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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心히 했지만 失敗한 引受委員長 100大 課題 政府서 다 退字 놓더라”|신동아

“熱心히 했지만 失敗한 引受委員長 100大 課題 政府서 다 退字 놓더라”

김대중 政府 李鍾贊 前 委員長

  • 이정훈 記者│ hoon@donga.com

    入力 2012-12-27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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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引受委서 설익은 案 마구 흘러나와 國民은 混亂
    • 引受委 構成 서둘지 말고, 引受委員으로 組閣 必要
    • 大統領은 靜觀 하며 總理 人選 等 큰 그림 構想해야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 100大 과제 정부서 다 퇴짜 놓더라”

    李鍾贊<br>1936年 中國 상하이 出生 / 競技고-육사 16期. 少領 豫編 / 中央情報部 海外工作副局長-總務局長, 國家保衛立法委員 / 민정黨 院內總務, 政務1長官, 11~14代 國會議員, 새정치국민회의 副總裁 / 15代 大統領職引受委員長, 國精院長 歷任. 現在 友黨奬學會 理事長.

    “大韓民國 政府를 세울 때 最大 難題가 土地改革이었다. 制憲議會에 入城한 議員의 絶對 多數가 한민당員인데 그들은 大部分 地主 出身이라 土地改革을 極力 反對했다. 그때 李承晩 大統領이 어떻게 했나. 光復 後 朝鮮共産黨과 訣別한다는 聲明은 發表했지만 그 後 左右合作運動에 參與하고, 對日抗爭期에는 내내 共産主義 活動을 한 竹山 曺奉巖을 初代 農林部長官에 임명해 土地改革을 밀어붙였다. 德分에 6·25戰爭 때 人民軍이 내려왔어도 韓國에서는 農民 蜂起가 일어나지 않았다.

    南侵을 앞두고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을 찾아갔다. 스탈린이 ‘너희가 내려가면 勞動者 農民들이 旗발을 들고 呼應할 것인가’라고 묻자, 박헌영은 自身 있게 ‘그렇다’라고 對答했다. 남로당이 10·1 大邱暴動과 濟州島 4·3事件을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越北한 後 大韓民國에서는 조봉암 長官이 土地改革을 强力히 밀어붙여 小作人들이 땅을 갖게 했다. 이런 理由로 人民軍이 내려왔어도 農民들이 階級鬪爭을 벌이지 않았다. 이 일로 停戰(停戰) 後 김일성은 박헌영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며 ‘當身이 우리가 내려가면 無産階級이 呼應해 蜂起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르고 그를 肅淸했다.

    曺奉巖은 有償沒收 有償分配를 原則으로 土地改革을 했기에, 땅을 뺏긴 地主에게는 ‘지가(地價)증권’을 주었다. 그리고 銀行에 地價證券을 擔保로 貸出을 해주게 해, 支柱를 産業資本家로 誘導하려고 했다. 그러나 戰爭이 일어나 이 證券이 休紙가 되면서 産業資本家 育成이 霧散됐다. 土地改革과 産業化 同時 推進은 霧散됐지만 아무튼 土地改革은 성공시켰다. 그때 이 大統領이 曺奉巖을 起用하지 않았다면 只今 大韓民國은 없었을 것이다. 次期 大統領은 當選될 때 身世를 진 勢力을 起用하지 말고, 國家 發展에 必要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全力을 기울여야 한다.”

    最初의 大統領職引受委員長

    이종찬 前 國精院長은 1997年 김대중 大統領이 當選된 後 最初로 大統領職引受委員長을 맡았다. 그는 이 經驗을 土臺로 ‘大統領職 引受에 關한 法律(案)’을 制定했고, 이 法은 2003年 2月 國會를 通過해 法律로 確定됐다. 그를 만나 引受委 運營에 對한 敎訓을 들으려고 한 것인데, 그는 引受위가 아닌 大統領 當選人에 焦點을 맞춘 이야기부터 쏟아냈다.



    “咸鏡道 出身 軍人들은 大體로 勇敢했다. 朴正熙 大統領은 咸鏡道 出身 軍人들과 5·16을 성공시켰지만, 半(反)革命 嫌疑 等을 理由로 ‘알래스카’로 불린 그들을 除去하고 慶尙道 勢力이 中心이 된 4人 體制에 무게를 둬, 經濟開發을 推進했다. 政權을 잡을 때 身世 진 사람을 내친 것이다. 朴正熙 大統領은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餘裕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決定한 생각을 이루기 위해, 必要한 사람을 뽑아 活用했다. 當選人은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한다.

    大統領과 CEO는 時間 餘裕를 갖고 狀況을 바라보는 定款(靜觀)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大統領이 ‘얼리 버드(early bird·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면 안 된다. 李明博 大統領처럼 새벽부터 首席會議를 主宰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大統領이 首席과 會議하면, 長官들은 首席으로부터 通報를 받으므로, 首席의 눈치를 보게 된다. 首席이 뭔가? 保佐陣 아닌가? 保佐陣은 大統領에게 좋은 報告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大統領은 實情을 알지 못하고 골목大將 노릇만 하게 된다. 國家가 危機에 直面해도 바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危機가 커지면 原因 把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長官만 자꾸 바꾸게 된다.

    大統領은 保佐陣의 도움을 받아 部門(部門) 司令官인 長官을 直接 指揮해야 한다. 大統領은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을 運營할 줄 알아야 한다. 長官을 ‘우리 집 부엌에서 아침을 먹자’고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고 指示해야 長官들이 最善을 다하고 大統領도 現實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自己 任期와 함께 가는 長官을 만들어야 大統領은 計劃한 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

    ▼ 最初의 引受委員長으로서 次期 政府 引受委 運營에 어떤 助言을 하고 싶은가.

    “美國에서 조지 W 부시가 大統領에 當選됐을 때 누가 引受委에 들어갔는가. 副統領으로 當選된 딕 체니가 委員長, 國防長官을 하게 되는 럼스펠드와 國務長官이 되는 콜린 파월이 引受委員이었다. 나는 當選人에게 ‘引受위 만드는 일은 絶對 서두르지 말라’는 注文을 꼭 하고 싶다. 引受위는 새 政府 出帆을 코앞에 둔 2013年 2月 初에 構成해도 된다. 그때까지는 總理를 맡길 사람과 外交 國防 經濟 敎育 같은 큰 國政을 다룰 事實上 副總理級 長官을 찾는 데 注力해야 한다. 다음 政府에서 일할 사람들을 定해놓고 그들로 引受위를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最初의 引受委員長이었지만 失敗한 引受委員長이다. 내가 이끈 引受위는 수많은 公務員을 만나 次期 政府가 해야 할 100大 課題를 整理해 넘겼지만, 全部 無視됐다. 次期 政府에서 하지도 않을 일을 하느라 괜히 公務員들만 들볶았다. 次期 政府는 이러한 浪費를 反復하지 말아야 한다.”

    大統領은 人材 찾는 데 集中해야

    ▼ 引受委 自體보다는 引受위를 運營할 當選人의 姿勢에 더 關心이 많은 것 같다. 次期 政府에서 큰일을 할 사람으로 引受위를 構成한다고 해도 當選人은 그 引受위를 어떻게 運營할 것인가란 問題에 부딪히지 않는가.

    “6·25戰爭 때 왜 많은 小委가 戰死했는지 아는가. 師團長이 大隊長 자리에 와 있으니 大隊長은 中隊長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中隊長은 小隊長 자리로 뛰어갔다. 그러니 小隊長들은 마음이 急해져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突擊하다 줄줄이 戰死했다. 師團長이 할 일은 따로 있는데 大隊長이 할 일을 干涉해버리니 바쁘기만 하고 實속이 없어진다.

    故(故) 이병철 三星 會長은 絶對로 바쁘게 지내지 않았다. 年末이 다가오면 도쿄(東京)로 날아가 溫泉을 하며, 識見 있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새 일이 構想되면 돌아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맡기고, 그에게서 어떻게 하겠다는 報告를 받으면 꼼꼼히 메모를 했다. 그러고는 分期가 지날 때 불러 進行된 狀況을 보고 받고 기다려주었다. 於此彼 年末이 되면 貸借對照表가 正確히 나올 것이니까.

    反面 나와 가깝게 지냈던 某 會長은 直接 챙겼다. 그 바쁜 사람이 안 되는 會社가 있으면 달려가 社長을 밀쳐놓고 直接 指示를 했다. 그러니 社長들은 시키는 것만 하게 되고 創意的인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 會長이 아무리 有能해도 열 사람의 머리를 當하겠는가. 三星이 繁昌하고 三星만큼 巨大했던 그의 그룹이 무너진 것은 最高 指導者의 리더십 差異였다.

    當選人은 急히 引受위를 만들어 迅速히 權力을 넘겨받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조용한 山寺에 들어가 5年 동안 할 日부터 構想하는 定款을 해야 한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끊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있으면, 사람을 보는 智慧가 생겨난다. 當選人에게 必要한 것은 迅速히 引受위를 만드는 것보다 그가 해야 할 일을 整理하고 그 일을 해낼 사람을 愼重히 찾아내는 定款이다.”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인수위원장 100大 과제 정부서 다 퇴짜 놓더라”

    1998年 2月 新件 引受委員(왼쪽)과 귓속말을 나누는 李鍾贊 初代 大統領職引受委員長.

    ▼ 國家를 이끌 帝王學(帝王學)에 對해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只今 우리 政治界에는 國家를 이끌 만큼 큰 人物들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 政治學界度 市民政治, 政治哲學 等 작은 政治學은 가르쳐도 國家를 運營하는 큰 政治學은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政治學의 領域은 줄어들고 經營學이 커졌다. 사람을 다루는 用人術은 오히려 經營學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잭 웰치의 리더십이나 鄭周永의 리더십을 가르치는데, 거기에 外交 安保 福祉 敎育을 더하면 方今 말한 帝王學 分野가 아니겠는가. 왜 政治에 人物이 모이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只今 日本이 매우 작은 政治를 하고 있다. 未安한 이야기지만 日本 政界에는 올망졸망한 拙丈夫들이 모여 있기에 突破를 하지 못한다.

    日本의 經濟 豫測 專門家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한 選擧區에서 한 名의 當選人을 내는 小船救濟가 日本 政治를 망쳤다’고 批判했다. 한 사람만 當選되니 出馬者들은 어떻게 해서든 人氣를 끄는 데만 集中해, 國家 비전을 만드는 일을 疏忽히 한다는 것이다. 日本의 前轍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도 選擧制度 等을 再檢討할 必要가 있다.”

    ▼ 김대중 大統領은 큰 政治를 했는가.

    “노태우 大統領은 中國 蘇聯과 修交하는 물꼬를 텄지만 寫眞 찍기를 좋아했다. 1989年 盧 大統領은 借款을 주기로 하고 濟州島에서 30餘 分間 고르바초프 蘇聯 共産黨 書記長을 만났다. 그때 찍은 寫眞이 北方政策 象徵이 됐다. 이듬해 盧 大統領은 서동권 安企部長을 北韓에 보내 頂上會談을 打診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껄껄 웃으면서 ‘結果도 없이 寫眞이나 찍는 頂上會談을 뭐 하려고 하자느냐’라고 물었다.

    徐 部長이 ‘結果를 내면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자, 김일성은 ‘좋다. 그렇다면 高麗聯邦制를 받아들이겠다고 해라. 高麗聯邦制를 받아들인다면 얼마든지 頂上會談을 하겠다’고 했다. 高麗聯邦制는 받아들일 수 없기에 徐 部長은 더 以上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는 頂上會談이라는 한 主題에 매달렸기에 우리가 失敗한 境遇에 該當한다.

    김대중 大統領과 김정일 國防委員長이 만났을 때 김정일이 駐韓美軍 撤收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金 大統領은 바로 ‘只今 駐韓美軍은 當身들과 敵對的이지만, 우리가 停戰體制를 끝내고 平和體制로 갈 때 中國과 日本이 우리를 넘보는 것을 막으려면 駐韓美軍이 있는 게 낫다. 北韓은 駐韓美軍 問題에 너무 神經質的일 必要가 없다’고 했다. 金正日은 ‘그 말이 맞다’고 하면서 ‘그러나 쭉 反美를 해왔는데 갑자기 親美를 할 수 없다. 徐徐히 그쪽으로 가면서 美國과 平和條約으로 國交를 맺어야겠다’라고 하자, 金 大統領도 그렇게 하라고 同意했다. 그러한 合意가 있었기에 김대중 政府는 北韓이 美國에 앞서 西方國家들과 修交하는 것을 도왔다.

    이것이 큰 政治다. 大統領이 작은 것까지 다 챙기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 아까 失敗한 引受委員長이라고 自評하셨는데 이는 김대중 政府와의 色깔 差異로 引受위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뜻인가.

    “아니다. 只今은 김대중 政府라고 하지만, 그때는 자민련과의 共同政府, DJP 聯合政權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國民회의에 合流한 사람인데 자민련에는 過去 민정당에서 같이 活動한 사람이 많았다. 김대중 當選人은 兩쪽 融合을 위해 나를 引受委員長에 임명했다.

    그때 最大 問題點은 草案으로 檢討되던 것들이 마구 言論에 報道되는 것이었다. 草案은 아무래도 過激할 수밖에 없고 邪見에 가까운데 引受委員들이 記者들에게 흘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引受위가 國保委냐, 革命政府냐?’ 하는 批判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5個 小委員會를 만들고 公報官을 둬, 每日 5個 小委員長과 會議한 後 거기에서 決定된 것만 公報官을 통해 發表하게 했다. 初期에 邪見에 가까운 成熟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마구 發表된 것과 그것을 收拾해 整理한 課題를 導出했는데, 次期 政府에서 그것이 採擇되지 않은 것이 내가 引受委員長으로 失敗했다는 뜻이다.”

    전두환은 통 큰 政治

    ▼ 全斗煥 政權 出帆에도 參與했다. 전두환 大統領이 國家保衛立法會議를 만들 때 立法委員을 했고, 民政黨 出帆 때는 招待 院內總務를 맡았다. 國保委와 立法會議는, 어떻게 보면 大統領職引受위와 性格이 비슷한 것 같다. 쿠데타로 세웠느냐 選擧로 만들었느냐는 差異가 있지만.

    “전두환 大統領에 對해서는 많은 異見이 있지만 그도 통 큰 政治를 하려했다. 나는 中尉 때 朴正熙 所長이 만든 國家再建最高會議에 派遣돼 있으면서 全斗煥 大尉와 暫時 만나고 그 後 별다른 因緣 없이 지냈다. 朴正熙 政府 때 나는 中央情報部(中情)의 海外工作 副局長을 하면서 김재규 部長의 祕密 指示로 武器 去來商인 아이젠버그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에 抑留돼 있는 이대용 工事를 빼내는 工作을 하다 10·26을 맞았다. 中情部長이 朴 大統領을 弑害했으니 중정의 모든 公爵은 中止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工事만은 빼내와야겠기에 전두환 保安司令官을 찾아갔더니 ‘繼續하라’고 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전 司令官이 中情部長을 兼職하면서 나를 總務局長에 任命해 中庭 改革 任務를 맡겼다. 이어 민정당 創黨을 맡기고 院內總務를 하게 했다. 나는 그와 깊은 因緣이 있는 것도 아니고 12·12에 參與한 것도 아닌데, 나를 쓴 것이다.

    院內總務 첫해, 새해 豫算案을 통과시키려는데 野黨이 反對하며 國會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耳目(耳目)을 被害 고재청 민한당 院內總務를 國會圖書館에서 만나 理由를 물었더니, ‘大統領 동생(전경환)李 事務總長을 한다고 새마을中央會 豫算을 4倍나 增額시킨 豫算案을 우리는 票決해줄 수 없다. 與黨이 날치기를 하려면 해라. 우리는 絶對 못 들어간다’라고 했다. 그때 새마을中央會 豫算이 그렇게 늘어난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靑瓦臺로 電話를 걸자 허화평 政務首席이 받았다. 그에게 用件을 밝히고 大統領 面談을 要請했더니 한 時間 後 虛 首席으로부터 ‘大統領이 豫算案은 院內總務 所管인데 왜 大統領 意見을 묻느냐며 逆情을 냈다’는 答信이 왔다. 그래서 ‘아, 해도 되겠구나’는 判斷이 들어, 고 總務를 만나 새마을中央會 豫算을 모두 깎아버릴 테니 國會에 들어와달라고 했다. 그제야 野黨이 會議場에 들어왔다. 票決에서는 富(否)票를 던졌지만, 參與 속에 한 反對였다. 5共이 만든 첫 豫算案이 날치기 通過되는 것은 避할 수 있었다.

    前 大統領은 自己 사람만 固執하지 않았다. 괜찮다 하는 이가 있으면 自己 人脈이 아니어도 廣範圍하게 起用했다. 危機에 빠진 韓國 經濟를 살려낸 김재익 經濟首席이 代表的인 境遇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相當한 權限을 委任했다. 우리 當選人도 그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

    指導者는 檢證 過程 거쳐야

    ▼ 大統領이 될 사람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은 充分히 알아듣겠다. 오너가 있는 企業이라면 오너가 오랫동안 重役을 觀察할 수 있기에 有能한 사람을 CEO로 쓸 수 있다. 그러나 民主國家에서는 選擧로 大統領을 뽑으니 日本의 小選擧區 事例처럼 人氣 있는 사람이 當選 된다.

    “民主主義는 所重한 制度이지만 반드시 좋은 結果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點도 알아야 한다. 안철수 氏처럼 처음 나와서 바로 大統領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오지 말았으면 한다. 指導者가 되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면서, 國民에게 지켜볼 수 있는 機會를 줘야 한다. 처칠이나 드골처럼 先見之明을 갖고 所信껏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國民은 지켜보다 그를 巨人(巨人)으로 보고 뽑아준다. 國會議員을 뽑는 것과 大統領을 뽑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國民은 오래 지켜볼 時間이 있으면 벼랑 끝에서도 한발을 내디딜 수 있는 이를 大統領으로 뽑게 된다.”

    引受위는 革命政府 아니다

    李 前 院長은 “當選人은 引受위를 빨리 만들어 權力을 넘겨받는 데 集中하지 말고, 다음 政權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데 集中해야 한다. 引受委 따로, 次期 政府 따로 움직이는 것은 避해야 한다”며 當選人을 위해 이러한 事例를 들어주었다.

    “後날 40代 日本 總理가 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公告 夜間部만 나왔음에도 考試 出身이 櫛比한 大藏省(大藏省)을 잘 이끌어, 가장 有能한 大藏相이라는 評價를 들었다. 똑똑한 大藏省 官僚들을 向해 ‘이 分野는 當身이 最高’라며 맡겨놓고 正確히 結果를 챙겼기 때문이다.

    將星 敎育을 시키는 美 陸軍의 參謀大學에 들어가려면 素養試驗을 치러야 한다. 素養試驗에는 이러한 問題가 나온다고 한다. ‘貴下는 前 아시아를 擔當하는 太平洋司令官인데, 北韓軍 2軍團이 休戰線을 突破해 京畿道 地域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韓國軍 1軍團의 豫備隊인 30師團을 動員해 突破된 戰線을 틀어막고, 3軍의 豫備隊인 7群團으로 逆襲을 한다고 쓰면 脫落이다. just observe, ‘觀照(觀照)하고 있겠다’고 써야 正答이다.

    韓半島 狀況은 韓美聯合司令官 次元에서 對處할 일이기 때문이다. 太平洋司令官은 電球(戰區)司令官이다. 戰區司令官은 一線 司令官이 作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못하면 바꿔주고 잘 하면 激勵해주면 된다. 그것이 戰區司令官의 任務다. 一線 司令官이 할 일을 戰區司令官이 해버리면, 現場에서는 多急해진다.

    또 하나 例를 하나 들겠다. 美國이 오사마 빈 라덴의 據點을 確認해 作戰할 때 오바마 大統領은 구석 자리에서 畵面을 보며 特殊作戰 擔當 將軍이 現場을 指揮하는 場面을 지켜봤다. 그때 오바마가 가죽점퍼를 입고 설쳤다면 그 作戰은 失敗했을 것이다. 作戰指揮官이 해야 할 일을 大統領이 나서서 하지 말라.

    다음 大統領은 이런 觀點을 갖고 用人術을 發揮했으면 좋겠다. 急히 引受위를 만들어 權力을 行使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천천히 愼重하게 組織해야 한다. 引受委員을 次期 政府에 長官으로 起用해 그가 目標한 政策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5年 任期를 함께해야 한다. 引受위는 決코 革命政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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