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辱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靑春은 그래도 幸福하다|신동아

辱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靑春은 그래도 幸福하다

베이비부머의 슬픈 人生報告書 낸 송호근

  • 송홍근 記者 │carrot@donga.com

    入力 2013-04-19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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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歸路(歸路)에서 베이비부머가 묻는다,
    • “아픈 靑春은 그래도 幸福하지 않으냐”고.
    •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드는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 허리가 휜다. 虛無가 掩襲한다.
    • 아내는 어느덧 ‘낯익은 他人’.
    • 누가 이 險한 世上에 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 슬프다. 하지만 울지 않는다.
    • 아니, 소리내 울지 못한다.
    욕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
    4月 1日 言論界 先輩가 史跡으로 쓴 글을 읽었다.

    “쓰는 놈(記者)을 生業으로 삼은 지 20年이 더 지났다. 告發과 暴露가 專門인 社會部 記者질을 오래해선지 情緖가 家門 논바닥처럼 메말랐다. 니체가 말한 無理(群衆)의 道德에 同參하는 卑屈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時流와 大勢에 迎合해 强者에게 阿附하는 者들과 한 줌의 權力을 쥐고 威勢를 떠는 者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느라 내게 주어진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줄도 몰랐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줄도 몰랐다”는 文章이 아프게 다가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튿날 光化門 교보문고에서 송호근 서울대 社會學科 敎授가 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샀다. ‘東亞日報’ 書評이 腦裏에 남아서다.

    “書評 擔當 記者로 最近 1年間 읽은 冊 가운데 가장 슬프다. 韓國 社會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問題이자 當場 먹고사는 목숨이 달린 問題이기 때문이리라. 要約하면 이렇다. 靑春만 아프냐? 50代는 더 아프다. 다만 소리 내 울지 않을 뿐….”(‘東亞日報’ 3月 8日子 參照).

    冊은 한달음에 읽혔다.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드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50代의 삶이 ‘날것’으로 담겨 있었다. 공교롭게도 冊에는 ‘情緖가 家門 논바닥처럼 메말랐다’는, 앞서 言及한 先輩의 吐露도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交友해왔다는 것을 4月 11日 宋 敎授를 直接 만나고 서야 알았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宋 敎授가 多樣한 背景을 지닌 베이비부머 10名을 深層 인터뷰한 後 自身의 이야기와 함께 엮은 ‘이 時代 50代 人生 報告書’다. 社會學 理論과 槪念은 낮은 水準에서만 들어가 있다. 글쓴이의 個人事를 씨줄, 他人의 個人事를 날줄로 삼아 엮은 ‘社會史’다. 50代에게는 ‘同時代의 記錄’으로 읽히고, 아랫世代에는 ‘先輩 世代의 時代社’로 읽힌다.

    不惑(不惑)의 記者는 베이비부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苦悶을 안고 있는지, 只今 어느 地點에 서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大統領選擧 直後인 지난해 12月 21日 테니스클럽에서 運動을 함께 하는 20代 後半 女性이 記者에게 이렇게 말했다.

    “50代 投票率 보셨어요? 그 꼰대들 미친 거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그렇게 寒心하게 늙지 마세요, 제발.”

    20代는 50代의 子息 世代다. ‘버르장머리 없이…’라는 비아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피식 웃고 말았다. 그女 亦是 ‘아버지 世代’가 걸어온 삶의 軌跡과 오늘 그들의 苦悶을 제대로 알 理가 없다.

    社說(辭說)李 길었다. 只今부터 主人公 宋 敎授 얘기를 들어보자. 1955年 11月(陰曆) 生인 그는 1955~1963年生을 가리키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맏兄 格이다.

    ▼ 李 冊, 누구 읽으라고 썼습니까.

    “50代가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冊을 잘 읽었다면서 보내오는 e메일도 50臺가 大部分이에요. 어제는 1952年生 男子 분이 電話를 했습니다. ‘딱 내 얘기다, 비슷한 經驗을 했으니 나도 베이비부머에 끼워달라’고 하더군요. 政策立案者가 政策을 만들 때 이 冊을 參考했으면 좋겠습니다.”

    社會學者로서 그는 世代를 ‘學歷, 職業이 다르고 生活方式이 달라도 解決해야 할 時代 課題와 人生 宿題가 엇비슷한, 同質的 經驗을 共有한 年齡 集團’으로 定義한다. 世代 葛藤은 生活 方式, 人生 宿題가 다르고 同質的 經驗이 不在한 年齡 集團 間에 發生하는 것이리라. 記者는 20~30臺가 50代와 疏通하는 方法의 하나로서 이 冊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 따님은 읽고 뭐라던가요.

    “울었다고 해요.”

    先輩 世代가 걸어온 날것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가슴이 먹먹하지 않으면 感情이 ‘家門 논바닥’처럼 메마른 것일 게다.

    ▼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目錄에 올랐던데요.

    “그래요? 고맙죠.”

    讀者 反應이 좋아 鼓舞된 듯하다. 1954年生 讀者가 보내왔다는 葉書를 보여준다. K氏는 葉書에 이렇게 썼다.

    “單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우리의 自畫像이에요. 30年 8個月 勤務한 職場에서 名退하고 코엑스에서 꽃집 매니저로 일합니다. 先輩, 同僚가 對策 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요. 베이비부머가 겪는 心的, 肉體的 葛藤을 代辯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이 險한 世上 다리가 되어’는 어쩌면 이렇게 우리 世代의 노래일까요?”

    當身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아

    거리를 헤매다가

    견디기 힘든 밤이 찾아올 때

    當身을 慰勞할게요

    當身便이 되어줄게요

    어둠이 몰려오고 世上이 온통 苦痛으로 가득할 때

    當身이 이 險한 世上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줄게요

    -이 險한 世上 다리가 되어, 사이먼&가펑클

    ‘마지막 儒敎 世代’

    ‘이 險한 世上의 다리가 되어’는 1970年代 大學街 口號였다. 宋 敎授는 “自身들이 몸을 누여 만든 다리가 어디로 連結될지를 正確히 알지 못한 채 1960年代와 1980年代를 잇는 精神的 橋脚을 設置하려 했던 것이 베이비부머의 1970年代였고, 靑年들의 외로운 몸부림이었다”고 적었다(‘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208쪽).

    宋 敎授는 베이비부머를 架橋(架橋) 世代면서 마지막 儒敎 世代라고 規定한다. 近代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自由主義者 金洙暎이 時(詩) ‘巨大한 뿌리’에서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고 一喝했듯 베이비부머는 異端(異端)의 世代였으나 傳統과 穩全히 訣別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부러움의 對象일 법한 ‘서울大 敎授’도 八旬 넘은 父親을 扶養하는 長男이며 두 딸의 學費를 걱정하는 家長이다. 老後 問題를 解決할 自願 또한 넉넉하지 못하다.

    “베이비부머는 리(里), 邑(邑)에서 어린 時節을 보내고 地方의 市(市)로 나아갔으며 大都市에서 家庭을 이뤘습니다. 누군가는 大學에 갔고, 누군가는 工場에서 産業 役軍이 됐어요. 世界 歷史에서 韓國의 50臺처럼 壓縮된 經驗을 한 集團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失敗에 고무줄을 감아 만든 장난감 車로 幼年을 보낸 少年이 自動車産業을 일궜습니다. 냇물에 고무신 띄우면서 놀던 少年이 朝鮮産業을 創出했고요. 베이비부머의 獻身과 才能이 없었다면 ‘漢江의 奇跡’은 없었을 거예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베이비부머는 1人當 國民所得 50달러 時代를 산 父母와 5000~1萬 달러 時代에 靑少年期를 보낸 子息 世代의 意識과 趣向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祭祀날을 國慶日보다 重要視 여기던 父母를 둔 마지막 儒敎 世代가 各種 ‘스펙’으로 武裝한 子息 世代에게 떠밀려 現場을 떠나기 始作한 겁니다.”

    그는 “누가 베이비부머의 다리가 되어줄 것인가?”라고 諮問한다.

    “1970年代 大學을 다닌 世代는 ‘異端의 子息’이에요. 우리는 無知하게 쓸쓸합니다. ‘精神的 아버지’를 殺害까지는 안 했지만, 버렸어요. 어릴 적부터 孝(孝)와 衝(忠)으로 鍛鍊된 意識 속에는 ‘아버지’가 君臨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아버지를 소멸시켜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儒敎라는 굴레에서 穩全하게 벗어나질 못했어요. 忠, 孝 같은 낱말에 매여 살았거든요. 우리는 近代, 現代를 갈라놓은 絶壁에서 다리 구실을 해냈습니다. 가난했으되 堂堂한 父母와 個性 넘치는 子女를 잇는 架橋 말이에요. 그런데 現場에서 물러날 때가 되니 다리가 돼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成功했다는 이들일수록 마음이 헛헛해요. 아내와의 사이도 안 좋고요. 成功은 自己를 버리면서 努力해야 오는 거거든요.”

    욕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
    어느 날, 歸路에서

    욕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

    송호근 서울대 社會學科 敎授는 “슬픈 50代 이야기, 그 속에 내가 있었다”고 吐露했다.

    最貧國이던 나라를 先進國 門턱까지 밀어올리고 現場에서 물러나는 베이비붐 世代에게 虛無가 掩襲한다. “아픈 靑春은 그래도 幸福하지 않으냐”고 그는 되묻는다. 베이비부머는 近代가 끝나는 絶壁에서 現代로 나아가고자 쉼 없이 달려왔으나 如前히 敎育, 住宅, 父母 扶養으로 허덕인다. 허리가 휜다.

    남들이 羨望하는 職業을 가진 58歲의 서울大 敎授도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初老의 先輩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외쳤다.

    “허섭스레기…나는 이런 걸 生産하느라고 20年을 東奔西走한 것이다!”

    社會科學이 부질없어지고 칼럼 執筆이 知識人의 거짓으로 다가왔다. ‘나의 生産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아닌가, 나의 칼럼은 네가 못한 일을 實行하라고 讀者에게 一喝하는 虛僞意識의 産物 아닌가.’

    그는 어느 날, 歸路에 運轉대를 맡긴 代理運轉 記事와 함께 술집을 찾아 痛飮했다. 그가 적은 그때 일의 記錄은 이렇다.

    “모임에서 마신 술 탓에 代理技士가 運轉하는 車를 타고 漢江을 건넜다. 代理技士는 中堅企業 部長을 끝으로 退職한, 나와 거의 同年輩인 베이비부머였다. 生活費를 보탤 兼 저녁 알바를 뛴다고 했다. 그의 지난 얘기를 들으면서 한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그것은 經驗과 記憶의 共通性, 그동안 堪當했던 人生의 짐과 앞으로 걸어갈 길의 共通性에서 비롯된 서글픔이었다. 한때 同僚들이 부러워할 程度로 잘나가던 名門大學 卒業生, 筆者와 學窓時節의 記憶을 共有한 이들이 職場生活을 접고 이제 歸家를 名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外出 準備를 한다. 이렇게 물러앉을 수는 없다. 베이비부머는 누구라도 小說 한 卷 分量의 얘깃거리를 갖고 있는데, 高齡으로 접어드는 예순다섯 살에는 두 卷 分量으로 늘어날 것이다. 아니면 長篇小說을 構想할 程度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韓國 社會이고 베이비부머의 運命이다.”

    隱退하거나 失職한 父母 世代와 子息 世代가 일자리를 두고 다툰다. 지난해 大選에서는 世代 對決도 벌어졌다.

    “3% 勝利를 만들어낸 勢力은 베이비부머 中下層에 布陣한 500萬 名假量입니다. 老後 對策은 없는데, 父母 奉養과 子女 扶養의 짐을 잔뜩 진 가장이죠. 急進 變革보다 漸進 改革을 選擇한 背景에는 朴正熙 時代에 對한 鄕愁도 깔려 있습니다. 못 배워도 일자리를 求할 수 있었다는 記憶 말이에요.”

    ‘工高 出身 朴 會長’

    ▼ 베이비부머의 子息 世代는, 冊에 나오는 ‘工高 出身 朴 會長’을 보면서 “아버지 世代는 公告만 나와도 成功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젊은 世代 太半이 非正規職, 契約職이에요.

    “50臺가 辱을 먹어도 싸요. 兩極化 構造는 베이비부머가 構築한 겁니다. 貧弱한 福祉制度와 社會로의 進入 障壁을 높여놓은 것이 그렇지요. 反省해야 해요. 高度成長에 靑春을 바친 우리 亦是 스스로 構築한 救助에 갇혀 對策 없이 老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社會가 이렇게 된 것은 20~30%는 우리의 잘못이고, 70~80%는 資本主義가 무거워져서입니다. 只今 韓國은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形局이에요. 1萬 달러 時代가 열렸을 때(1995年) 社會制度 改編에 나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1997年 外換危機를 맞으면서 韓國式 資本主義 自體가 崩壞해버렸습니다. 經濟를 正常으로 되돌려 놓느라고 社會制度를 손볼 餘力이 없었고요. 그러다 經濟는 艱辛히 正常으로 돌아왔는데, 되돌아온 資本主義는 冷酷했습니다. 李明博 政府는 福祉 프로그램을 受容하기는 했지만 骨格을 바꾸는 데는 關心이 없었고요. 그래서 지난해 大選이 ‘無償 福祉’와 ‘맞춤型 福祉’의 對決이 된 겁니다. 無償福祉 쪽이 50代에게 慘敗를 當했고요. 授業에 들어가면 3, 4學年 學生들 얼굴에 愁心이 가득해요. 걔들더러 ‘우리를 辱하지 마라. 욕먹을 짓 했지만 우리가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말했더니 ‘잘 알아요. 그런데 힘들어요’라고 하더군요.”

    ▼ 2張의 題目이 ‘아픈 靑春은 그래도 幸福하다’인데요. ‘아프니까 靑春이다’에 答을 한 건가요.

    “맞아요.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너네는 아프면 울지만 우리는 울지도 못 한다는 거예요. 父母 世代, 子息 世代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正常的인 社會가 아니죠. 政治가 풀어야 할 일입니다. 靑瓦臺와 政治權에서 밤새도록 論議해야 할 問題인데 都大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욕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

    송호근 敎授는 “社會科學者보다 文章家로 記憶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낯익은 他人

    그의 스마트폰 電話番號簿에는 750名이 入力돼 있다. 人脈을 分類해보니 크게 네 갈래로 나뉘었다.

    ①家族關係網 : 家族들로 構成된 關係網으로, 私生活의 核心을 이룬다. 血緣을 바탕으로 情緖的 安定을 生産하는 關係網. 約 30名

    ②親密關係網 : 學窓時節을 같이 보낸 이, 親한 同僚,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先後輩들로 約 50名.

    ③親近關係網 : ②와 비슷한 性格과 類型의 集團이지만 ②에 비해서는 心理的 距離가 먼 그룹이다. 100餘 名.

    ④公的關係網 : 職場生活을 하며 맺은 公的 關係에 屬한 사람들로서 私生活 얘기를 하기 어렵고 理解 關心의 改廢 與否에 따라 언제든지 關係가 斷絶된다. 500餘 名.

    “隱退하기 前에는 ④를 主로 만납니다. ②와는 오랜만에 만나기 일쑤죠. ③, ④는 現職에서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關係가 消滅됩니다. 隱退 後에는 ③과의 關係를 一部 維持하다 ②로 後退하게 됩니다. 結局 退職者에게 意味가 있는 關係網은 ①, ②예요. 그래서 서럽고 갑갑한 겁니다. 그때면 아내는 ‘낯익은 他人’李 돼 있을 素地가 커요. 30年 동안 無關心으로 放置해온 代價를 치르는 것이죠. 假說이지만, 成功한 사람이 夫婦關係가 나쁠 素地가 큽니다.

    서울大 敎授들도 마찬가지예요. 停年退職하면 아무도 안 봐줍니다. 小說이나 그림을 그리는 等 아주 다른 일을 하면 注目을 받기도 하지만, 名譽敎授의 論文은 아무도 關心을 갖지 않습니다. 新聞社마다 隱退한 敎授들이 쓴 칼럼이 쌓여 있어요. 隱退한 敎授들이 실어달라고 言論社에 있는 弟子들에게 보낸 거죠. 弟子들은 ‘敎授님 隱退하셨잖아요?’라면서 글을 실어주지 않죠. 그런 일을 겪으면서 패닉 狀態에 빠지는 겁니다. 情緖的, 心理的으로 홀로 서는 게 무엇보다 重要한 것 같아요. 生物學的 나이보다 主觀的 나이가 젊어야 하고요.”

    記者의 스마트폰 電話番號簿의 關係網 比率도 宋 敎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②는 이따금 만나 어릴 적 쓰던 辱지거리 주고받으면서 진창 술을 퍼 마시지만, 葬禮式場 같은 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볼 때도 많다. ①課는 週中에는 對話를 거의 못하고 쉬는 날에도 따로 놀 때가 많다.

    ▼ 敎授님은 隱退 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나도 準備는 하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便이라 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어딘가로 未練 없이 간다’고 마음은 먹고 있는데, 點心 먹을 곳 없나 하고 學校 近處를 맴돌면 어떡하나 싶어요.”

    내 푸른 靑春의 골짜기

    욕하지 마라, 비웃지 마라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
    그는 冊에서 이렇게 썼다

    “經濟的 責任 履行 不可를 宣言할 때는 情緖的, 心理的 安定을 더 以上 求하지 않겠다는 覺悟가 隨伴돼야 공정하고 合理的인 家族關係가 維持된다. 退職한 當身은 家長으로서 遂行해야 할 第一 機能을 喪失한 사람이기에 旣存과 同一한 關係를 期待할 수 없다. 代身, 喪失한 機能을 補完할 수 있는 다른 機能을 開發해야 한다. 韓國의 平凡한 家庭에서 이 ‘다른 機能’이 무엇인지는 찾아봐야겠지만, ‘새로운 契約’이 必要한 것만은 틀림없다. ‘動物의 王國’에서 본 場面은 조금 슬프다. 늙은 獅子가 家族들을 警護할 힘이 없어지자 草原을 헤매는 젊은 水死者의 襲擊을 받아 죽어가고, 家族들은 곧 젊은 水死者의 차지가 된다. 動物의 新契約이 締結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에게 새로운 契約이란 家族들에게서 情緖的 心理的 距離를 두는 일이다.”(‘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212쪽)

    그는 歌手 조용필과 親하다. 2006年 ‘東亞日報’에 ‘내 마음속의 별-스타가 본 스타’에 ‘조용필 篇’을 寄稿하면서 因緣을 맺었다. 只今은 함께 노래房에 가 ‘조용필 앞에서 조용필 노래를 부르는 게’ 語塞하지 않은 사이다.

    4月 11日 그의 서울對 硏究室에서 4月 23日 出市될 CD에 담긴 조 氏의 노래를 들었다. 10年 만에 나오는 19番째 앨범 ‘헬로(Hello)’에서 조 氏가 作曲한 노래는 하나다. 宋 敎授가 歌詞를 썼다. 題目은 ‘어느 날, 歸路에서’. 인터뷰 問答을 錄音한 파일에 아직 世上에 나오지 않은 조氏의 노래가 담겼다. e메일로 歌詞를 보내달라고 했다. 걱정이 됐나보다. e메일에 이렇게 써 있었다.

    “노래 錄音한 거 夫人에게 알려주면 안돼요.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면 안 되니까. 23日까지 꾹 참고 기다려주세요.”

    앞 世代도 뒤 世代를 잘 모르긴 마찬가지인 模樣이다. 서른아홉인 記者의 아내는 버스커버스커, 10센치의 노래를 좋아한다. 曺 氏의 新報에 關心을 가질 可能性은 거의 없다. 事務室에 돌아와 ‘어느 날, 歸路에서’를 오랫동안 들었다. 눈물이 났다.

    돌아오는 길목에 외롭게 핀 하얀 꽃들

    어두워진 그 길에 외롭게 선 街路燈이

    빛나는 記憶들 울렁이던 젊음

    그곳에 두고 떠나야 하네

    離別에 익숙한 내 작은 가슴에

    쌓이는 두려움 오오오오~

    내 푸른 靑春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 아쉬운데

    歸路를 맴도는 못다 한 사랑 만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데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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