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零下 17度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신동아

零下 17度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月精寺의 눈발 흩날리는 새벽

  • 정윤수│文化評論家 prague@naver.com

    入力 2013-02-21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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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라 月精寺라! 달(月)의 情(精). 奇妙하고 에로틱한 이름이다.
    • 산이 處女 젖가슴처럼 豐滿하게 솟아오른 겨울날 그곳에 가봤는가.
    • 고즈넉하면서도 그윽한, 그야말로 달의 精氣가 서린 그곳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보라.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겨울, 月精寺 그리고 山野를 하얗게 뒤덮은 大雪이라! 이런 語彙, 이런 이미지, 이런 絶景. 곧 이러한 狀態의 可히 超越的 風景이란 좀처럼 내려지지 않을 하늘의 恩惠다.

    勿論 눈 덮인 겨울 山寺의 風景이란 어쩌면 가보지 않고도 數十 番이나 가본 듯한 ‘陳腐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마치 波濤가 철썩이는 東海를 보고 싶다든지, 解止는 西녘의 붉은 놀을 보고 싶다든지 하는 浪漫的 修辭란 1970~80年代 大衆小說이나 映畫에서 늘 反復되던 그야말로 陳腐한 形式, 陳腐한 틀, 陳腐한 言語, 그리하여 언뜻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內容은 텅 비어 있는 空虛함과 다를 바 없으나, 누구라도 實際로 그러한 風景 앞에 서면 限없이 充溢해지는 것은 거역하기 어렵다.

    웃자란 젖가슴 닮은 겨울山

    겨울, 눈 쌓인 月精寺에서의 하룻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언뜻 陳腐하지만, 實際로 그러한 體驗을 하기가 쉽지 않으며 어쩌다 그런 體驗을 하게 되면 아마도 平生 동안 누군가에게 자랑 삼아 얘기할 만한 그런 光景이다.



    “月精寺 가봤어?”

    “어디, 저 江原道. 거기 뭐라던가, 雪嶽…山? 아니 五臺山?”

    “그렇지. 五臺山 月精寺!”

    “三層인가 十層인가 石塔 있는 곳?”

    “8角이요 9層이지.”

    “檢索해볼까?”

    “아냐, 됐어. 要旨는 뭐냐, 月精寺에 가봤냐는 거지, 月精寺!”

    “…?”

    “눈 펑펑 내리는 날, 暴雪 탓에 安全裝置 없는 乘用車가 도로 구석에 이마 처박던 날, 야트막한 丘陵이겠거니 생각하며 上院寺까지 勇氣百倍해 올라가던 車들이 바퀴 헛돌아 脈을 못 추고 遑急히 牽引車 부르던 날, 印度를 벗어나면 무릎까지 눈에 파묻히던 날, 그렇게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멀리서 누가 보면 恰似 天地 間의 雪景에 魂을 빼앗겨 月精寺, 上院寺에 이르기도 前에 벌써 森羅萬象에 고개 숙여 贖罪하며 흐느끼듯 보이는, 미리 다녀간 客들 때문에 전나무숲길에 발자국 搖亂하기는 해도 눈 돌려 숲을 보면 온갖 說話가 다투어 피던 날, 게다가 보름달이라, 아, 月精寺 연푸른 밤하늘 위로 허연 달이 떠오르누나. 스무 살 女子애들 웃자란 가슴처럼 산이 豐滿하게 솟아오르던 날, 달빛을 받아 오히려 寂寞한 山野가 더욱 그윽하고 전나무가 一齊히 하늘을 向해 致誠을 드리는 듯한 그런 날, 꼭 그런 날에 月精寺 가봤어?”

    “…아니.”

    “亂…가봤어. 하룻저녁을 거기서 묵었지.”

    “…韓 盞도?”

    “허어, 안 할 수야 없지.”

    갈之字로 펼쳐진 ‘智慧의 길’

    이 傘下에 江原道가 있고 또 그곳에 五臺山이 있어 月精寺 같은 大刹이 서 있으며, 또한 그 위로 터 잡은 雄渾한 상원사가 存在한다. 힐링이라고 했던가. 바로 이 두 寺刹은 따로 어디 ‘힐링캠프’ 같은 곳을 찾아가 돈 내고 프로그램 따라 하고 膳物도 받고 하는 그런 일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더 卽刻的으로 이를테면 感動이라든지 充溢感이라든지 마음 깊숙이 저미는 微妙하고도 崇高하기까지 한 感情을 膳物한다. 自然!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有限한 存在가 빚어낸 超越을 向한 眞摯한 工夫와 崇高한 祈禱의 터가 있어 보는 瞬間 마음이 整頓되는 곳이다.

    月精寺에서 上院寺에 이르는 길은, 平素 같으면 自動車로 5分 程度 봄의 햇살이며 가을의 바람을 吟味하며 한가로이 到達할 거리지만 暴雪 以後의 旅程은 쉽지 않았다. 길은, 任意로 그어진 線들에 不過했다. 앞서 달려간 車의 痕跡이 次善이 되고 그 뒤를 操心스레 밟아가며 야트막한 傾斜路를 따라 上元絲를 志向해 올라간다.

    車輪은 자꾸 定해진 길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그것을 制御하기 위해 操向裝置를 꽉 잡고 더러 브레이크를 살며시 밟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車輪은 正直하게 멈춰서기보다는 앞선 車들의 痕跡을 벗어나 옆으로 미끄러지려고 했다. 勿論 速度는 時速 20㎞도 되지 않을 만큼 느렸고 길가에는 暴雪이 잔뜩 쌓여 바퀴 어느 한 쪽이 미끄러지더라도 當場 큰 事故는 나지 않을 狀況이었지만, 萬一 그렇게 바퀴 하나가 中心에서 離脫해버리면 그것을 되돌릴 方道가 마땅치 않은 길이었다.

    射倖의 길에는 不幸하게도 그런 車가 적지 않았다. 어떤 車는 齷齪같이 加速페달을 밟아 눈밭을 벗어났고 어떤 車는 運轉者가 눈에 파묻혀 있던 돌멩이를 잔뜩 求해와 뒷바퀴 兩쪽을 支持한 다음에야 곤란한 地境에서 벗어났다.

    平素 같으면 肉重한 몸을 부드럽게 꺾으면서 지나갔을 코너에는 버스 한 臺가 그냥 서 있었다. 上院寺로 오르던 그 버스는 多幸히 큰 問題가 없었다. 다만 위에서 내려오는 乘用車가 問題였다. 暴雪로 인해 잔뜩 좁아진 길이었기 때문에 큰 버스나 트럭이라도 만나면 要領껏 郊行하기가 쉽지 않았다.

    車에서 내려 前方의 狀況을 지켜보니, 버스는 乘用車가 스쳐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中이었다. 두 車가 摩擦 없이 비껴갈 수 있는 거의 唯一한 코너였다. 그러나 上元絲에서 내려오던 乘用車는 不安해 보였다. 풋 브레이크와 핸드 브레이크, 게다가 엔진 브레이크 같은 槪念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必是 발로 연신 브레이크를 밟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게 내려오면서 그 車는 갈之字(之) 行步를 거듭했다. 그러다가는 길가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待機 中인 버스의 이마를 들이받기 十常이었다.

    乘用車는 艱辛히 멈춰 섰다. 中年 夫婦가 보였다. 버스에서 男子들이 내렸다. 예닐곱 名이 乘用車의 左右로 가서 琉璃窓을 내리라 말하고는 車窓 틀을 힘주어 잡았다. 그 狀態로 乘用車는 千, 千, 히 내려와 觀光버스의 옆구리를 艱辛히 비껴갔다. 그리고 어찌되었던가. 모를 일이다. 男子들은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上院寺로 올라갔으며 나 또한 그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乘用車 運轉者가, 버스 技士가 現場에서 講義한 브레이크 使用法을 充分히 熟知했기를 바랄 뿐이었다.

    森羅萬象이 關係 맺는 圓融의 空間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신영복 성공회대 敎授가 쓴 標石.

    올라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 여기까지 올라오는가. 一般 觀光客이 절을 찾는다고 해봐야 一柱門, 天王門을 둘러보고 石澗水 마시고 法堂에 잠깐 들어섰다가 마당으로 물러서 山野를 暫時 돌아보고 認證샷 찍으면 겨우 30分이면 끝날 일이고, 템플스테이라고 해봐야 겨우 1泊2日이나 2泊3日 머무는, 山中 船房의 船社들이 눈꺼풀 한 番 감았다 뜨는 것도 안 되는 짧은 瞬間인 것을, 왜 이 겨울에, 暴雪에, 그것도 交通 狀況 如意치 않은 山中道路를 타고 올라가는가. 나 亦是 그러한 무리에 屬한 狀態였기에 그 質問은 者答이 必要한 諮問이었다. 答을 暫時 留保하며 나는 상원사 駐車場에 車를 세웠다. 暴雪로 車輪의 痕跡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다녀간 痕跡이 적지 않았다.

    駐車場에서 上院寺로 向하는 入口에 높이 3m도 더 되는 큰 바위에 氣品 있게 들어앉은 익숙한 글씨體가 보인다. ‘신영복體’의 바로 그 글씨다. 聖公會大 신영복 敎授가 쓴 글씨(五臺山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地)가 널따란 돌 위에 가지런하면서도 莊重하게 들어앉아 있다. 漂石의 쓰임새대로 ‘五臺山 상원사’가 세로로 莊重하게 쓰여 있고 그 옆에 ‘寂滅보궁’과 ‘문수성地’가 適當한 자리에 位置했는데, 樂觀(落款)처럼 보였다.

    酸度 名山이요 竊盜 大刹이요 세워놓은 바위도 凜凜하거늘, 이런 風景에 덧붙여 쓰는 글씨 亦是 粗雜해서도 안 되고 周圍 기운에 눌려도 안 되고 그렇다고 庸劣한 筆勢로 힘자랑을 하는 것도 가당찮거늘, 신영복體는 크고 작은 것들이 저마다의 位置에서 서로 손을 뻗어 보태고 나누면서 사위의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10分 남짓이면 상원사 문수전 앞마당에 이른다. 五臺山 月精寺 하면 전나무숲길로 有名하지만 上院寺에 오르는 오솔길 옆의 나무들도 ‘元來 太古적부터 그 모습 그대로인 듯’ 말 그대로 自然스러운 雄姿(雄姿)다. 季節마다 오가는 觀光客으로 因해 煩雜할 것도 같은 上院寺요 月精寺이건만 話頭를 잡아 든 禪僧이 最高의 안居處로 五臺山 이 깊은 골짜기를 于先 꼽는 까닭을, 눈보라 치는 상원사 문수전이 雄辯하면서 서 있다.

    문수전에는 부처님 代身 文殊童子와 文殊菩薩이 모셔져 있다. 그런 까닭인지, 申 敎授가 쓴 懸板 글씨 ‘문수전(文殊殿)’ 세 글字는 나뉘어 있지 않고 서로 몸을 잇대어 있다. 世上은 나뉘어 있지 않음을, 森羅의 萬象이 關係 맺어져 있음을 글씨는 말하고 있다. 10餘 年 前, 只今은 月精寺 住持로 있는, 當時 상원사 주지 情念 스님의 付託으로 懸板 글씨를 쓴 申 敎授는 그때의 남다른 생각을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文殊菩薩은 智慧의 菩薩이다. 佛子가 아닌 나로서는 ‘智慧’의 意味를 懸板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難堪하였다. 달포 以上 長考했다고 記憶된다. 생각 끝에 結局 세 글字를 이어서 쓰기로 했다. 分(分)과 席(析)이 아닌 원융(圓融)李 世界의 본 모습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智慧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리 작은 微物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짧은 刹那라 하더라도 그것이 맺고 있는 중중(重重)의 因緣을 깨닫게 되면 저마다 時空을 超越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꽃으로 가득 찬 世上은 얼마나 嚴肅한 華嚴(華嚴)의 世界인가. 智慧란 바로 그런 깨달음일 터이다. 佛家의 延期論(緣起論)이며 나로서는 ‘關係論’의 뜻을 담는 것이기도 했었다. (신영복, ‘邊方을 찾아서’ 中 ‘智慧, 時代와의 不和’에서 引用)



    눈이 밝지 아니하여 明堂을 셈하여 짚어볼 줄 모르고 山勢의 높고 낮음에 對해 云云할 文章도 없거니와, 그럼에도 이만한 風景에 올라서고 보면 ‘참으로 좋구나!’ 하며 숨 한 番 들이쉬게 된다.

    그 自體로 그런 風貌人 德分에 상원사 오르는 길이나 境內에 ‘煩惱가 사라지는 길’이라든지 ‘느림’이라든지 하는 案內 文句는 차라리 군더더기에 가까웠다. 힐링이라는 낱말조차 남루하게 만드는 暴雪 속 ‘힐링’의 골짜기다.

    奇妙하고 에로틱한 달(月)의 情(精)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月精寺 템플스테이는 內容이 알찬 것으로 有名하다.

    上元絲에서 操心操心 내려오니 겨울 해는 어느덧 골짜기의 西便으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多幸히 보름이다. 달이 벌써 世上을 달리 비추고자 떠올라 있었다. 오호라 月精寺라! 달(月)의 情(精)이란 무엇인가. 佛家의 거룩한 뜻이 大刹의 이름을 빌려 붙었겠으나 世俗의 마음으로 ‘달의 情’을 언뜻 달리 생각하니, 奇妙하고 에로틱하다.

    最近에 힐링과 멘토가 크게 流行하고 그 바람에 山野 到處에 힐링캠프니 治癒센터니 冥想의 집 같은 곳이 웃자라는 世態지만, 月精寺의 템플스테이는 이러한 트렌드 商品보다 歷史가 더 깊고, 그 內容이 알찬 것으로 有名하다. 프로그램이 여느 査察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鉢盂供養에 스님과 茶 마시며 對話하고 參禪과 禮佛을 드리며 日氣가 좋을 때는 庵子를 巡禮하고 山寺 아래의 전나무 숲길을 걷고 冥想하는 것이 基本이다. 이는 大體로 1泊2日이나 2泊3日의 짤막한 ‘體驗型 프로그램’이다. 이보다 더 眞摯한 것으로 아예 한 달假量 世俗과 絶緣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30日 동안 遂行하는 短期 出家學校도 있다.

    最近에 절집을 찾아 하룻저녁이라도 마음을 便安하게 내려놓고자 하는 世俗의 사람들을 爲해 템플스테이의 施設을 改善해 以前보다 찾는 이가 더 많아졌다. 때마침 平昌스페셜올림픽이 열려 郡內의 가장 큰 寺刹인 月精寺의 템플스테이度 이 期間에는 헝가리에서 찾아온 스페셜올림픽 參加者와 그들을 돕기 위한 國內의 自願奉仕者를 위한 宿所로 提供됐으니 이곳의 施設이 規模에서나 內實에서나 相當히 알차다는 것을 斟酌할 수 있다. 月精寺와 더불어 麻谷寺, 梵魚寺, 용문사, 금산사 等의 템플스테이가 겉모습만이 아닌 그 內實 德分에 찾는 이가 漸漸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月精寺는 템플스테이뿐만 아니라 千年의 숲길 걷기, 한癌大宗師 遂行學林, 宗敎和合 蹴球 大會, 山寺 音樂祭, 靑少年 비보이 배틀, 朝鮮王朝實錄 返還運動 같은 다양한 宗敎 文化 活動을 벌여왔다. 상원사 淸凉船員 生活 10年 等 船社로 소문난 情念 스님이 月精寺의 住持를 맡은 以後로 생긴 風景이다. 情念 스님과 더불어 月精寺의 한週(閒主·決裁 大衆의 模範이 되는 스님) 스님으로 있는 眩氣 스님 또한 月精寺의 氣風을 社會的으로 擴張시키고 있다. 小說家 박경리 先生의 49齋를 치른다든지 4大江 事業에 反對하는 宗敎活動에 參與한다든지 査察 밖의 高明한 學者 知識人 言論人 等과 ‘關係맺음의 社會’를 圖謀한다든지 하는 일이 두 스님에 依해 아름답게 펼쳐져왔다.

    月精寺의 템플스테이는, 于先 修鍊服으로 갈아입고 寺刹 內의 몸가짐이며 마음가짐을 스님들로부터 배우는 것으로 始作한다. 境內에서 注意해야 할 行動이나 言行, 寺刹 內 各 前이며 실의 意味와 쓰임새, 山中의 새벽에서 저녁에 이르는 일, 月精寺의 歷史와 文化 等에 對해 먼저 배운다.

    익히 듣던 바대로, 템플스테이의 就寢 時間은 저녁 9時이고, 새벽 3時30分이면 일어나야 한다. 平素 都心地에서 煩雜한 約束을 處理하고 밀린 일을 마무리한 後 새벽까지 리모컨을 놓지 않고 映畫와 잉글랜드 蹴球 等을 지칠 때까지 보다가 곧장 쓰러져 잠에 들었던 나로서는 9時 就寢 새벽 3時 30分 氣像은 지레 겁나는 일이었다.

    템플스테이에 參加한 다른 사람들을 妨害하며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스마트폰을 눌러대다가 차라리 밤을 하얗게 지새버릴까 싶었으나 차라리 그 前날에 아예 잠을 줄이고 可及的 疲勞에 疲困을 累積海 저녁 9時를 맞이하면 그나마 잠에 들겠지 하는 새로운 ‘時差 適應 戰略’을 세웠는데, 놀랍게도 그 作戰이 맞아떨어졌다.

    月精寺 眩氣 스님의 깊은 말씀이 있으신, 저녁 供養 以後의 ‘眩氣 스님과의 茶啖’ 時間에 暫時 꾸벅 卒氣는 했으나 어렵사리 9時까지 버텼고, 以後 잠에 골아떨어졌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의 月精寺를, 그 기막힌 눈이 거룩한 慰勞처럼 드리워진 寺刹이며 散策路며 오가는 車輛 한 臺 없는 道路 위를 걸어볼 수 있었다. ‘달’의 ‘定期’ 아니런가. 보름달이 높이 떠 하얗게 世俗을 비추고 있어서 특별한 가로 照明이 없어도 능히 査察 안팎을 걸으며 體感溫度 零下 17度의 五臺山 골짜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있었다.

    剛愎한 사람도 詩人 되는 곳

    이런 곳에서라면 아무리 마음이 剛愎한 사람도 한瞬間에 詩人이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니, 詩人이라면 오죽하겠는가. 韓國 抒情詩의 드높은 境地를 일구고 있는 詩人 고형렬의 時 ‘只今 月精寺’가 생각나는, 그런 고즈넉하면서도 그윽한, 그야말로 달의 精氣가 서려 있는 月精寺의 새벽이었다.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오늘 五臺山 하늘을 찾아와서

    달은 月精寺 마당을 비춘다

    마음의 그림자는 적광전 壁에 붙어 있다

    高麗時代에 세운 塔은 똑바로 하늘로 솟아 있다

    앉아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豫言을 하신

    아버지가 계시는

    저쪽 진영당은 門이 닫혀 있다

    처마와 마당에 달빛이 지나간다

    아아 무섭고 슬프다 너흰 工夫를 똑바로 해라

    적광전에 부처님만 혼자 계신다

    달은 月精寺 마당을 지나간다.

    달빛의 도움을 받으며 눈발 흩날리는 五臺山 골짜기를 올려다본다. 나무를 따라 눈을 들고 稜線을 따라 목까지 들어 저 먼 데를 올려다본다. 어릴 적, 눈물 훔치며 읽었던 小說 ‘曼陀羅’의 大尾는 저 五臺山 골짜기에서 끝이 났다. 小說 속 法雲 스님은 苦惱 속의 破戒와 破戒 속의 構圖를 거듭하던 智山 스님이 庵子 앞에서 얼어 죽은 것을 發見해 暴雪 속에서 홀로 茶毘式을 치른다. 다비를 하는 途中 法雲 스님이 小說 속에서 내내 앓고 앓던 ‘甁 속의 새’라는 話頭가 풀린다. 비좁은 庵子 안에 싸늘하게 얼어버린 智山 스님을 누이고, 불길을 만들어 그 庵子를 태워 茶毘式을 치르는 그 瞬間, 불길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뛰쳐나와 날아가는 것을 法雲 스님은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智山의 屍體를 등에 업었다. 뜻밖에도 屍體는 가벼웠다. 靈魂으로만 살다 죽은 사람의 肉體는 무게가 없다던 말이 생각났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智山은 靈魂보다는 肉體의 欲望에 멱살을 잡혀 몸부림치던 破戒僧이 아니었던가.(…)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렸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나는 서둘러 長斫을 날라 房에 쌓았다. 供養間을 뒤져보니 長明燈에 넣으려고 準備해둔 石油가 半 초롱쯤 남아 있었다. 長斫더미에 골고루 石油를 뿌렸다. 그리고 그 위에 智山을 눕혔다.(중략)

    나는 성냥불을 던졌다. 확 불길이 솟았다. 石油 먹은 마른 長斫더미는 배암의 혀처럼 불꽃을 떨며 恍惚하게 타올랐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曼陀羅’를 살펴보니, 小說 앞 대목에서 큰스님 아래 여러 스님과 大衆이 모여 앉아 說法을 듣고 또 저마다의 話頭를 붙잡고 論하는 場面이 特히 印象 깊다. 小說이 描寫한 話頭와 說法 場面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可히 靈魂의 모든 무게를 내던지는 것이었으되, 1泊 2日의 템플스테이가 그러한 것을 터럭만큼이라도 닮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아무튼 다시 날은 밝았고, 아침 供養 後 전나무숲길을 걷는 것으로 月精寺 템플스테이는 끝이 났다. 恰似 脫俗한 듯이 1泊2日의 그럴 법한 흉내는 내었으되, 곧 山을 떠나 高速道路에 오르면 猛速의 疾走에 몸을 떨 것이며 서울에 이르러 꽉 막히게 될 올림픽大路며 온갖 信號燈 따위에 神經이 곤두설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1泊2日은 그저 無爲로 그칠 일이 되는가. 어쩌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世俗都市의 煩雜함이 오히려 便해지는, 그런 狀態로 돌아가 또 얼마쯤을 지내다보면 ‘아! 月精寺’ 하고 마음이 일렁거리리라는 點이다. 이 世上 어딘가에 月精寺가 있고 보름달이 있고 눈 내린 새벽이 있고 神聖하기까지 한 전나무숲길이 있다는 것 自體가 우리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月精寺에서 우리는 世俗都市의 煩雜함을 暫時나마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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