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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像의 땅’ 東邦의 衝擊 大航海時代 연 知識 寶庫|新東亞

‘想像의 땅’ 東邦의 衝擊 大航海時代 연 知識 寶庫

  • 김학순 │高麗大 미디어學部 招聘敎授·北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入力 2013-04-18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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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땅’ 동방의 충격 대항해시대 연 지식 寶庫

    東方見聞錄<br>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 四季節

    13世紀 유럽人에게 ‘世界’는 自身이 살고 있던 유럽과, 宗敎的 對立關係이던 이슬람 文化圈이 全部였다.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誕生했을 때 별을 보고 찾아와 세 가지 禮物을 바치며 敬拜했다고 聖經에 記錄된 東方博士度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地域쯤에서 왔다고 認識했다. 아랍圈을 넘어선 ‘東方’은 團地 口傳으로 들려오는 想像의 땅일 뿐이었다. 當時 아시아에서는 世界 歷史上 가장 强力한 征服王朝인 몽골帝國이 儼存했음에도 그렇다.

    富裕한 베네치아 寶石商人 니콜로 폴로와 동생 마테오 폴로는 1260年 다른 商人들과 함께 東方을 찾아 떠났다. 이들은 콘스탄티노플과 투르키스탄의 부하라 等을 거쳐 中國에 들어가, 베이징 近處에 자리한 쿠빌라이 칸의 王宮에도 招待받았다. 9年 만에 베네치아로 돌아온 폴로 兄弟는 2年 뒤인 1271年 니콜로 폴로의 열다섯 살 된 아들 마르코 폴로를 데리고 다시 東邦旅行길에 올랐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少年 마르코 폴로는 中央아시아를 橫斷하면서 ‘프레스터 존’이 산다는 想像 속의 東方을 目擊한다. 유럽의 民間에는 이슬람圈 너머에 예수를 믿는 프레스터 존의 王國이 存在한다는 神話가 퍼져 있었다. 몽골軍이 捕虜들을 虐殺할 때 主로 十字架刑을 많이 쓴 것이 訛傳돼 東洋에 基督敎 國家가 나타나 異敎徒를 물리치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페르시아, 파미르 高原을 지나 中國 땅까지 들어간 마르코 폴로는 보는 것마다 振氣함에 놀란다. 巨大한 都市와 奇異한 風習, 華麗한 宮廷生活, 어마어마한 寶物과 各種 特産品, 神話에나 나올 듯한 신비스러운 짐승들….

    25年間의 아시아 旅行을 마치고 베네치아로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3年 後 제노바와 東方貿易로 支配權을 둘러싼 戰爭에서 捕虜가 되는 바람에 監獄에 갇히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피사 出身의 作家인 루스티첼로에게 自身이 겪은 엄청난 冒險談을 털어놓는다. 루스티첼로는 그 이야기를 프랑스語로 받아 써 出版한다. 古典 ‘東方見聞錄’(原題 Divisament dou Monde)은 이렇게 誕生했다. 元來 題目을 直譯하면 ‘世界의 敍述’李 된다. ‘東方見聞錄’이란 題目은 日本語 飜譯本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머릿속에는 只今과 같은 洞·西洋이라는 槪念이 全혀 存在하지 않았다.

    25年의 아시아 旅行



    이 冊의 元來 題目이 그렇듯 內容도 마르코 폴로의 旅行記라기보다 유럽을 除外한 世界 各 地域에 對한 體系的인 敍述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實際로 그 內容을 살펴보면 아시아 여러 地域은 勿論 아프리카, 러시아, 시베리아까지 包含하고 있다. 하지만 西洋에서도 이 冊을 單純히 旅行記로 여겨 英譯本을 ‘Travels of Marco Polo’라고 이름 지었다. 中國에서도 마찬가지다. ‘마가派라유機’(馬可波羅游記)나 ‘마가파라행기’(馬可波羅行記)라고 쓴다.

    이 冊은 유럽 밖의 世界에 對해 알지 못하던 當時 유럽人들에게 놀라움을 넘어 엄청난 衝擊을 안겼다. 믿기지 않은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를 虛風쟁이로 여겼다. 어느 것에든 ‘數百萬의…’ 하며 數를 부풀리는 그에게 ‘百萬 先生’이라는 別名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 冊의 이탈리아語 題目이 ‘一 밀리오네’(Il Milione·‘百萬’이라는 뜻)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數字뿐만 아니라 內容 自體도 事實 與否를 確認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는 理由로 오랫동안 論難을 불러일으켰다. 中國 旅行 事實까지 疑問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아랍 商人들에게 情報를 주워듣고 얘기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甚至於 그가 實存 人物인지 疑懼心을 나타내기도 한다. 實際로 冊을 읽다보면 그 같은 疑心이 들 때도 있긴 하다. 萬若 그가 中國에서 17年間 살며 體驗한 게 事實이라면 한자나 젓가락 使用, 茶(茶) 마시는 風習, 纏足(纏足), 萬里長城, 印刷術 等에 對한 言及이 없다는 게 理解하기 어렵다.

    武勇談과 로맨스 作家였던 루스티첼로의 덧漆을 거치면서 當時 유럽人의 興味를 誘發할 만한 課長이 더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例를 들면 쿠빌라이 칸이 마르코 폴로 一行을 歡迎하는 場面은 아서 王 傳說에서 트리스탄이 처음 宮廷으로 왔을 때의 場面을 그대로 따와 고쳤다는 게 定說로 通한다.

    마르코 폴로가 洋酒(揚州)라는 都市를 3年 동안 統治했다고 한 部分도 中國 資料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記錄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의 글 中에서 明白한 自己矛盾이 드러나기도 한다. 自己가 周旋해 製作한 透析器로 몽골軍이 中國 南部의 要塞 襄陽(襄陽)을 陷落시켰다고 했지만, 이 都市는 그가 到着하기 前에 이미 陷落됐다는 事實이 다른 資料를 통해 確認된다.

    그렇지만 當時 사람들이 疑問을 提起한 相當 部分이 最近 들어서는 事實로 確認되거나 그렇게 推定할 만한 根據가 드러나고 있다. 배에 탄 사람을 잡아먹을 機會를 엿보며 江 속을 헤엄쳐 다니는 眞짜 龍(印度 鰐魚), 몸집이 크고 줄무늬가 있는 獅子(虎狼이), 甲옷을 입은 怪物(코뿔소), 等에 弓手를 태우고 다니는 코끼리 部隊, 깃털 길이가 3.5m나 되는 새(큰바다오리), 불에 타지 않는 千(石綿), 나무처럼 타는 검은 돌(石炭), 돈으로 使用되는 종이(紙幣) 等이 여기에 該當한다.

    ‘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

    마르코 폴로가 中國에 直接 가지 않았다며 붙이는 疑問符號 가운데 하나인 萬里長城은 實際로 1500年頃의 明나라 때까지 現在의 모습을 채 갖추지 못했다는 學說이 認定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를 旅行하고 온 사람의 글에서 에펠塔이나 샹송에 對한 言及이 없다고 거짓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反論도 나온다.

    마르코 폴로가 여러 山脈을 旅行하면서 어느 頂上에 ‘노아의 方舟’가 있는 걸 봤다고 主張한 部分도 現實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通過한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 山이 바로 ‘노아의 方舟’였다는 說이 이를 말해준다. 原油의 特徵을 지닌 物質에 關한 이야기도 中東 産油國이 立證하고 있는 셈이다. ‘世界의 지붕’으로 불리는 高原地帶에서 물이 천천히 끓는다고 얘기한 대목도 當時엔 虛風扇이의 代名詞처럼 통했으나, 高原地帶에서는 代氣壓 때문에 끓는點이 낮아져 登攀家들이 물을 끓이기 어렵다는 事實은 이제 常識에 屬한다.

    몽케 칸의 屍身이 알타이 山에 묻힐 때 2萬 名의 無辜한 사람이 死者와 함께 저승길에 同行하도록 죽임을 當했다는 마르코 폴로의 얘기 亦是 讀者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이 怪異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中國 史料가 發見됐다.

    北極곰의 存在도 마르코 폴로가 最初로 西洋에 傳했다. 낯선 旅行者들에게 기꺼이 아내나 딸을 내주어 同寢하게 하는 風習을 지닌 地方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 冊엔 ‘그것을 보지 않고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들어도 믿기 힘들 程度다’와 같은 表現이 자주 登場한다.

    마르코 폴로의 말이 얼마나 信賴를 얻지 못했는지는 이 冊이 發刊된 지 50年이 지난 1324年 그가 死亡할 때까지 世界地圖에서 아시아 地域이 제대로 反映되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臨終을 지켜보던 한 神父는 이 冊에 나온 얘기 가운데 取消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무뚝뚝하게 對答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折半도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逸話는 當代人들의 온갖 疑心과 誹謗에도 그가 얼마나 剛한 信念을 갖고 있었는지를 傍證한다.

    이 冊은 들머리를 이렇게 始作한다. “모든 皇帝, 國王, 公爵, 侯爵, 騎士, 市民, 그리고 여러 時代의 사람들과 世界 여러 地域의 神奇한 일에 對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冊을 가져가서 읽어달라고 請하시오.” 마르코 폴로의 口述을 바탕으로 이 冊을 쓴 루스티첼로는 13世紀 當時의 낮은 文字 解讀率을 勘案해 이 같이 權限 것으로 보인다.

    中世 以來 最高의 베스트셀러

    ‘東方見聞錄’은 유럽에서 한동안 ‘聖經’ 다음으로 많이 읽힌 古典이라고 할 程度로 中世 以來 最高의 베스트셀러였다. 當代에만 10餘 個 言語로 飜譯돼 읽혔다. 프랑스語로 된 原本이 남아 있지 않은 탓에 138個의 異本이 發見됐다는 記錄도 나와 있다. 이 冊과 비슷한 時期에 몇 種의 다른 ‘東方旅行機’들이 씌어졌다. 例를 들어 프란체스코파 修道士였던 프라노 카르피니의 ‘몽골 奇行’, 윌리엄 루브룩의 ‘旅行記’, 作者 未詳의 ‘맨더빌 旅行記’ 等이 그것이다. 하지만 ‘東方見聞錄’과 같은 名聲을 누리지 못했다.

    이 冊은 여러 가지 論難에도 大航海時代를 열어 世界史를 바꾼 決定的인 冊으로 評價받는다. 유럽의 非유럽, 非基督敎 世界에 對한 植民 支配의 始發點이자 正服과 奴隸貿易 時代의 門을 여는 契機가 된 것이다. 이 冊은 西洋에서 아시아에 對해 알 수 있는 知識의 源泉이자 想像力의 보고(寶庫)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애初 目的은 달랐지만, 아메리카를 發見한 1492年 旅行 計劃을 짜는 데 이 冊의 地理學的 情報를 活用했다. 콜럼버스는 이 冊을 航海 내내 갖고 다녔다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世界 最初 日酒도 ‘東方見聞錄’ 없이 나오기 어려웠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마르코 폴로와 콜럼버스를 尊敬하며 世界 一周를 꿈꿨다. 마르코 폴로는 航海에 도움이 될 程度로 詳細하게 얘기를 풀어놨다. 貿易風과 季節風, 여름과 겨울에 印度와 걸프만 사이에서 서로 反對方向으로 부는 바람에 對해서도 正確하게 記述했다.

    西洋에서는 이 冊 以後 해도(海圖)의 製作이 몰라보게 活潑해졌다. 如前히 적지 않은 사람이 700餘 年 前 마르코 폴로의 旅行 코스를 따라 아시아를 橫斷하며 異國의 風物과 風速을 體驗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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