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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年間 지켜온 義理가 防産·化學·金融 3大 軸 일군 ‘韓貨’ 革新의 原動力|新東亞

70年間 지켜온 義理가 防産·化學·金融 3大 軸 일군 ‘韓貨’ 革新의 原動力

創立 70돌 韓華그룹 ‘挑戰과 開拓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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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記者

    sejoonkr@donga.com

    入力 2022-10-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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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石油波動·外換危機·金融危機 겪으며 體質 바꿔

    • 金昇淵 會長 就任 後 企業 資産 300倍 늘어

    • 系列社 1981年 19個 → 2021年 91個

    • 危機의 企業 引受해 黑字로 바꿔낸 勝負師

    • 信用과 義理로 被引受社 任職員 마음 얻어내

    • ‘돈 먹는 河馬’ 防産에서도 ‘잭팟’

    • ‘다이너마이트 킴’ 때부터 지켜온 信用과 義理

    10월 8일 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린 ‘2022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행사는 2000년부터 한화그룹이 주관하고 있다. [뉴스1]

    10月 8日 밤 서울 汝矣島 漢江公園 一帶에서 코로나19 以後 3年 만에 열린 ‘2022 서울世界불꽃祝祭’에서 華麗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行事는 2000年부터 한화그룹이 主管하고 있다. [뉴스1]

    “現在를 破壞하는 企業만이 새로운 未來를 가질 수 있다. 創造는 破壞의 또 다른 이름이다.” ‘創造的 破壞’ 槪念을 만든 經濟學者 조지프 슘페터가 著書 ‘資本主義, 社會主義 그리고 民主主義’를 통해 남긴 말이다.

    한화그룹은 韓國 社會에서 創造的 破壞를 자주 이뤄온 企業이다. 火藥 産業을 始作으로 化學 全般으로 業을 넓혔으며 以後 化學科는 無關한 金融 産業을 거쳐, 最近에는 再生에너지, 宇宙産業 等에 挑戰하고 있다. 防衛産業 강자이祈禱 하다.

    한화의 創造的 破壞는 슘페터의 理論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旣存 主力 事業을 維持한 狀態에서 새로운 事業에 挑戰한다. 傳統을 지키는 同時에 革新을 해온 것. 그 德分에 한화는 多才多能한 會社로 成長했다. 1981年 19個이던 系列社는 지난해 基準 91個로 늘었다.

    就任 41年 만에 한화그룹을 100倍 成長시킨 金昇淵 會長은 10月 11日 創立 70周年 記念辭에서 한화를 100年 企業으로 育成하기 위해 “成功 方程式을 허물어서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자”고 强調했다.

    引受合倂으로 企業 資産 300倍 成長

    한화그룹 창업주 고(故) 현암 김종희 전 회장. [한화]

    한화그룹 創業主 故(故) 현암 김종희 前 會長. [韓貨]

    한화는 1952年 創業主인 현암(玄岩) 김종희(金鍾喜·1922~1981) 前 會長이 釜山에서 設立한 한국화약이 母胎다. 以後 朝鮮維持 仁川工場을 引受해 事業 基盤을 닦았다. 1956年부터는 이 工場에서 火藥을 만들었다. 1959年에는 彈藥 等 軍用 火藥을 納品해 防衛産業을 始作했다. 같은 해 다이너마이트 國産化에 成功했다. 韓國은 日本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番째로 다이너마이트 生産國이 됐다. 이때부터 1963年까지 한화는 火藥 産業에 專念했다.



    1965年 韓國化成功業(現 한화케미칼 및 한화 L&C)을 設立, 플라스틱 産業에 進出하면서 石油化學産業의 발板을 마련했다. 한국화약 貿易 部署에서 取扱해 온 貿易, 消費財, 火藥 等의 業務는 1966年 太平物産(現 ㈜한화/貿易)으로 系列 分離했다. 以外에도 1969年 京仁에너지(現 SK仁川石油化學) 設立, 1972年 韓國프라스틱工業 引受合倂을 통해 石油化學産業 進出이라는 結實을 일구었다. 1973年에는 動員工業을 引受했으며 太平開發(現 韓華호텔&리조트)을 設立해 플라자호텔을 開館?運營했다. 1974年 유니온捕吏마(現 韓華컴파운드)를 設立했고 1976年에는 聖徒證券(現 韓華證權)을 引受했다.

    김종희 創業主가 1981年 持病으로 他界한 뒤 金昇淵 韓華그룹 會長이 司令塔에 올랐다. 承繼 當時 金 會長의 나이는 29歲. 企業 總帥로는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니냐는 憂慮의 목소리도 있었다.

    財界의 憂慮와는 달리 金 會長은 積極的 引受合倂으로 會社를 키웠다. 引受合倂의 時點이 絶妙했다. 經濟危機가 끝나는 起點마다 會社를 사들였고, 이 會社들이 한화의 主要 事業이 됐다. 金 會長이 한화를 이끌기 始作한 1981年 韓華 總資産은 7548億 원. 現在 總資産은 229兆 원으로 300倍 넘게 늘었다. 年間 賣出額도 같은 期間 1兆1000億 원에서 61兆1000億 원으로 늘어났다.

    글로벌 市場에서도 빠르게 成長했다. 1981年 7個에 不過하던 海外 據點은 470餘 個로 늘었다. 海外 賣出은 2020年 基準 16兆7000億 원에 到達했다. 多種多樣한 系列社 海外 進出은 앞으로도 擴大될 것으로 보인다. 金 會長은 2020年 職員과의 對話에서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大陸을 橫斷하는 철새의 生存 本能을 배우라”며 各 系列社의 글로벌 市場 進出을 督勵했다.

    29歲 金昇淵, 經營陣 灣流 뿌리치고 石油化學産業 키워내

    金昇淵 會長이 就任한 1981年은 第2次 石油波動(1979~1981) 時期였다. 原資材 上昇으로 石油化學産業은 勿論 大部分의 産業이 危機에 處했다. 이때 金 會長은 石油化學企業 引受 計劃을 세웠다. 以後 午日쇼크가 잦아든 1982年 漢陽化學과 韓國다우케미칼을 引受해 石油化學을 한화그룹의 主力 事業으로 키워냈다.

    當時 漢陽化學과 韓國다우케미칼은 各各 75億 원, 430億 원의 赤字를 記錄하고 있었다. 經營陣은 두 會社를 引受하겠다는 金 會長을 挽留했다. 石油化學企業의 將來가 밝지 않다는 것이 그 理由였다. 金 會長은 引受를 强行했다. 選球眼은 正確했다. 한화는 引受 1年 만에 이 두 會社를 黑字로 轉換했다. 引受 4~5年 뒤에는 名實相符 한화의 孝子 企業이 됐다. 한화 系列社 總賣出度 1980年 7300億 원에서 1984年 2兆1500億 원이 됐다. 이 會社들은 成長을 거듭해 現在의 韓華솔루션의 케미칼·尖端素材 部門이 됐다.

    1986年 빙그레 이글스(現 한화 이글스)를 創團하고 정아그룹(現 韓華호텔&리조트)과 한양유통을 引受했다. 한양유통이 運營하던 漢陽쇼핑센터는 한화그룹에서 갤러리아百貨店으로 이름을 바꿨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한화의 품에 들어온 지 2年 만에 賣出額 2100億 원을 記錄했다. 引受戰 平均 賣出額의 2倍를 넘는 數値다. 以外에도 國內 最初 名品館 開館 等 百貨店 事業 트렌드를 이끌었다.

    韓華호텔&리조트는 綜合 레저·서비스 企業으로 자리 잡았다. 410個 客室을 갖춘 特級호텔 더 플라자와 100室 規模인 호텔 벨메르를 運營 하고 있다. 2021年 7月 講院 襄陽郡에 國內 最初 서핑&힐링 콘셉트의 브리드호텔 襄陽을 오픈하기도 했다. 韓華호텔&리조트는 또한 總 5200客室人 國內 12個 리조트와 海外 리조트 1곳(사이判 월드리조트), 國內外 골프場 5곳(銃 108홀)을 運營하고 있다.

    會長 就任 後 5年 만에 産業 領域을 火藥·防衛産業(방산)에서 石油化學, 流通, 레저까지 擴張했다. 이를 契機로 한화는 單숨에 財界 10大 그룹 班列에 올랐다.

    無報酬로 일하며 大韓生命 業界 最高로

    1990年代를 거치며 石油化學 專門企業으로 成長한 한화는 國際通貨基金(IMF) 外換危機 事態를 契機로 다시 한番 體質을 바꾼다. 外換危機 事態가 끝난 2002年 赤字를 持續하던 大韓生命(現 韓火生命)을 引受했다. 當時 累積損失額만 3兆 원에 達하는 會社였다. 한화 關係者는 “引受 前 대한생명은 大株主의 專橫 및 系列社의 不實貸出로 金融監督院의 特別 監査를 받고 있었다”며 “營業組織度 事實上 崩壞 狀態였다”고 說明했다.

    當時 한화의 狀況도 좋지 않았다. 外換危機를 거치면서 系列社 數가 37個에서 17個로 줄어든 狀況. 1998年 2月에는 主要 系列社인 한화에너지가 不渡 危機에 逢着했다. 金 會長은 系列社 株式과 金融資産, 不動産 等 私財를 擔保로 政府 緊急資金 支援을 받았다. 資金 支援을 위해 當時 金 會長은 韓華에너지 經營權 抛棄 覺書까지 提出해야 했다.

    引受 直後 金 會長은 大韓生命 살리기에 注力했다. 맡고 있던 모든 系列社 代表理事職을 내려놓고 2年間 無報酬로 대한생명 代表를 맡았다. 不實 貸出과 無關한 經營陣을 重用하며 會社의 基礎體力을 維持했다. 이 같은 努力 끝에 한화는 대한생명 引受 6年 만에 黑字 轉換에 成功했다. 대한생명은 2012年 社名을 韓火生命으로 바꾸고 2021年 基準 資産 127兆 원의 優良 保險社가 됐다. 現在는 三星生命, 교보생명과 함께 名實相符 國內 3代 生命保險社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金融危機 以後인 2012年 10月에는 破産한 獨逸 太陽光 企業 큐셀(現 韓華솔루션 큐셀 部門)을 사들였다. 큐셀은 2008年 太陽光 셀 生産能力 世界 1位를 記錄할 程度로 競爭力 있는 業體였다. 하지만 太陽光産業의 長期 不況과 中國 太陽光業體가 大擧 登場하며 2012年 4月 破産했다. 6個月 뒤 韓華가 큐셀을 引受했을 때는 營業赤字만 4420萬 달러(635億 원)에 達했다. 工場 稼動率도 20~30%에 不過했다.

    引受 當時 周邊의 反對도 極甚했다. 國內外 證券社 애널리스트들은 큐셀이 價格競爭力이 없다는 部分을 指摘하며 ‘魅力的이지 않은 去來’라고 評價했다. 게다가 2011年 始作된 太陽光 市場 沈滯로 國內 企業 大部分이 太陽光 事業에서 발을 빼는 狀況이었다.

    破産한 글로벌 1位 太陽光業體 되살려

    金 會長은 큐셀 引受를 電擊 決定했다. 一旦 2014年 以後부터는 太陽光 市場이 規模의 經濟만 갖추면 本格的 成長勢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展望 때문이었다. 苦心하던 金 會長은 “太陽光産業은 會社의 利益이 아니라 國家와 人類에 寄與하는 길”이라며 引受를 最終 決定했다.

    引受 直後 한화는 큐셀의 體質 變化에 나섰다. 前 職員을 相對로 最高經營者(CEO) 面談과 狀況 說明會를 數次例 벌였다. 長期間 破産 狀態로 지쳐 있는 任職員들을 督勵하기 위해서였다.

    引受 後 10年이 지난 2022年 韓華솔루션은 世界에서 손꼽히는 太陽光 業體로 거듭났다. 韓華솔루션은 太陽光 모듈의 核心 素材인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를 生産한다. 9月 7日에는 GS에너지와 손잡고 全南麗水産業團地에 EVA 生産企業 에이치엔지케미칼을 設立하기로 했다. 이로써 年間 EVA 生産能力은 總 92萬t, 美國 엑슨 모빌(79萬t)을 제치고 글로벌 1位 EVA 生産企業이 됐다.

    韓華솔루션은 現在 時價總額 基準 韓華 最大 系列社다. 7月 18日 基準 韓華솔루션의 時價總額은 6兆1849億 원으로 한화 系列社 全體 時價總額(21兆 원)의 35%에 達한다.

    한화는 2014年 母胎 産業 中 하나였던 防産 力量을 强化하기 始作했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三星토탈, 三星탈레스 等 삼성그룹의 防産 企業을 1兆9000億 원에 사들인 것. 한화는 引受 後 物的 分割과 內部 合倂을 통해 그룹 支配構造를 改編했다. 各 系列社들의 專門性을 살려 獨立法人을 新設했고, 重複 事業은 果敢히 합쳤다. 이를 通해 韓華에어로스페이스(航空엔진·航空産業), 韓華디펜스(防産武器), 韓華시스템(IT·防産), 韓華精密機械(精密·工作機械), 韓華파워시스템(에너지), 한화테크윈(시큐리티) 等의 防衛事業體를 꾸렸다.

    當時만 해도 防産은 이른바 ‘돈 먹는 河馬’였다. 防産業界 關係者는 “防産의 主 消費者는 國防部인데, 國家機關인 만큼 利潤을 높게 策定하기 힘들다”며 “結局 答은 輸出뿐인데 2010年代만 해도 韓國 武器가 海外에 輸出되는 境遇가 드물었다”고 말했다. 實際로 삼성테크윈이 만들던 K-9 自走砲(以下 K-9)가 印度, 튀르키예 等에 輸出되기는 했으나 輸出額이 크지 않았다.

    10월 10일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USA (AUSA 2022 Annual Meeting & Exposition) 방산 전시회 한화 부스에 K-9자주포와 K-10 탄약보급장갑차가 전시돼 있다. [한화]

    10月 10日 美國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USA (AUSA 2022 Annual Meeting & Exposition) 防産 展示會 韓華 부스에 K-9自走砲와 K-10 彈藥普及裝甲車가 展示돼 있다. [韓貨]

    ‘돈 먹는 河馬’ 防産에서도 ‘잭팟’

    지난해부터 狀況이 바뀌었다. 濠洲가 K-9을 大擧 購買했다. 契約 金額만 1兆 원에 達한다. 올해 2月에는 이집트와 2兆 원 規模의 K-9 輸出 契約을 맺었다. 7月에는 폴란드와 戰鬪機, 戰車, 自走砲를 모두 販賣하는 契約을 맺었다. 契約 總 規模는 145億 달러(20兆5000億 원). 防産業界 關係者는 “K-9이 팔리면 以後 契約에서 彈藥輸送裝甲車, 指揮裝甲車 等 다른 武器도 自然히 팔리게 된다”며 “以外에도 販賣한 武器를 維持·補修하는 過程에서 繼續 收益이 發生할 可能性이 높다”고 說明했다.

    한화는 濠洲의 陸軍型 步兵戰鬪裝甲車 事業에 挑戰하고 있다. 韓華가 내놓은 製品은 AS-21 레드백. 이 事業에 最終 選定되면 販賣 賣出만 5兆 원, 維持補修 費用까지 合하면 10兆 원의 賣出을 올릴 수 있다.

    賤덕꾸러기 防産 系列社들이 實績을 내며 알짜로 變하자 한화는 다시 한 番 防衛社業體 部門을 再構成했다. 7月 29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傘下에 그룹 內 防産 力量을 집중시켰다. 韓華에어로스페이스는 航空産業 外에도 國産 次世代 戰鬪機 KF-21의 엔진을 組立·生産하고 있다. 韓華에어로스페이스 側은 “그룹 防産 力量을 集中시켜 2030年까지 글로벌 10位圈의 防産業體가 되겠다”고 밝혔다.

    各 系列社는 방산 市場에서 쌓은 技術力을 바탕으로 다양한 未來産業에 挑戰하고 있다. 가장 代表的 例가 韓華에어로스페이스. 6月 發射에 成功한 韓國 最初 宇宙發射體 羅老號의 엔진을 開發했다. 3月에는 人工衛星 製造業體 쎄트렉아이 經營權을 引受했다. 이곳은 國內 最初 人工衛星인 ‘우리별 1號’를 開發한 企業이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엔진을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국내 讀者 技術로 開發된 韓國型 發射體 누리號(KSLV-Ⅱ)가 6月 21日 全南 高興郡 羅老宇宙센터에서 發射되고 있다. 韓華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號의 엔진을 開發했다. [韓華에어로스페이스]

    以外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純粹 國內 技術 宇宙發射體 누리號의 開發을 主導할 計劃이다. 科學技術情報通信部는 10月 7日 宇宙開發振興實務委員會를 열고 누리號 技術移轉을 위한 體系綜合企業 優先協商對象者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고 밝혔다.항공우주연구원과 技術移轉 等 協商을 거친 뒤 11月에는 體系綜合企業으로 選定된다. 韓華에어로스페이스 關係者는 “누리號를 包含해 多數의 宇宙 事業에 積極 參與했던 한화의 努力이 結實을 보았다”며 “優先協商對象者로서 남은 節次에 忠實히 臨해 航宇硏으로부터 關聯 技術을 成功的으로 移轉받을 수 있도록 最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韓華시스템은 都心航空모빌리티(UAM) 市場에 進出해 에어택시 ‘버터플라이’를 開發하고 있다. UAM 機體 開發과 함께 航行·管制 部門 情報通信技術(ICT) 솔루션 構築에도 速度를 내고 있다.

    赤字 會社들이 한화에만 入城하면 알짜 企業으로 變貌해 온 理由는 무엇일까. 한화 側은 赤字企業 急速 成長의 原因을 사람에서 찾았다. 한화 關係者는 “通商 企業을 引受하면 構造調整을 통해 運營費用을 줄인다”면서 “한화는 大部分 雇傭을 維持하고 旣存 職員을 重用했다”고 밝혔다.

    引受 後 任職員 끌어안아 높은 成果 記錄

    이는 한화의 經營 哲學이 反映된 것으로 알려졌다. 韓華 社가 첫 小節도 “信用과 義理로 가꾸어온 우리 韓華”일 程度. 金 會長의 經營活動 全般에 녹아 있는 經營 哲學도 바로 이 ‘信用과 義理’다. 任職員을 믿어주고, 그들에 對한 義理를 다하면 自然히 좋은 成果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金 會長의 職員 사랑은 會長職 就任 때부터 돋보였다. 1981年 就任式을 代身해 가진 新入社員과의 對話에서 그는 “함께 보람 있는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해 世界 속으로 뻗어나갑시다”라고 말했다. 單純히 말로만 그치지는 않았다. 金 會長은 대한생명 引受 때도 職員들의 雇傭保障을 最優先 條件으로 내걸었다. 한화 側은 “被引受社 職員들을 差別 없이 待遇하는 것은 勿論, 이들의 長點을 배우는 열린 態度가 빠른 黑字 轉換의 祕訣”이라 밝혔다.

    한화는 最近 大宇造船海洋 引受에 着手했다. 産業銀行은 9月 26日 大宇造船과 韓華가 2兆 원의 有償增資 方案을 包含한 條件附 投資合意서(MOU)를 締結했다고 밝혔다. 이 契約에 따르면 한화는 大宇造船 앞으로 2兆 원 規模의 有償增資를 實施해 49.3%의 持分과 經營權을 確保하게 된다.

    有償增資가 成功的으로 마무리되면 한화의 公正資産(一般系列社 資産總額+金融系列社 資本總額)은 80兆3880億 원에서 91兆8030億 원으로 11兆4150億 원 늘어난다. 公正資産規模 財界 6位인 포스코(94兆5280億 원)와의 隔差는 2兆7197億 원으로 줄어든다. 더불어 財界 8位인 GS그룹과의 資産 差異는 16兆5000億 원으로 늘어난다.

    一角에서는 대우조선을 ‘毒이 든 聖杯’라고 한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公的資金 13兆 원을 大宇造船에 投入했지만 黑字 轉換에 失敗했다. 올해 反旗 損失額만 1兆2400億 원이다. 財界 關係者들은 한화가 이番에도 黑字轉換에 成功할 것이라고 봤다. 한 關係者는 “來年을 起點으로 배의 價格이 올라가고 있다”며 “한화는 防産에도 進出해 있으므로 商船 外에 軍艦 等 新事業 挑戰도 可能하다”고 診斷했다. 한화 側도 “한화가 사들인 企業은 大部分 危機였다”며 “이番에도 危機의 대우조선을 韓華가 살려 그룹의 새 먹거리로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信用과 義理

    한화의 經營理念 ‘信用과 義理’의 뿌리는 金昇淵 會長의 아버지이자 創業主인 김종희 前 會長이다. 金 前 會長의 別名은 ‘다이너마이트 킴’. 韓國 最初로 다이너마이트 開發에 成功해서이기도 하지만 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性情을 잘 나타내는 別名이기도 하다. 別名대로 그는 會社 안팎에서 信用과 義理를 잘 지키는 人物이었다.

    金 前 會長의 人物像을 보여주는 逸話가 있다. 1940年 京畿道立商業學校(現 경기상고) 在學 時節 金 前 會長은 싸움에 휘말렸다. 下校길에 같은 學校 럭비부의 日本人 學生 4名이 朝鮮人 學生 3名을 毆打하는 모습을 發見한 것. 劣勢에 몰린 朝鮮人 學生을 보는 瞬間 金 前 會長은 앞뒤 가리지 않고 朝鮮人 學生 便에 加勢했다. 이 事件으로 退學 處分을 받은 金 前 會長은 元山商業高等學校로 編入했다.

    以後 한국화약을 세우고 火藥 産業이 繁昌하던 1977年 11月 11日 大型 事故가 터진다. 광주역으로 가던 한국화약의 貨物 列車가 다이너마이트와 電氣雷管 等 爆發物 40t을 싣고 이리역(現 益山驛)에서 停車하던 中 暴發했다. 이 事故로 驛에서 勤務하던 鐵道 公務員 16名을 包含해 59名이 死亡했고 1343名이 重傷 및 輕傷을 입었다. 光復 以後 가장 큰 規模의 事故였다.

    金 前 會長은 當時 그의 全 財産인 90億 원을 내놓겠다는 큰 決斷으로 事態 解決에 나섰다. 當時 90億 원은 現在 物價로 換算하면 5000億 원이 넘는 巨金이다. 모든 韓國火藥 任職員도 災害復舊에 總動員했다. 系列社 前 職員들은 事故로 다친 사람들을 위해 獻血에 參與했다.

    金昇淵 會長의 性程度 김종희 創業主와 비슷하다. 先代가 不義에 抵抗하고 會社의 失手에 責任感 있게 對應했다면 2代는 崇高한 犧牲을 한 숨은 英雄들을 激勵하고 文化·藝術 分野 發展을 圖謀하는 일에도 힘썼다.

    2010年 천안함 被擊 事件이 벌어지자 金 會長은 犧牲者 遺家族 特別 採用 制度를 마련했다. 犧牲者 46名 中 38名의 家族 가운데 遺家族의 年齡, 經歷 等을 綜合해 系列社에 24名이 就業했다. 國家가 抛棄한 愛國者 로버트 김을 後援한 것도 韓華였다. 1996年 江陵武裝共匪 浸透事件 直後 美國 海軍 情報分析官으로 勤務하던 로버트 金은 韓國 政府가 알아야 하는 情報 中 美國 政府가 알려주지 않은 情報 等을 駐美 韓國大使館에 알려준 嫌疑로 逮捕돼 懲役 9年型, 保護觀察 3年刑에 處해졌다. 도움을 받은 韓國 政府는 同胞인 로버트 金에 對한 救命 活動에 全혀 나서지 않아 國內外의 批判을 받기도 했다.

    2016년 9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에서 만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과 로버트 김 씨가 저서 ‘로버트 김의 편지’를 함께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한화]

    2016年 9月 29日 서울 中區 淸溪川路 한화빌딩에서 만난 金昇淵 韓華그룹 會長(오른쪽)과 로버트 金 氏가 著書 ‘로버트 金의 便紙’를 함께 들고 포즈를 取했다. [韓貨]

    불꽃祝祭, 이글스… 文化·스포츠 支援

    한화는 로버트 김을 後援한 事實을 알리지 않았다. 2005年 保護觀察 執行停止로 自由의 몸이 된 로버트 金이 라디오放送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事實을 直接 알렸다. 로버트 金은 “한화 김승연 會長께서 相當히 오랫동안 뒷바라지해 주셨다”고 밝혔다. 로버트 金은 2016年 9月 金 會長을 만나 歡談을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金 會長은 “20年 전 先生님께서 겪은 苦楚를 言論으로 接하면서 많은 國民은 先生님께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며 “저 亦是 작은 뜻을 傳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고 所懷를 傳했다.

    한화그룹의 生日잔치 格인 汝矣島 불꽃祝祭를 始作한 것도 金 會長이다. 그는 1999年 12月 한화의 傳統 事業인 火藥 技術을 바탕으로 國民에게 즐거움을 傳達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公益的 文化 祝祭로 만들라고 指示했다. 이듬해 10月 첫 行事를 始作해 每年 總 10萬餘發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다.

    한화그룹은 스포츠 分野에 對한 支援도 아끼지 않았다. 2002年 6月부터 대한사격연맹 會長社로 올림픽 代表팀을 支援하고 있다. 每해 100億 원이 넘는 射擊發展基金을 支援하며 한화會長倍 射擊大會를 열어 選手 育成에도 나서고 있다.

    프로野球團 한화 이글스에도 支援을 아끼지 않고 있다. 15年間 한화 이글스를 應援해 왔다는 林某(33) 氏는 “다른 球團은 나이 든 프랜차이즈 스타에 對한 禮遇를 疏忽히 하는 境遇도 많은데 한화 이글스는 隱退食道 잘 열어주는 等 義理를 지키는 球團”이라고 評했다. 金 會長도 有名한 野球狂이다. 10代 企業 總帥 中 野球團 持分을 保有하고 있는 人物은 金 會長이 唯一할 程度. 金 會長은 1999年 한화 이글스가 첫 優勝을 했을 때 選手들을 끌어안고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代 이어가는 勝負師 氣質

    最近 한화는 다음 世代를 準備하고 있다. 金昇淵 會長의 長男인 金東官(39) 韓華솔루션 副會長은 8月 29日 韓華그룹 9個 系列社 代表理事 人事에서 副會長으로 昇進했다. 金 副會長은 旣存 韓華솔루션 戰略 部門 代表理事에 더해 ㈜한화 戰略 部門과 韓華에어로스페이스 戰略 部門 代表理事도 맡게 됐다. 金 副會長은 2006年 美國 하버드대 政治學科를 卒業하고 2010年 韓華그룹 會長室에 次長으로 入社해 經營 授業을 받아왔다.

    財界에서는 金 副會長에게도 M&A 勝負師 氣質이 보인다는 評價가 主를 이룬다. 實際로 그는 2012年 韓華 큐셀 引受 當時 父親인 金 會長을 도와 細部 作業을 陣頭指揮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 副會長은 最近 私募펀드(PEF), 企業金融(IB) 部門에 몸담았던 人士를 積極的으로 迎入해 M&A 機會를 物色하고 있다는 後聞이다. 한화 關係者는 “金 副會長이 한화그룹의 未來 事業 構想을 具現해 나가는 役割을 遂行하게 된다”며 “主要 株主로서 責任經營을 强化하는 側面도 있다”고 밝혔다.

    次男인 김동원(37) 韓火生命 副社長은 金融 事業을 맡고 있다. 2014년 韓火生命 디지털팀長으로 入社, 2019年 最高디지털戰略責任者에 올라 韓火生命을 包含한 金融 系列社 디지털 轉換을 主導했다. 三南人 김동선(33) 韓華 호텔&리조트 專務 兼 韓華솔루션 갤러리아 部門 新事業戰略室長은 호텔·리조트·流通 事業에서 일한다. 最近 美國 햄버거 체인 파이브가이즈와의 協商을 主導해 갤러리아 百貨店에 韓國 最初로 파이브가이즈 1號店이 들어온다. 한화 關係者는 “承繼 構圖를 確實히 했다기보다는 各自 特技 分野를 두고 經營 授業을 받는 狀況”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記者

    1989年 서울 出生. 2016年부터 東亞日報 出版局에 入社. 4年 間 週刊東亞팀에서 世代 葛藤, 젠더 葛藤, 勞動, 環境,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等 多樣한 分野를 取材했습니다. 2020年 7月부터는 新東亞팀 記者로 일하고 있습니다. 90年代 生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年代 生으로 靑年 問題에 깊은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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