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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果主義 傳道師’ 조현오 서울警察廳長의 所信|新東亞

‘成果主義 傳道師’ 조현오 서울警察廳長의 所信

“警察廳長 못 되는 限이 있더라도 人事 請託者들 名單 繼續 公開하겠다”

  • 組成式│東亞日報 新東亞 記者 mairso2@donga.com│

    入力 2010-07-19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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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江北警察署長 마음에 傷處 준 것, 後悔하고 反省한다
    • 成果主義는 警察 아닌 市民 위한 것, 힘들더라도 조금 참자
    • 人事 透明性 確保될 때까지 成果와 人事 連繫하겠다
    • 政治權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서울廳長 할 수 있다
    • 監査官 할 때 보니 人事非理 엄청 나더라
    • 大學 時節 維新獨裁政權 反對하는 理念서클 活動도
    ‘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 1955年 釜山 出生<br> ● 고려대 政治外交學科 卒業<br> ● 서울대 大學院(法學), 英國 케임브리지大 大學院(法學) 碩士<br> ● 1981年 外務考試 合格<br> ● 1981~89年 外務部 勤務<br> ● 蔚山 南部警察署長, 서울 종암警察署長, 警察廳 外事管理官, 警察廳 監査官, 警察廳 警備局長, 釜山警察廳長, 京畿警察廳長<br> ● 2010年 서울警察廳長

    조현오(55) 서울地方警察廳長과의 인터뷰는 7月10日 午後 그의 執務室에서 進行됐다. 正服을 입은 그는 5時間 동안 進行된 인터뷰 途中 여러 次例 물을 마셨다. 熱誠的이면서도 신중한 態度였다. 언제 刺客(刺客)으로 變할지 모르는 記者 앞에서 말失手하지 않으려는 氣色이 歷歷했다.

    元來 그런지, 목이 아파 그런지 그는 말을 꾹꾹 눌러 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姿勢는 잘 빗어 넘긴 새까만 머리카락처럼 斷定했고, 表情은 어떠한 威脅에도 屈服하지 않을 것처럼 斷乎했다. 그렇다고 마냥 딱딱했던 건 아니다. 어린 時節 세 끼를 굶을 程度로 가난해 市場에서 달걀과 과일을 훔치던 日課 미팅에서 代打(代打)로 나온 女學生이 只今의 아내라는 얘기를 할 때는 表情이 바뀌었다.

    조 廳長은 “여러 日刊紙에서 인터뷰 要請을 받았지만 拒絶했다”고 밝혔다. ‘신동아’ 인터뷰에 應하게 된 것은 最近 某 放送社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警察의 成果主義를 失敗한 것으로 罵倒해 國民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成果主義는 大勢다. 私企業은 勿論이고 政府部處를 비롯한 公共機關과 公企業들도 앞다퉈 導入하고 있다. 成果主義는 한마디로 實績 좋은 사람에게는 人士나 報酬에서 惠澤을 주고, 實績 나쁜 사람에게는 不利益을 주거나 甚할 境遇 내치겠다는 것이다. 無限競爭의 旗幟를 내건 新自由主義의 嫡統(嫡統)인 成果主義는 곳곳에서 不和를 빚었다. 勞動者를 代表하는 勞組는 當然히 反對했다. 言論社 勞組도 例外가 아니었다. 成果主義가 記者職에 맞는지를 두고 一大 論爭이 벌어졌다. 하지만 大勢를 막기엔 力不足이었다.

    “꼴찌 할 바에야 빠지는 게 낫다”



    成果主義가 좋은지 나쁜지, 二分法的으로 判斷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人間이 만든 어떤 制度도 그렇듯 長點이 있으면 短點과 副作用도 있게 마련이라는 게 내 判斷이다. 制度보다 重要한 건 사람이니까. 成果主義는 方向이 옳고 效率的인 制度로 보이지만 사람들을 疲困하게 만든다. 그런 일에 앞장서는 指導者는 辱을 먹게 마련이다(그런 指導者가 歷史를 만들어간다는 건 別個의 얘기다). 警察 組織에 처음으로 成果主義를 導入한 조현오 廳長도 그렇다. 그는 釜山警察廳長, 京畿警察廳長을 지내면서 成果主義 德分에 숱한 非難을 받았다.

    지난해 8月 京畿警察廳長으로 雙龍自動車 事態 鎭壓作戰을 陣頭指揮하며 國民의 腦裏에 强靭한 印象을 남긴 그는 올 初 警察 2人者인 서울警察廳長에 올랐다. 政權 首腦部의 信任이 두텁다는 얘기가 돌았다. 서울 警察에 成果主義 드라이브를 걸며 ‘警察 實勢’ 소리를 듣던 그는 最近 抗命波動에 휩싸였다. 江北경찰서장인 채수창 總警이 6月28日 記者會見을 열어 양천警察署 苛酷行爲事件과 關聯해 그의 成果主義를 非難하며 同伴辭退를 要求한 것이다.

    “警察이 法을 執行할 때마다 얼마나 節次를 잘 遵守하고 人權을 優先視했는지를 基準으로 成果를 評價해야 하는데 檢擧點數 實績으로 補職人事를 하고 승진시키겠다고 基準을 提示하며 오로지 檢擧에만 置重하도록 雰圍氣를 몰아가는 것에 對해 甚히 걱정스럽습니다.”

    “現行 實績評價시스템을 根本的으로 修正하지 않고 그동안 實績을 强調해온 指揮部가 繼續 그 자리에 있는 한 양천서 事件과 類似한 事件이 繼續 發生할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이러한 組織文化를 만들어낸 데 根源的 責任이 있는 서울警察廳長의 辭退를 促求하는 바입니다.”

    警察은 발칵 뒤집혔다. 警察廳은 채 總警을 卽刻 職位解除하고 ‘紀綱紊亂’을 理由로 懲戒委員會에 回附했다. 重懲戒가 내려질 것이라는 展望이다. 하지만 警察 안팎의 輿論은 채 總警에게 友好的이다. 채 總警과 조 廳長의 對立은 마치 新自由主義를 둘러싼 理念論爭 같아 흥미롭다.

    조 廳長은 警察의 成果主義에 對해 잘못 알려진 게 많다고 말門을 열었다.

    ‘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6月28日 채수창 江北警察署長이 記者會見을 열어 조현오 廳長 退陣을 要求하고 있다.

    “서울廳長으로 와서 成果主義를 導入하면서 가장 强調한 게 市民을 위한 成果主義입니다. 地域 治安實情에 맞게 署長들이 獨自的으로 實施하라고 했습니다. 水西警察署의 境遇 서울廳 成果主義와는 完全히 다른 成果主義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現場巡視 가서 宏壯히 稱讚했습니다. 水西地域은 아파트 住居地域이기 때문에 治安에 큰 問題가 없습니다. 그래서 檢擧實績 爲主가 아니라 豫防巡察에 比重을 두고 自體的으로 23個 成果指標를 만들어 管理하고 있어요. 傍輩警察署 管轄 瑞來地球는 住居地域입니다. 거기도 治安需要가 적기 때문에 빼달라고 해서 (成果主義 對象에서) 除外했습니다. 종로서와 남대문서, 永登浦서는 워낙 集會示威가 많아 苦生하는 곳이니 빠지라고 했는데도 署長들이 自願해 參與했습니다. 꼴찌 해도 좋으니, 地域 警察官들을 熱心히 뛰게 하려면 必要한 制度라면서요. 종로서의 境遇 靑瓦臺 等 特定地域을 管轄하는 4個 派出所는 빠지겠다고 해서 빼줬고요. 城北서도 外交公館들을 管轄하는 城北派出所는 빼줬습니다.”

    말하자면 成果主義를 强制로 밀어붙이진 않았다는 얘기다.

    “署長과 課長들이 (제때) 昇進 못한다는 것 外에는. 꼴찌를 할 바에야 빠지는 게 낫잖아요.”

    成果主義 隊列에서 離脫하면 不利益을 받지 않느냐는 質問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果然 一線에서도 그렇게 여길지 疑問이었다.

    江北서 訪問해 强한 叱責

    서울市內 警察署는 모두 31곳. 31個 警察署는 治安需要에 따라 A, B, C 3個 그룹으로 나뉘며 그룹別로 評價를 받아 가, 나, 다 等級이 매겨진다. 이른바 等級別 官署管理制度다. 各 그룹의 가 等級 警察署는 인센티브를 받는다. 反面 最下位 等級 警察署는 서울警察廳의 集中監察을 받는다. 조 廳長 就任 後 서울 警察은 두 次例 評價를 받았다. 세 그룹이 두 番 評價를 받으면 꼴찌가 여섯 番 나온다. 채수창 總警의 江北書가 두 番, 康男署가 두 番, 종로서와 남대문서가 한 番씩 꼴찌를 했다.

    “江南署는 G20(頂上會議) 準備 때문에 바쁘니 成果에 神經 쓰지 말라며 集中管理對象에 包含시키지 않았습니다. 종로서와 南大門서는 集會示威와 警護 때문에 苦生을 많이 하기에 亦是 集中管理를 하지 않고 한 等級 올려줬지요. 그런데 江北서의 境遇 여러 經路를 통해 問題가 많다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5月3日 江北書를 訪問했습니다. 다른 西 같으면 犯罪豫防은 어떻게 하고 檢擧는 어떻게 하겠다고 業務報告를 하는데 江北서는 다르더라고요. 그런 건 뒷전이고 地域經濟 活性化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느니 道峯山 入口 쓰레기 줍기니 幼稚園 體驗學習이니 이런 것들이 業務報告에 包含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좀 甚하게 叱責했지요. 江北서 와보니 꼴찌 하는 理由를 알겠구나, 하고. 警察 本然의 任務는 治安인데, 그런 데 神經 쓰면 곤란하지 않냐고. 그게 채 署長한테 宏壯히 큰 傷處를 준 것 같아요. 지나고 나니 내가 너무 甚하게 했다는 後悔도 들고 反省도 합니다. 幹部 30餘 名이 있는 자리에서….”

    ▼ 辱도 하셨나요?

    “나는 辱은 안 합니다.”

    ▼ 自責하신다는 거죠?

    “많은 國民께 心慮를 끼쳐드렸고 警察 組織員들에게 失望을 안기지 않았습니까. 原因이 어디에 있든 내가 不德한 所致이고 不足한 탓이지요. 그런 面에서 後悔하고 反省하는 것은 當然하지요.”

    ▼ 채 署長이 同伴辭退를 要求한 게 異色的입니다.

    “오죽 마음의 傷處가 깊었으면 같이 그만둬야 한다고 했을까. 理解는 가지만, 決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게 成果主義 때문에 양천서 苛酷行爲가 일어났다고 했잖아요. 조현오式 成果主義 때문이라고. 서울의 强力팀이 178個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177個 팀에서도 類似한 行態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 事件에 衝擊을 받아 177個 强力팀을 다 點檢하도록 指示했습니다. 確認해보니 다른 팀들에선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國家人權委員會에서 確認한 바에 따르면 陽川書에서 지난해 8月2日부터 苛酷行爲가 벌어졌거든요. 내가 赴任한 게 올 1月8日입니다. 조현오式 成果主義 때문에 그런 일이 發生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記者懇談會에서 이런 說明을 하면서 ‘그런 面에서 양천서 苛酷行爲에 對한 責任은 못 지겠다’고 말했는데 그걸 MBC가 앞의 얘기는 빼고 ‘나는 責任 없다’는 말만 내보낸 거예요. 그것 때문에 職員들이 들끓었지요. 一週日間 그거 解明하느라 애먹었습니다.”

    “나도 ‘빽’ 써서 刑事課長 됐다”

    ‘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조 廳長은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雙龍自動車 事態 解決을 꼽았다.

    ▼ 廳長님 같은 캐릭터는 親舊들 사이에서 別로 人氣가 없지 않나요?

    “그렇죠. 甚至於 釜山에 있을 때 字形이 人事 請託을 하는데 안 들어줬거든요. 한동안 나하고 얘기도 안 했습니다. 親舊들이 나보고 性格 좀 고치라고 하는데 잘 안 돼요. 나는 안 되는 건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합니다.”

    ▼ 大槪는 좀 생각해보겠다는 套로 말해놓고 나중에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辱은 덜 먹겠지만, 괜히 無意味한 希望을 갖게 해 마음苦生 시킬 必要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 人間味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듣겠군요.

    “많이 듣지요. 나도 사람인데 매정하다, 매섭다, 차갑다 이런 얘기 듣고 싶겠습니까. 가끔 내가 人生을 잘못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基本과 原則을 허물면 내가 只今까지 살아온 것을 否定하는 것이고 우리 警察 組織이 國家와 國民을 실망시키게 되는 거죠. 只今 내가 하는 일이 辱 들어먹을 수밖에 없잖아요. 不淨腐敗와 非理를 剔抉瑕疵. 成果主義 해서 人事正義 實現하자. 일 熱心히 하자. 어느 職員이 좋아하겠습니까. 나도 가끔 물러서고 싶은 誘惑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 가장 挫折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釜山에서 警正으로 勤務할 때였습니다. 刑事課長이 그렇게 하고 싶어 人事時期를 넘겨 2年間 더 지내다보니 서울에서 받아주지 않는 겁니다. 釜山에서 4年間 警正으로 勤務한 거죠. 그래서 釜山에서 總警으로 끝나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때 크게 挫折했습니다. 그런데 昇進試驗 不正事件이 생기는 바람에 (警察廳 警務局) 考試係長으로 拔擢돼 서울로 올라왔지요.”

    ▼ 廳長님度 人事 請託 해봤습니까.

    “나도 했지요. 當時엔 다들 그랬잖아요. 釜山에서 刑事課長 하고 싶어 죽어라 일해서 가장 좋은 實績을 냈는데 난데없이 對共課長으로 發令 내는 거예요. 그래서 6個月 동안 서울에서 敎育받고 내려온 뒤 ‘빽’ 써서 刑事課長 됐습니다.(웃음)”

    警察生活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을 묻자 雙龍車 事態 解決을 꼽았다.

    “20萬名의 生存權을 지켜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보람이지요. 雙龍車 事態 以後 集會示威文化가 확 바뀌었어요. 금호타이어도 罷業하려다 물러서고 코레일도 세게 하려다 물러섰지요. 只今은 解散警告 命令 두 番만 하면 다들 避합니다.”

    가난했던 幼年期, 이틀 굶기도

    ▼ 조 廳長께서는 强性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就任式 때 ‘在任 中 어떠한 犧牲을 치르더라도 不法과 無秩序는 容納하지 않겠다’고 말씀했지요. 雙龍車 事態 때 勞動者들을 武力 鎭壓했는데 그 方法이 最善이었다고 봅니까.

    “最善이라기보다는 車線이었다고 봅니다.”

    ▼ 자칫 큰 犧牲이 나올 수도 있었지요.

    “그럴 것 같았으면 作戰을 안 했지요. 7月 末부터 破産한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雙龍車 事態에 關聯된 勞動者가 協力業體 包含해 20萬名입니다. 8月5日에 作戰을 안 했다면 20萬名의 勞動者가 길거리에 나앉게 됐을 겁니다. 危險하지만 最大限 安全을 考慮한 作戰을 성공시킴으로써 20萬名의 生計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以後 쌍용차 勞使 間에 相生 雰圍氣가 造成되지 않았습니까.”

    그는 組織管理 冊을 즐겨 읽는다고 했다. 最近엔 ‘定義란 무엇인가(JUSTICE)’를 關心 있게 읽었다고 한다. 斟酌한 대로 文學書籍은 잘 안 본다고 했다. “내가 情緖가 좀 메마른 거는 분명한 것 같다”며.

    釜山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幼年期를 보냈다. 3男5女 中 막내였다. 初等學校 3學年 때 父親의 事業이 亡하면서 工場도 팔리고 집도 팔렸다. 房 두 칸에 열 食口가 우글거렸다. 學校 갔다 오면 빚쟁이들이 들끓었다. 집에 가기 싫었던 그는 가방을 學校 앞 구멍가게에 맡겨놓고 親舊들과 個區짓을 하고 다녔다. 배가 고파 市場 가서 달걀과 감, 沙果를 훔쳐 먹고 빈병과 煉炭을 빼돌려 雪糖菓子와 맞바꿨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케이크를 떼어 팔러 다녔다. 얼마나 學校를 빼먹었는지 出席日數가 모자라 卒業도 艱辛히 했다. 굶기도 많이 굶었다.

    “이틀 꼬박 굶은 적도 있습니다. 다들 죽기만 기다렸지요. 축 늘어져서. 多幸히 어머니의 姨從四寸 쪽에서 쌀 한 가마니와 김치를 들고 와 안 죽고 살아났지요.”

    家庭形便 때문에 卒業 後 2年 지나서야 中學校에 進學할 수 있었다. 일곱 살에 初等學校에 들어갔으니 또래보다 1年 늦은 셈이다. 兄弟姊妹 中 大學을 나온 사람은 그밖에 없다. 큰兄 德分이다. 그가 初等學生日 때 大學生이던 큰兄은 父親의 事業이 亡하자 軍에 入隊했다. 除隊 後 復學을 抛棄하고 그길로 배를 탔다. 배를 타면서 돈을 벌자 막내를 中學校에 보냈다.

    休暇費 챙겨온 古參 署長 혼내

    元來 그의 꿈은 陸士에 들어가는 거였다. 하지만 高等學生이 되면서 視力이 나빠져 抛棄했다. 그래서 警察대로 目標를 바꿨다. 只今의 4年制 正規大學이 아니라 1年짜리 幹部候補生 過程이었다. 3學年 때 알고 보니 入學 要件이 軍畢(軍畢)이었다. 하는 수 없이 一般大學으로 進路를 바꿔 고려대 政治外交學課에 入學했다.

    高等學校 때 新聞班에서 活動했던 그는 大學 1學年 때 박계동氏가 이끌던 古代民族理念硏究會라는 理念서클에 加入했다. 維新獨裁政權에 抵抗하는 學生組織이었다. 油印物도 뿌리고 圖書館에서 一場演說度 하는 等 몇 달 間 熱心히 活動했다. 그러다 下宿집 아주머니가 釜山 집에 알리는 바람에 亂離가 났다. 얼마 後 緊急措置가 發動됐고 그는 釜山으로 내려갔다. 以後 서클活動을 그만뒀다. 大學 다닐 때는 奬學金을 받았고 大學院에 進學해서는 入住課外로 學費를 마련했다.

    아내는 大學生 때 만났다. 3學年 때 下宿을 했는데, 같이 房 쓰던 英文科 後輩가 英文科 ‘퀸카’를 紹介해주겠다며 開講파티에 招待했다. 開講파티는 고팅(고고場 미팅)으로 進行됐는데, 퀸카는 나오지 않았다. 퀸카 代身 나온 女子가 只今의 아내다.

    1981年 外務考試에 合格한 그는 外交部에서 8年 半 勤務하다 1990年 警察公務員으로 變身했다. 階級은 警正. 釜山 금정警察署가 첫 勤務地였다. 1998年 6月 慶南警察廳 警備課長을 하다 總警으로 昇進해 蔚山 南部署長으로 發令 받았다. 工團과 룸살롱이 넘치는 蔚山 南部署는 伏魔殿이었다. 慶南에서 事故가 났다 하면 蔚山南部서 管轄地域이었다. 그의 强性 氣質은 그때부터 有名했다.

    “가서 확 잡으라 해서 正말 확 잡았죠. 當時만 해도 警察官 非理가 甚했거든요. 가보니 檢察에 拘束되거나 搜査網을 避해 도망가 있는 職員 6名이 懲戒도 받지 않은 狀態로 放置돼 있었습니다. 가자마자 곧바로 이들을 懲戒해 罷免, 解任해버렸지요. 休暇철이 되니 派出所長들이 ‘休暇費’라며 돈을 챙겨오더군요. 署長이 休暇 한番 떠나면 몇 千萬원이 생긴다는 얘기가 돌던 時節입니다. 封套를 들고 온 古參 署長 한 名에게 刑事立件하겠다고 高喊을 친 後 그런 일이 사라졌지요.”

    그 時節 그는 새벽까지 巡視를 하며 職員들의 勤務紀綱을 잡았다. 저승使者라는 別名이 붙었다. 結果는 優秀한 實績으로 나타났다. 1年에 120名이던 音主音展 死亡者가 70名으로 줄었다. 當時 慶南廳에서 運營하는 檢問所가 25個였는데 그中 蔚山 南部서 管轄이 3個였다. 이 3個 檢問所가 慶南 全體에서 檢擧實績 1, 2, 3位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逸話들을 들으며 그가 辱을 먹으면서도 成果主義를 推進해온 理由를 알 것 같았다. 그는 數値로 나타나는 實績과 成果에 삶의 意味를 느끼는 사람이다. 文明社會에서 數字만큼 분명한 것도 없다. 그런 點에서 그는 合理主義者다. 그에게 成果는 組織 發展의 原動力이자 삶의 活力素다. 그 背景엔 正義感과 더불어 歷史는 發展한다는 信念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點에서 그는 고지식한 理想主義者다. 正義를 追求하는 理想主義者는 分裂과 葛藤을 일으킨다. 歷史는 그렇게 굴러왔다.

    警察 手當體系부터 바꿔야

    그는 인터뷰에서 반드시 이 얘기는 해야겠다고 作定한 듯 警察官들의 隘路點에 對해 張皇하게 說明했다.

    “職員들이 채 署長 意見에 쉽게 同調하는 게 勤務與件이 워낙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特히 地域警察이 힘들어요. 派出所에서 地區隊 體制로 轉換한 게 2003年입니다. 派出所 體制에서는 2交代로 週當 100時間을 勤務했습니다. 苦肉之策으로 地區隊 體制로 바꾸어 3交代 制度를 導入한 겁니다. 그랬더니 市民의 不便과 不滿이 커졌지요. 112申告를 해도 안 오지, 巡察 도는 警察官 수도 눈에 띄게 줄었지. 그래서 只今 다시 派出所 體制로 바꾸고 있습니다. 6月末 現在 2年6個月 前인 2007年 12月31日에 비해 地域警察館 數가 981名이나 줄었습니다. 全體 人力의 10%가 준 겁니다. 그런데 治安需要는 10% 以上 늘어났습니다. 派出所로 轉換하면 勤務時間이 10% 더 늘어납니다. 이러니 職員들이 宏壯히 힘들 수밖에요. 그래서 제가 成果主義에 精誠(定性)評價 要素를 導入했습니다. 아무리 1等을 하더라도 지나치게 實績 쌓기에 汲汲해 職員들을 쉬지도 못하게 했다면 減點措置 한다고요. 實際로 5月 評價 때 減點을 받은 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江北서는 일을 全혀 안 하다가 내가 왔다간 後 衝擊을 받고 署長이 一週日에 한 番 週刊成果報告 對策會議를 열었답니다. 다른 西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거든요. 배 째라는 式으로 일 안 하다가 叱責받고 나서 엄청나게 實績 達成을 督勵한 겁니다.”

    警察의 士氣를 의식해선지 그는 具體的인 數値를 대며 劣惡한 勤務與件이 改善돼야 한다고 强調했다. 要約하면 이렇다.

    “日本은 人口 100萬名當 集會示威 件數가 59件입니다. 우리는 736件이에요. 告訴告發 件數가 人口 對備 日本의 90倍입니다. 그 程度로 治安需要가 많습니다. 어려운 與件 속에서 警察이 잘하고 있음에도 國民에게 辱을 먹는 데는 몇 가지 理由가 있습니다. 첫째, 集會示威와 關聯해 嚴正한 法執行을 못하는 것. 둘째는 不淨腐敗와 非理에 찌든 모습. 셋째는 不親切하고 無誠意한 業務行態. 그 다음엔 弘報 不足. 美國 警察의 保守는 一般 公務員보다 平均 2.5倍 많습니다. 特히 時間外 勤務手當 算定에서 큰 差異가 납니다. 地域警察(巡察), 刑事, 交通은 現場 公務員입니다. 이들의 補修體系가 冊床에 앉아 行政 보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서울 警察官들이 힘들어하고 不平·不滿에 가득 차 있는 것도 이런 것 때문입니다. 警察改革을 위해선 이것부터 바꿔야 합니다.”

    ▼ 좀 길어졌군요. 채 署長 記者會見 內容 中에 共感하는 部分이 全혀 없나요?

    “成果主義로 職員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에는 充分히 共感합니다. 人員은 줄고 勤務時間은 늘어난 狀況에서 實績과 成果를 내라고 督勵받으니 宏壯히 힘들겠지요. 그間 여덟 次例 討論會를 열면서 그 負擔을 줄이려 努力해왔습니다.”

    ▼ 그런 狀況에서 채 署長 事件이 터졌다는 거군요.

    “예. 7月1日부터 緩和策을 施行하려 했는데 6月28日 채 總警이 記者會見을 하는 바람에 주춤한 狀態입니다.”

    檢擧實績보다 住民滿足度 比重이 높다

    ▼ 核心이 뭡니까.

    “그間 (成果主義 制度를) 監察에서 管理해서 反感이 컸습니다. 이걸 警務企劃係로 옮기는 겁니다. 評價週期度 2個月에서 3個月로 늦추고. 等級別 官署管理制度도 廢止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只今 施行하면 마치 채 總警 事件 때문에 그런다는 誤解를 줄 수 있어 于先 다 等級에 對한 集中監察制度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序列과 順位도 發表하지 않고요. 잘하는 警察署들을 무筍(無順)으로 發表하고 그 職員들에게 褒賞休暇 주고 週末에 쉬도록 하는 겁니다. 이番 일이 터지자 周邊에서 成果와 人事를 連繫하지 말라고 建議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것은 하려고 합니다. 어떤 非難을 받더라도 우리 組織의 人事正義 實現을 위해 成果와 人事를 連繫할 겁니다.”

    그는 채 總警 얘기 中에 事實과 다른 部分이 있다고 했다.

    “檢擧實績만으로 成果主義를 한다는 건 完全히 잘못된 얘기입니다. 檢擧實績 比重은 25.8%밖에 안 됩니다. 電話 親切도, 搜査 迅速性, 公正性 等 住民滿足度 評價가 35.6%입니다.”

    ▼ 檢擧實績이라는 게 가장 差別化되는, 눈에 띄는 羞恥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勿論 그런 面도 있지만 住民滿足度 比重이 10% 더 높잖아요. 앞으로 檢擧 比重은 더 낮추고 住民滿足度를 더 높여갈 겁니다.”

    ▼ 住民滿足度라는 게 客觀的으로 測定됩니까.

    “警察에 團束當한 사람이나 調査받고 간 사람들을 相對로 親切도 調査를 하거나 해피콜 制度라고 해서 電話를 걸어 確認합니다.”

    前·現職 下位職 警察官 모임인 無窮花클럽은 6月30日 警察의 實績主義가 國民의 人權을 侵害했는지를 調査해달라는 陳情書를 人權委에 提出했다.

    ▼ 成果主義에 對한 批判 中 하나가 ‘實績을 위해서라면 人權을 疏忽히 해도 된다는 거냐’지요.

    “우리 職員들은 14時間 야간근무하면서 한 時間도 못 쉽니다. 이건 正말 人權侵害죠. 그런 面에서 제가 人權侵害를 했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人力을 늘리고 手當을 合理的으로 받게 制度를 바꾸어 人權侵害를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現在의 人力事情으로는 人權侵害 次元의 高强度 勤務를 하지 않으면 서울治安이 急速度로 弱化됩니다. 過渡期인데, 職員들에게 限時的으로 힘들지만 좀 참자고 當付드리고 싶습니다.”

    ▼ 無窮花클럽이나 채 署長 얘기는 實績 때문에 無理하게 搜査하고 그 過程에 調査받는 사람들에 對한 人權侵害가 發生한다는 거죠.

    “그건 말이 안 되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刑事들의 잘못된 正義感

    ▼ 現在의 風土에서는 第2의 양천서 事件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그것 때문이라면 제가 成果主義를 더 剛하게 推進했던 釜山과 京畿에서는 왜 그런 일이 없었습니까. 서울은 지난 6個月 동안 檢擧實績이 24.1% 增加했습니다. 그런데 競技에서는 221%, 釜山에서는 249% 增加했었습니다. 왜 거기선 苛酷行爲가 없었습니까.”

    ▼ 警察官 個人의 資質 問題다?

    “資質 問題라기보다는… 양천서 苛酷行爲를 서울 警察, 大韓民國 警察 全體의 問題로 보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그 팀에 局限된 問題입니다. 그리고 語弊가 있을지 몰라도 그 刑事들도 理解는 합니다. 惡質犯罪꾼들을 만나면 膺懲을 해서 被害者의 恨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刑事들은 使命感과 正義感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意欲이 지나치게 剛하다 보면….”

    ▼ 刑事들의 正義感 때문이라고요?

    “잘못된 正義感이지요. 좀 지나쳤지요.”

    ▼ 警察官 實績을 單純히 檢擧로만 測定하는 건 問題라는 指摘도 있지요. 事件이 檢察로 넘어가 起訴가 됐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거죠.

    “全的으로 共感합니다. 그래서 最近 評價시스템을 CIMS에서 KICS로 바꾸었습니다. 法院의 裁判結果까지 알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을 成果에 反映하면 그런 憂慮는 解消될 것입니다. 只今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繼續 補完하고 改善해갈 겁니다.”

    CIMS(Crime Information Manag- ement System)는 犯罪情報管理시스템, KICS(Korea Information System of Criminal Justice Service)는 刑事司法情報시스템으로 불린다.

    6月30日 서울新聞은 서울市內 警察署長 15名에 對한 設問調査 結果를 報道했다.

    ‘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 設問調査 結果를 보니 署長들은 成果主義의 長點을 認定하면서도 그것을 昇進과 人事에 직결시키는 데에 不滿을 드러냈더군요. 또 職員들의 長期 疲勞感과 住民의 治安滿足度 下落을 指摘했습니다.

    “職員들의 疲勞感을 加重시킨다는 건 저도 認定합니다. 그걸 緩和하려 定性的 評價要素를 導入한 거고요. 그런데 住民滿足度를 떨어뜨렸다는 데는 同意하지 않습니다. 住民滿足度는 主觀的인 評價지만 犯人檢擧實績은 客觀的인 겁니다. 當場 犯人檢擧 成果가 10%, 20% 줄어도 大部分의 國民은 體感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犯罪率이 10%, 20% 줄어도 住民滿足度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1年이 지나고 3年이 지나고 5年이 지나면 分明히 差異가 납니다.”

    一線 署長들의 文字메시지

    ▼ 一線 署長들 생각은 다른데요.

    “(設問調査) 時點을 봐야 합니다. 記者懇談會에서 마치 내가 아무런 責任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MBC가 報道한 直後여서 警察 內部에서 저에 對한 不滿이 澎湃해졌을 때입니다. 그 後 제가 네 次例에 걸쳐 MBC 報道經緯를 說明하고 나서 많은 幹部가 狀況을 理解했습니다. 一線 署長 몇 名은 ‘그런 줄 몰랐다’며 支持한다는 文字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 몇 名이나 보내왔나요?

    “한 10名 됩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게 한두 個 있는데….”

    나의 要請에 따라 그는 携帶電話機에 있는 文字메시지 두 個를 보여줬다. “몇몇 署長은 職員들에게 곧바로 敎養을 했다”며 “只今 設問調査를 한다면 結果가 달라질 것”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 京畿警察廳長 時節 成果主義 한다며 私生活까지 監視한다는 批判이 提起됐지요?

    “그게 集中監察할 때….”

    ▼ 集中監察過程에 人權侵害 是非가 일었죠?

    “그런 非難은 받아들이겠습니다.”

    ▼ 不可避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當時엔 不可避하다고 생각했습니다. 京畿地域처럼 强力事件이 많이 發生하는 治安環境에서는 集中監察로 警察官들을 움직이게 만들 必要가 있었습니다. 제가 人權侵害를 했다고 하면 맞을 겁니다. 그건 제가 甘受하겠습니다.”

    ▼ ‘飮酒運轉 안하기 다짐 署名簿’라는 게 있었다던데요. 退勤 後 日課는 勿論 會食을 하면 時間과 場所까지 적어내게 했다면서요? 그건 좀 甚한 것 아닙니까.

    “水原地域 警察署 巡視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警務課에선가 會食을 하는데 監察에서 나와 그런 다짐書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호되게 惹端을 쳤어요. 모처럼 會食하는데 밥맛 떨어지게 왜 그러느냐고. 豫防 次元에서 한 일이라 하지만 지나친 處事였지요. 아마 水原中部서였을 겁니다.”

    ▼ 當場 보여주기 위한 일에만 매달리다보니 時間이 오래 걸리는 人質事件 配當을 꺼리는 雰圍氣가 造成됐다는 指摘도 있습니다.

    “그 點을 是正하기 위해 異議申請을 받습니다. 예컨대 10點밖에 못 받는 事件이지만 住民이 어떻게 느끼고 있고 職員 몇 名이 얼마나 오래 精誠을 기울였는지를 說明하면 審査를 해서 30點으로 올려주는 겁니다.”

    ▼ 異議申請이 잘 받아들여집니까?

    “네. 그런데 申請을 잘 안하지요.”

    ▼ 제가 봐도 안 할 것 같네요. 異議申請했다가 찍힐까봐….

    “그런 雰圍氣를 만들라고 督勵하고 있습니다.”

    ▼ 廳長께서 信念을 갖고 推進하시는 일에 對해 一線 警察官들이 얼마나 共感하고 眞心으로 따르느냐가 關鍵일 텐데요.

    “제가 많이 不足하지요. 그래서 채수창 總警이 이야기하니까 많은 職員이 同調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職員들이 힘들어한다는 거죠.”

    ▼ 廳長님의 方針이나 方向 提示에 共感하지만 肉體的으로 힘들다는 건지, 아니면 成果主義 自體가 警察 組織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해 힘들다는 건지, 어느 쪽입니까.

    “그것은 어느 組織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兩쪽 다 있을 겁니다. 職員들의 不滿을 最少化하려 努力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剛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國民에게 被害가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그런데 窮極的으로 解決하려면 말씀드린 대로 人力을 增員하고 保守體系를 바꿔야 합니다.”

    制服組織에서 있을 수 없는 人身攻擊

    그는 自身이 서울警察廳長에 赴任한 後 實績 壓迫이 심해졌다는 輿論에 對해 이렇게 反駁했다.

    “지난해는 서울廳에서 各 警察署 刑事課長들의 實績을 評價해 불러들였거든요. 내가 와서 그거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刑事들에게 一週日에 하루는 반드시 쉬라고 指示했습니다. 안 쉬는 警察署는 問責한다고. 그래서 只今은 다 쉽니다. 前엔 每日 아침 參謀들이 機能別로 實績報告를 했는데 그것도 안 받습니다. 成果主義 成功事例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交通團束 實績입니다. 以前엔 交通警察官들이 물 좋은 곳만 지키고 있다가 톡 튀어나와 團束해 實績을 올리곤 했지요. 事故가 나든 말든, 停滯가 빚어지든 말든 神經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와서 團束實績으로 評價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事故가 얼마나 줄었느냐, 交通速度가 얼마나 改善됐느냐 그 두 가지만으로 評價하겠다고. 그랬더니 交通警察官들이 交通事故를 줄이고 疏通速度를 改善하기 위해 積極 뛰었습니다. 그 結果 團束은 줄었는데도 交通事故가 4.2% 줄고 死亡事故가 28% 줄고 疏通速度는 24.5% 向上됐습니다.”

    그의 自負心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鞍山상록警察署 박윤근 警査 事件을 끄집어냈다. 朴 警査는 2009年 조 廳長이 京畿廳長으로 在任할 때 警察 內部通信網에 ‘조현오式 實績主義’를 批判하는 글을 17個 올렸다가 파면당했다. 職務遺棄 嫌疑였다.

    ▼ 박윤근 警査 罷免은 지나친 措置가 아니냐는 批判이 있습니다.

    “成果主義 批判 때문에 罷免된 건 아닙니다.”

    ▼ 그것이 契機가 된 건 맞지요?

    “예. 제가 京畿廳長으로 가서 成果主義 導入한다며 京畿廳 講堂에서 討論會를 열었습니다. ‘反對하는 사람은 다 모이라’고 하자 無窮花클럽에서 많이 參席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다 듣고 ‘여러분 意見을 最大限 反映해 制度를 補完하겠다’고 公言했습니다.”

    ▼ 朴 傾斜도 그 자리에 있었나요?

    “아마 參席했을 겁니다. 그런데 몇 달 潛潛하다가 무슨 글을 올렸습니다. 成果給이 나왔을 때입니다.”

    조 廳長 主張에 따르면 朴 警査는 鞍山상록警察署가 받은 成果等級보다 낮은 等級의 成果給을 받은 데 反撥해 成果主義를 批判하기 始作했다는 것이다.

    “指揮官 點數라는 게 있습니다. 常綠書에서 發生한 自體 事故가 있어서 제가 한 段階 밑의 點數를 줬습니다. 그게 反映되다보니 나 等級에서 다 等級으로 떨어진 거지요. 朴 傾斜가 사이버警察廳에 글을 올리자 全國의 無窮花클럽이 나를 攻擊했습니다. 成果主義 때문에 힘들다고. 나에 對해, 到底히 制服組織에서 있을 수 없는 式으로 人身攻擊을 했습니다. 襟度를 넘었다고 判斷했습니다.”

    “나도 덕장 소리 듣고 싶다”

    ‘성과주의 전도사’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소신

    조현오 廳長은 “現實에 滿足하지 못한다는 點에서 나는 理想主義者다”라고 말했다.

    ▼ 朴 傾斜가 人身攻擊을 했나요?

    “全國 警察이 다 보는 글을 통해 人身攻擊을 했습니다. 成果給으로는 얘기가 안 되니 成果主義를 問題 삼은 겁니다. 何如間 事事件件 是非를 걸었어요. 그래서 제가 監察調査를 시킨 겁니다. 調査해보니 竊盜事件 默殺한 게 6件인가 나왔어요. 그걸로 罷免한 거지요.”

    ▼ 組織 內部 批判에 對해 너무 權威主義的으로 對處한 게 아니냐는 批判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權威主義的이라고 非難받아도 앞으로도 그런 職員이 있으면 똑같이 處理할 겁니다. 事事件件 是非 걸고 原色的으로 人身攻擊하는 걸 默認하면 어떻게 指揮官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個人 조현오의 問題가 아니거든요.”

    ▼ 組織 次元이라는 거죠?

    “組織 問題지요. 그거(朴 警査 罷免) 하고 나서 全國 指揮官들이 얼마나 잘했다고 그랬는데요.”

    ▼ 反對現象度 있지요. 朴 警査 돕기 誠金運動度 펼쳐지고 支持者들이 글도 올리고….

    “成果主義에 反對하는 사람들은 當然히 그렇게 하지요.”

    ▼ 아무래도 指揮部와 밑에서 따르는 사람들 間에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朝 次長님께 거꾸로 묻고 싶은데, 그런 걸 放置하면서 指揮官의 機能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强性이라는 소리 안 듣고 싶고 덕장(德將)이라는 이야기 듣고 싶지요. 그렇지만 내 本分을 다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朴 警査는 訴請審査를 要請했다. 그 結果 罷免에서 解任으로 낮춰졌다. 行政訴訟도 提起했는데, 지난 4月8日 解任無效 判決이 나왔다. “法的으로도 問題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묻자 조 廳長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判決文을 보면 (朴 警査의 行爲가) 잘못됐다고 다들 認定할 겁니다. 訴請審査委員會度 警察의 懲戒事由는 認定하면서 情狀參酌을 한 거죠.”

    ▼ 서울 水西警察署의 양동열 傾斜가 朴 傾斜에 同調하다 亦是 파면당했지요?

    “罷免시켰다고, 警察署에서 옷 벗고 亂離 피웠다더군요. 그런 사람이 옳은 사람입니까. 勿論 그런 職員까지 다 敎化해 끌고 가는 게 훌륭한 指揮官이지만요. 그런 點에서 제가 能力이 모자라고 德이 不足한 건 분명합니다.”

    ▼ 廳長님에 對해 뜻은 옳지만 現實을 考慮하지 않는 理想主義者 아니냐는 指摘도 있습니다.

    “理想主義者가 뭡니까. 現實에 滿足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點에서 理想主義者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現場經驗 不足의 缺點을 메우기 위해 같이 巡察도 돌고 組暴 頭目을 檢擧하기 위해 밤새 潛伏勤務度 같이 해봤습니다. 恒常 門을 열어두고 討論會와 懇談會를 자주 열며 職員들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住民들에게 名銜 돌리는 警察官들

    ▼ 成果主義 시스템에서는 每事를 點數가 되냐 안 되냐로만 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治安서비스가 안 이뤄지고 警察 職員들 間에 違和感이 造成된다는 批判도 있습니다.

    “釜山廳長, 京畿廳長 하면서 成果主義로 엄청난 實績을 냈습니다. 저에 對해 ‘自己 治績으로 삼아 좋은 자리 가려 한다’는 얘기가 안 나왔겠습니까. 그런 非難을 甘受하면서도 제가 왜 그랬겠습니까. 쌍용자동차 罷業事態도 마찬가지입니다. 周邊에서 저를 걱정해 (鎭壓)作戰하지 말라고 했지만 所信대로 했습니다. 第 成果로 삼기 위해 作戰한 겁니까. 자칫 내가 옷을 벗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랬겠습니까.”

    ▼ 아니, 警察官들 中에는 自發的으로 對國民 治安서비스에 最善을 다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點數로 매기면 自發性과 純粹性이 毁損되지 않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늘 强調하는 것이 自發的인, 自律的인, 創意的인 治安活動을 해달라는 겁니다. 成果主義 導入하고 나서 일하는 雰圍氣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팀 實績을 위해 積極 同參하는 거죠. 서울의 境遇 前年 同期에 比해 江·竊盜 檢擧率이 50% 늘었습니다. 全體 犯罪는 7.6% 減少했습니다. 方向이 제대로 잡힌 거죠.”

    그가 成果主義의 必要性을 切感한 것은 2008年 3月 釜山警察廳長에 赴任해서였다. 京畿道 安養의 혜진·豫瑟量 事件과 高陽市 一山의 엘리베이터 初等學生 拉致未遂 事件으로 警察이 엄청 두들겨 맞을 때였다.

    “釜山 내려가보니 住民들이 ‘우리 아파트에서는 한 라인에 두 집 빼고 다 털렸다’ ‘여름철 門도 못 열고 자겠다’ ‘警察이 눈에 안 띈다’ ‘申告해도 안 나타난다’고 하소연하더라고요. 警察이 市民한테 이렇게 不信받아서야 法執行을 하겠나. 民生治安 確立이 急先務라고 判斷했습니다.”

    그가 “일 안 하는 사람은 옷 벗기겠다”며 成果主義를 導入하자 不滿을 품은 警察官들은 記者들에게 成果主義의 問題點을 提報했다. 點數 올리기에 汲汲해 巡察은 안 돌고 길거리에서 自動車管理法 違反者나 잡고 있다고. 그는 成果主義에 反對하는 職員들에게 討論을 提案했다. 50餘 名이 參席했다. 土曜日 午後 5時間 동안 끝장討論이 벌어졌다.

    “내가 그 자리에서 ‘잘못된 點은 認定한다’고 했습니다. 自動車管理法이나 其他 刑法 違反者 檢擧는 評價對象에서 除外하고 强·竊盜 爲主로 하겠다고. 그리고 職員들 要請을 받아들여 起訴中止者 檢擧度 實績에 包含시켰고, 꼴찌 하는 사람, 옷 안 벗기겠다고 約束했습니다. 그 後 職員들이 달라졌습니다. 現場에서 指令室로 積極的으로 無電을 하고 名銜을 만들어 住民들에게 돌렸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檢擧實績이 前年 對比 249% 增加했습니다. 實績 좋은 職員들은 激勵하고 褒賞休暇 줬습니다. 住民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하도 辱을 먹어 두 番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內部에서는 稱讚받는데…”

    그의 그런 決心은 2009年 2月 京畿警察廳長으로 赴任한 後 바뀌었다. 住民들이 治安不安을 呼訴했기 때문이다. 當時 京畿 地域 婦女子들은 連鎖殺人犯 강호순 事件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조현오는 職員들에게 人氣 누리면서 일할 運命이 못 되는구나 싶었죠. 就任辭에서 成果主義 導入을 宣言했습니다. 釜山에 있을 때보다는 세련된 成果主義였습니다. 오토바이나 自轉車를 好奇心에서 훔친 18歲 未滿 竊盜, 5萬원 以下의 少額竊盜, 極貧 妊産婦가 牛乳나 기저귀를 훔치는 生計型 節度는 實績으로 認定하지 않았습니다. 京畿廳에서도 큰 成果를 거두었습니다. 江·竊盜 檢擧實績이 前年 對比 221% 增加했습니다. 主要 强力未濟事件을 다 解決했습니다. 서울廳으로 오면서 이제 眞짜로 成果主義는 안 하겠다고 맘먹었는데, 강희락 廳長께서 成果主義가 좋은 制度라며 全國的으로 擴散시키라는 指示를 한 겁니다. 이러니 元祖인 제가 안 할 수 없잖아요.”

    그가 成果主義를 信奉하게 된 데는 外交官 時節 直接 目擊한 東歐圈 社會主義國家들의 崩壞가 큰 影響을 끼쳤다.

    “유고에 가서 보니 베오그라드詩에 活力이 없는 겁니다. 共産主義가 能力에 따라 일하고 必要한 만큼 分配받는다는데,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人間의 本性을 誤判한 잘못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亡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걸 지켜보며 人間社會는 競爭意識에 따른 適當한 緊張感이 있어야 組織이 維持·發展한다는 걸 確信하게 됐습니다.”

    ▼ ‘조현오式 成果主義’의 目標는 人事正義를 세우는 건가요?

    “제가 成果主義를 導入한 건 競爭意識을 통해 組織에 活氣를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最大限 成果를 내 市民들을 便하게 모시는 게 目標입니다. 거기에 附隨的으로 成果와 人事를 連繫해 人事正義를 實現하려는 目的도 있습니다.”

    지난 1月27日 그는 參謀會議 자리에서 警察幹部 16名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外部人士를 통해 自身에게 人事請託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 人事請託이 얼마나 甚했기에 名單까지 公開하신 겁니까. 누구를 통해….

    “내가 이야기하는 건 適切치 못한 것 같고요.”

    ▼ 政治權 人事라든가….

    “그것까지는 이야기 안 하렵니다. 그 일로 내가 엄청나게 辱먹었는데. 하지만 그 辱 또 먹어도 繼續할 겁니다.”

    ▼ 警察 內部에서도 辱을 하나요?

    “아니, 內部에서는 辱을 안 하는데…. 그런데 內部에서 아무리 稱讚받으면 뭐 합니까. 위에서….”

    ▼ 靑瓦臺에서 뭐라 하던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튀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警察)廳長이 못 되는 限이 있더라도 앞으로도 請託하는 사람들 名單을 公開할 거라고 公言했어요.”

    京畿廳長 赴任 直後 祈禱 받아

    ▼ 警察 人事의 가장 큰 問題點이 뭐라 보십니까.

    “只今은 많이 透明해졌어요. 透明해졌는데도….”

    ▼ 昇進階級에 따라 金額까지 定해져 있다고 하잖아요.

    “내가 (警察廳) 監査官 할 때 보니 엄청나더라고요. 나도 그거 잘 챙겼으면 (웃음) 큰 猝富가 됐을 텐데. 只今 많이 透明해졌는데도 그런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成果主義를 통해 上位 10~20%의 成果優秀者 名單을 公開하겠다는 겁니다.”

    ▼ 警察 人士가 그토록 흔들려왔던 건 指揮部가 政治權에 隸屬된 탓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認識을 바꾸자는 거죠. 나처럼 政治權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서울廳長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걸 制度化하자는 거죠. 바람직하진 않지만 人事 透明性이 確保될 때까지는 成果와 人事를 連繫해 公正性을 높이자는 겁니다.”

    ▼ 政治權으로부터 直接 人事 請託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政治權뿐 아니라 누가 얘기를 해도 나는 그런 式으로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서울廳長 못하잖아요. 내가 그걸로 只今까지 버티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基本과 原則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키려 합니다. 그게 무너지면 이 자리에서 못 버티죠.”

    ▼ 그것 때문에 權力層 人士들 中에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군요.

    “權力層이든 나와 가까운 知人이든 뭐 들어줄 만하다고 생각해 電話했을 것 아닙니까. 그거 안 들어주니 氣分 나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不利益은 내가 안고 가야지요.”

    ▼ 李明博 大統領과 가까운 金某 牧師를 두고 말이 많더군요. 公職 人事나 總選에 關與한다고. 그거 아십니까.

    “예. 牧師님을 압니다. 個人的으로. 제가 京畿廳長을 했잖아요.”

    ▼ 서울廳長으로 赴任하기 前에 金 牧師를 만나셨다고 하던데요.

    “牧師님은 제가 水原에 있을 때 가끔 敎會에서 뵈었습니다. 그 敎會에 나갔거든요.”

    ▼ 아, 그 敎會에 다니셨다고요?

    “내가 赴任하자마자 나한테 찾아와 祈禱를 해주시더라고요. 有名한 분 아닙니까.”

    ▼ 大統領한테도 祈禱해주시잖아요?

    “그 有名한 분이 나를 찾아와 祈禱를 해주시니 내가….”

    ▼ 廳長님이 먼저 要請하신 게 아니고요?

    “아닙니다. 牧師님이 찾아와 祈禱해주셨습니다. 참 고맙더라고요.”

    ▼ 京畿廳長 赴任한 直後에요?

    “赴任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아는 警察 先輩가 그 敎會를 다녀서 몇 個月 後 같이 나갔습니다. 나를 前導한 거죠.”

    姊兄의 人事請託 拒絶

    ▼ 元來 敎會를 다니셨습니까.

    “나는 宗敎가 있다 하면 있고 없다 하면 없어요. 警察 指揮官 하면 다 그렇잖아요. 聖堂에도 가고 敎會에도 가고 절에도 가고. 집안은 元來 佛敎 쪽입니다. 英國에 있을 때 6個月 동안 浸禮敎會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金 牧師님 說敎를 듣고 참 훌륭한 牧師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두 달에 한 番씩 가서 禮拜를 봤습니다. 그분을 두고 人事 운운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알 만큼 아는 분이 人事에 介入하겠습니까.”

    ▼ 워낙 大統領과 가까워 그분이 누구 만나 말하면 그게 곧 大統領 뜻으로 읽힌다는데요.

    “난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 市中에 그런 所聞이 돕니다.

    “아무리 尊敬하는 牧師님이라 할지라도 설마 大統領께서 牧師님 얘기 듣고 人事하겠습니까. 그럼 뭐 내가 金 牧師님 아니면 이 자리에 못 왔다는 얘기인데….(웃음)”

    그에게 인터뷰를 要請하기 前 나는 몇몇警察 幹部에게 그의 稟性에 對해 물어봤다. 곧다, 理想主義者다, 매정하다 等 다양한 評이 있었지만, 거의 一致된 坪은 매우 率直하고 言行이 直說的이라는 點이었다.

    ▼ 人生에서 가장 重要하게 여기는 價値觀은 무엇입니까. 座右銘이라든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그 다음으로 强調하는 게 正直입니다. ‘Honest is best policy’라는 格言을 좋아합니다. 나는 거짓말하는 걸 宏壯히 싫어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곧바로 잘못을 認定하면 한番 叱責하고 맙니다. 그런데 자꾸 辨明하고 거짓말하면 最大限 不利益을 줍니다. 우리 職員들에게 늘 强調하는 것 中 하나가 犯罪꾼한테도 거짓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實績을 올리기 위해, 自白을 받기 위해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죠. 노블레스 오블리주度 제가 强調하는 말입니다. 우리 社會가 더불어 잘사는 社會가 되려면 많이 가진 사람과 많이 배운 사람, 權力 많은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해야 합니다.”

    ▼ 술은 좀 하십니까.

    “弱해요.”

    담배는 많이 피울 때는 하루 세 匣 班이었는데, 5年 前에 끊었다고 한다. 술은 男子들 世界에서 一種의 連帶意識이다. 親交의 手段이고 情報의 手段이고 리더십의 手段이다. 그는 술을 못해 苦生 좀 했다고 털어놓았다.

    “損害를 많이 봤지요. 술이 弱하니 아무래도 술자리를 避하게 되죠. 그것 때문에 스킨십이 不足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登山을 많이 갑니다. 職員들과 土曜日마다 北漢山에 오르죠. 最近엔 天安艦 事件과 地方選擧 때문에 못 갔지만. 그래도 京畿廳長 할 때는 職員들과 술자리에서 자주 어울렸습니다. 한 달에 두 番 異常은 優殊成果子 20~30名씩 모아 水原갈비 먹어가면서 못하는 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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