했다. ‘背景 디자인’에서 重要한 것은 空間을 비우는 것이다. 앞서 東大門 歷史文化公園 隣近을 비워서 디자인했듯이 이곳도 비움으로 背景을 디자인했다.”

    廣場 敷地에 ‘李承晩 大統領 記念館’과 ‘李健熙寄贈館’이 들어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確定된 것은 아니다. 最近 李承晩記念館 建立推進委員會가 訪問했는데 ‘輿論이 모이면 積極 檢討하겠다’고 答했다. 두 建築物이 들어오더라도 北岳山 景觀을 해치지 않도록 할 計劃이다. 中心을 비우는 디자인 原則은 그대로 살릴 것이다.”

    “景福宮, 紫禁城 못지않아”

    10월 15일을 기점으로 광화문 월대가 복원됐다. [서울시 제공]

    10月 15日을 起點으로 光化門 月臺가 復元됐다. [서울市 提供]

    10月 15日 光化門 月臺가 復元됐다. 이를 두고 “綠色과 歷史를 中心으로 그려오던 都心 空間 디자인에 畫龍點睛을 찍은 날”이라고 評價했다.

    “歷史 遺跡을 最大限 活用해 都市를 돋보이게 하는 空間을 만들고, 國民으로 하여금 歷史에 自負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 都市 디자인의 大原則이다. 中國 紫禁城을 보면서 ‘月臺를 復元한다면 景福宮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歷史性의 威容을 뽐낼 수 있는 空間이라는 생각이 들어 月臺 復元에 同意했다. 當初 文化財廳이 月臺 復元을 提案했지만 서울市는 交通 問題 때문에 망설였다. 事實上 拒絶했던 셈인데 果敢하게 受容한 것이다. 서울 市民에게 罪悚한 部分도 있다. 하지만 直線 車線을 曲線 車線으로 바꿨을 뿐 車線 數를 줄이지는 않았다.”

    光化門 月臺를 두고 “歷史가 깊지 않은데 굳이 復元해야 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高宗에 對한 歷史的 評價가 否定的인 만큼 ‘이 時期에 지어진 施設物을 復元할 必要가 있느냐’는 指摘인데 說得力이 떨어진다. 그런 觀點에서라면 서울市廳 앞 서울圖書官은 日帝가 만든 過去 市廳 建物이라 허무는 것이 맞다. 왜 다른 잣대가 適用되는지 모르겠다. 歷史를 보는 눈은 2個다. 있는 그대로 後孫에게 傳達하는 것도 必要하지만, 돋보이게 할 必要도 있다. 月臺가 만들어짐으로써 景福宮 位相이 完全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歷史를 스스로 縮小하고 歪曲할 必要는 없다. 여러 關聯 文獻 等에 따르면 朝鮮 前期에도 月臺와 類似한 施設物이 있었을 것으로 推定된다고 한다.”

    앞서 施行된 光化門廣場 再構造化 亦是 큰 關心을 받았다.

    “就任 첫해인 2006年 光化門廣場 造成 計劃을 發表했고, 2009年 市民에게 開放했다. 當時 ‘韓國의 샹젤리제’로 불리며 國內外的으로 關心을 받았다. 그런데 後날 ‘市民들이 쉴 空間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苦悶이 깊어졌다. 이에 旣存 光化門廣場에 對한 市民과 觀光客의 呼應이 높았음에도 歷史文化廣場의 價値와 市民 休息空間의 役割을 同時에 滿足할 수 있도록 再構造化를 推進했다. 綠地 空間을 3.3倍 늘리는 等 光化門廣場의 休息 機能을 强化했다. 아이들이 光化門廣場에서 幸福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水景施設度 늘렸다. 光化門 月臺까지 復元되면서 歷史性까지 强化된 새로운 光化門廣場이 誕生했다.”

    漢陽都城 유네스코 登載 努力

    서울 漢陽都城은 서울을 代表하는 文化遺産이다. 過去 서울市長이 使用하던 官司가 城郭 위에 있었고, 吳 市長은 民選 4期 在任 時節 漢陽都城을 念頭에 두고 公館 移轉을 檢討했다. 現在 該當 建物은 歷代 漢陽都城을 알리는 案內센터로 活用되고 있다. 吳 市長의 努力으로 2009年 國際記念物遺跡協議會 韓國委員會 學術大會에서 漢陽都城의 文化財的 價値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世界遺産 登載 節次를 밟기 始作했다. 漢陽都城이 유네스코에 登載되면 서울은 全 世界 首都 中 唯一하게 都城을 世界遺産으로 保有한 都市가 된다.

    吳 市長 個人的으로도 아쉬움이 있을 법했다. 中間에 市井에서 물러나면서 漢陽都城의 世界遺産 登載申請書가 朴元淳 前 서울市長 任期인 2016年 提出됐기 때문이다. 吳 市場은 “유네스코 登載를 推進했는데 정작 그 結實은 前任 市長에게 돌아갔다. 心情이 어땠나”라는 記者의 물음에 “重要한 點은 現在 유네스코 暫定目錄에 登載된 漢陽都城이 實際로 指定될 때까지 繼續해서 努力하는 것이지, 누가 推進했고 누가 結實을 가져갔느냐가 아니다”라고 答했다.

    “文化財 돋보이게 하는 方法 다양해”

    只今도 文化財 復元과 關聯해 政府와 協議를 持續하고 있나. 最近 政府가 ‘國家象徵空間 프로젝트’를 發表했는데, 이 中 國家象徵가로(光化門-崇禮門-서울驛-龍山-漢江) 造成事業 主體는 事實上 서울市 아닌가.

    “國家象徵가로 造成事業은 2010年 서울市와 國土交通部가 共同 推進한 ‘國家象徵거리 造成 計劃’에서 出發했다. 올해 9月 11日 政府 國家建築政策委員會가 國家象徵空間 造成 計劃을 發表했는데, 이 가운데 光化門-崇禮門-서울驛-龍山-漢江을 잇는 國家象徵가로 事業을 서울市가 全額 是非로 推進한다. 이미 지난해 프랑스 파리 出張에서 國歌象徵가로 造成 計劃을 밝힌 바 있다. 國家象徵가로가 造成되면 國家 正體性과 歷史性은 勿論, 서울의 未來 비전을 全 世界에 알리는 核心 據點이 될 것이다.”

    올해 初 ‘서울韓屋 4.0 再創造’ 計劃을 發表했다. 2008年에도 ‘韓屋宣言’을 했는데, 韓屋에 關心이 많은 理由는 무엇인가.

    “韓屋이야말로 서울 固有의 歷史性과 傳統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所重한 文化資産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恩平韓屋마을’이라는 成功 事例를 바탕으로 서울에 韓屋마을 10餘 곳을 만들겠다고 發表했다. 移轉 事業과 比較해 改善된 側面도 있다. 以前에는 傳統 樣式에 따라 韓屋을 짓다 보니 居住者가 生活하기에 不便한 側面이 있었다. 이番 서울韓屋 4.0 再創造 宣言을 통해 關聯 가이드라인을 緩和했다. 큰 틀에서 韓屋 外觀을 갖췄다면 生活 便宜性을 높이는 式으로 지어졌더라도 韓屋으로 看做하게 했다. 서울 곳곳에 크고 작은 韓屋마을을 만들어 住居 歷史性을 이어갈 計劃이다.”

    類似한 脈絡에서 最近 文化財 周邊 再整備 規定을 合理的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周邊 地域 슬럼化度 큰 問題인데, 文化財廳과 따로 協議하고 있나.

    “5月 최응천 文化財廳長과 만나 文化財 規制 緩和 等에 對해 意見을 나눴다. 서울市 立場은 文化財에 對한 一方的 規制를 緩和해 都市 슬럼化 發生을 막고, 都心 內 文化財 價値를 더욱 높여 市民들이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誘導하는 것이다. 文化財廳의 立場도 一見 理解가 된다. 文化財 周邊部가 開發되면서 文化財가 矮小해 보일 수 있어 이를 憂慮하는 것이다. 하지만 文化財를 돋보이게 하는 方法은 다양하다. 앞서 말한 興仁之門, 昌德宮 事例만 보더라도 周邊 環境이 快適하게 整備됐을 때 오히려 歷史遺跡 價値가 높아진다. 美國 뉴욕 그랜드센트럴驛이나 日本 도쿄驛 近處 摩天樓 亦是 類似한 事例다. 單純 保存을 넘어선, ‘歷史 尊重의 都市’를 造成하기 위해 文化財廳과 協議를 이어가겠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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