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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年 前 黃金人間의 ‘플렉스’ : 29STREET

6500年 前 黃金人間의 ‘플렉스’

동아일보
東亞日報 2022-02-18 11: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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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考古學界에 한 劃을 그은 1970年代 바르나 發掘 現場. 寫眞 出處 스미스소니언 매거진
最近 ‘플렉스(Flex)’라는 말이 流行하고 있다. 自身의 餘力을 끌어모아 마련한 奢侈品을 다른 사람에게 限껏 誇示하는 것을 뜻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의 流行처럼 보이지만 事實 플렉스는 人類의 歷史와 함께했다. 黃金과 寶石으로 華麗하게 꾸민 무덤이 代表的인 例로 꼽힌다. 黃金으로 온몸을 治粧해 플렉스를 實現한 最初의 人類는 놀랍게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같은 文明과 멀리 떨어진 불가리아에서 發見됐다. 新石器時代에 文明의 邊方에서 살다 간 이 黃金人間은 都大體 누구였을까.
포클레인 삽날 끝에 걸린 黃金
불가리아라면 大部分 요구르트와 長壽 飮食, 그리고 TV 속 아름다운 自然 程度를 떠올릴 것 같다. 實際 러시아와 비슷한 슬라브系와 튀르크系가 聯合해 만든 黑海 沿岸의 이 나라는 世界 4大 文明에 들지 않을뿐더러 스톤헨지 같은 有名한 遺跡도 없다.

休養 都市인 바르나注意 州都 바르나는 불가리아에서도 特히 아름답기로 有名하다. 이 都市는 1949年에 蘇聯 獨裁者 스탈린의 70回 生日을 맞아 ‘스탈린’으로 都市 이름이 바뀐 아픈 現代史도 품고 있다. 그리고 50年 前에는 世界 最初의 黃金人間이 이곳에서 發見되면서 有名해졌다.

1972年 바르나 湖水 近處에서 作業을 하던 重裝備 記事 라이初 氏는 포클레인 삽날 끝에 무언가가 걸린 것을 느끼곤 卽時 機械를 멈췄다. 포클레인에서 내려 흙 속을 살피던 그는 햇빛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發見했다. 黃金이었다. 老鍊한 技士의 感覺 德分에 世界的인 寶物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性器에도 黃金 덮개 씌워
포클레인 技士가 偶然히 發見한 6500年 前 불가리아 바르나 共同墓地에선 무덤 300基와 黃金 遺物이 發掘됐다. 特히 43號 무덤에선 온몸을 黃金으로 治粧한 一名 ‘黃金人間’李 發見되면서 바르나 文明이 再照明됐다. 그는 當時 不足 指導者로 推定된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그가 땅을 파던 곳은 約 7000年 前부터 數千 年間 古代人들이 무덤으로 使用하던 共同墓地였다. 只今까지 300餘 基의 무덤이 發掘됐고 5.5kg에 達하는 黃金 遺物 2000餘 點이 發見됐다. 有名한 이집트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는 100kg에 達하는 黃金이 나왔으니 이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놀라운 部分은 바로 연대다. 온몸을 黃金 裝身具 等으로 두른 바르나의 一名 ‘黃金人間’은 투탕카멘보다 無慮 3000年이나 앞선 約 6500年 前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믿기 어려운 事實을 두고 考古學者들은 數十 年間 온갖 科學的 方法을 動員해 檢證을 거듭했다. 하지만 結果는 한결같았다. 우리나라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 土器를 使用하던 6500年 前 불가리아에서는 이미 黃金文化를 꽃피운 것이다.

바르나의 무덤 가운데 43號 무덤의 主人公은 샤먼 또는 族長으로 推定된다. 온몸을 金으로 두른 그의 무덤에서만 모두 1000餘 點의 黃金이 나왔다. 흥미롭게도 그는 성기도 마치 콘돔 같은 黃金 덮개로 덮여 있었다. 祖上을 뜻하는 漢字 兆(祖)도 男性의 性器 模樣에서 祈願한 點을 考慮하면 性器는 東西를 莫論하고 代를 잇는 象徵的인 힘을 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 主人公이 生前 選擇받은 삶을 살아왔음은 그 骨格에서도 잘 드러난다. 當時 平均 年齡은 28歲 內外였고 平均 키는 男性 160cm, 女性 148cm에 不過했다. 하지만 이 黃金人間은 키가 180cm가 넘고 나이도 50代에 가까웠다. 그리고 손에는 權力을 象徵하는 黃金으로 鍍金한 指揮棒을 들고 있었다. 이 黃金人間 外에도 1kg에 가까운 黃金을 넣은 무덤 3基가 더 發見됐다. 甚至於 빈 무덤에 黃金이 가득 찬 境遇도 있었으니 黃金은 當時 바르나의 支配階級들이 널리 사랑했던 아이템으로 보인다.
海上交易으로 쌓은 部
그렇다면 또 다른 疑問이 든다. 果然 石器時代 道具를 使用하던 바르나 사람들은 都大體 어디서 黃金 만드는 技術을 배웠던 걸까. 그리고 그 엄청난 費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바르나의 黃金은 只今 視角으로 봐도 純度가 아주 높다. 이런 黃金을 抽出하기 위해서는 높은 溫度를 내는 火덕이 必須的이다. 그리고 新石器時代부터 사람들은 빵을 굽고 土器를 굽는 火덕을 使用하고 있었다. 卽, 높은 溫度를 내는 技術은 氷河期 以後 마을을 일구고 살던 新石器時代 마을 大部分이 갖고 있었다. 金屬이나 琉璃를 만드는 技術도 높은 溫度를 내는 火덕에서 出發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新石器時代에서 黃金이나 靑銅을 많이 만들지 못한 理由는 費用 때문이다. 鑛石을 採掘하고 높은 溫度의 火덕에 必要한 燃料 等에는 엄청난 費用이 든다. 그러니 古代 新石器時代人들이 黃金이나 靑銅의 存在를 알고 있었다고 한들 쉽게 만들어내긴 어려웠던 것이다.
바르나 遺跡地에서 나온 黃金 그릇, 裝身具, 도끼 等. 寫眞 出處 Armburster·Dmitrinov
하지만 바르나人들은 바다를 통한 交易으로 富를 쌓았다. 바다 交易路를 掌握한 德分에 經濟的으로 豐足해진 바르나 사람들은 많은 돈과 人力을 들여 高價의 黃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르나 사람들은 石器를 使用하는 中에도 裝身具는 黃金으로 만들어 治粧했다. 하지만 바르나人들의 이런 플렉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氣候가 바뀌고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바르나人들의 映畫도 瞬息間에 끝났다. 그들은 交易路가 끊어지면서 다시 以前의 時代로 돌아갔고, 그들의 存在는 記憶에서 完全히 사라졌다.
남는 것은 骸骨과 黃金뿐
바르나 墓地에서 發掘된 人間 머리 粘土 遺物. 實際 크기와 비슷하게 製作됐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바르나뿐 아니라 世界 곳곳의 많은 貴族과 王들은 무덤 속으로 自身의 富貴榮華를 가져가려 했다. 事實 古代 여러 地域에서 무덤에 수많은 黃金을 넣었다. 그들의 플렉스 終着驛은 바로 무덤인 셈이었다. 貴한 黃金을 쓸데없이 땅속에 넣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時代別로 조금씩 달라도 過去 사람들은 30, 40代를 넘기지 못하고 死亡했다. 只今같이 數十 年間 老年 生活을 할 必要가 없었던 그들은 우리가 年金을 넣듯 自身의 무덤에 黃金을 쌓아놓고 죽은 뒤 저世上에서 플렉스하면서 살려고 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같은 슈퍼리치들이 不老長生을 꿈꾸며 天文學的 돈을 投資하는 것도 같은 脈絡이다. 永遠히 富貴榮華를 누리며 살고 싶은 人間의 欲望은 當然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남는 것은 骸骨뿐이다. 永遠한 것은 黃金이지 人間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努力하여 黃金을 쌓아 놓은들 結局 우리는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運이 좋아 봐야 바르나의 黃金人間처럼 우리가 걸친 黃金이 未來 博物館의 展示品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約束된 幸福은 내 손에 걸친 黃金이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6500年 前 最初의 黃金人間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아닐까.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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