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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女|新東亞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女

  • 金洪信│ 小說家, 建國大 碩座敎授 hongshink@hanmail.net

    入力 2011-09-20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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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魯)나라 桓公(桓公)은 자리 오른쪽에 기울어진 그릇을 두었다. 그릇이 기울어졌기에 비어 있으면 기울었고 折半쯤 차면 바르게 있고 가득 차면 엎어지게 마련이었다. 그 기울어진 그릇을 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린 智慧를 오늘에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孔子(公子)도 사람의 欲心을 가리켜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게 없다”고 一喝했다.

    人間의 原初的 欲望인 名譽, 權力, 財物에도 流通期限이 있게 마련이다. 至極한 사랑에도 流通期限이 있다는데 權力, 財物, 名譽의 流通期限이 왜 없겠는가.

    42年間 리비아를 統治한 老政客 카다피는 이제 鐵拳統治의 象徵으로 몰매를 맞게 되었다. 숱한 逸話를 남기고 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最高 權力은 오직 國民을 섬기는 데에만 使用되어야 한다는 敎訓을 또다시 확인시켰다. 그가 비록 쿠데타로 執權했더라도 大水路 工事를 성공시켜 아프리카를 飢餓에서 解放시킨 世紀的 指導者로 記錄될 수 있었는데, 獨裁의 맛에 醉해 國民의 가슴을 멍들게 한 罪人이 되어버렸다.

    沙漠 땅속엔 엄청난 量의 물이 貯藏되어 있다. 그 물을 퍼 올려 管을 통해 메마른 땅 곳곳에 보내 沙漠을 沃土로 만드는 大役事에 邁進했던들 그는 人類史에 참 近似한 人物로 評價받았을 것이다. 타는 渴症으로 물 한 모금에 목숨 걸고 呻吟하는 아프리카人에게 기꺼이 生命水를 나누어주는 老年의 카다피는 聖者(聖者)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獨裁者의 末路는 뻔한 것이지만, 27歲의 陸軍大尉 카다피가 熱血同志들을 糾合하며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만 해도 그는 리비아의 希望이었다. 韓半島의 8倍나 되는 사하라 沙漠은 모래바다라는 別稱을 가질 만큼 드넓고 酷毒한 熱沙의 땅이었다. 사하라 沙漠을 온통 農耕地와 牧草地로 바꾸어 굶주리는 아프리카人을 모두 救濟하겠다는 카다피는 國旗를 무늬 없는 草綠色으로 바꾸었다.



    나는 문득 리비아를 처음 訪問했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머무는 동안 리비아 大水路 工事를 總括하는 建設本部는 몹시 무거운 雰圍氣였다. 나와 同行한, 배짱 좋고 情 많기로 소문난 동아그룹 최원석 會長은 消化가 잘 안된다며 食事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小說 쓸 素材를 찾으려고 沙漠이며 國境 近處의 클레오파트라 別莊이며 바닷가의 要塞들을 찾아다녔다. 어느 날 本部 任職員들의 表情이나 崔 會長의 行動이 異常하게 느껴져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貯水槽 築造工事 着工式 準備가 더뎌져서 그런 거라고 했다. 崔 會長은 消化劑와 止瀉劑를 服用하며 분주했다.

    그리고 歸國하는 飛行機 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美國이 리비아를 攻擊하려고 航空母艦과 戰鬪機를 출동시켰다는 것이다. ‘사르리’ 工場 竣工式에 카다피가 直接 祝辭를 하기로 했는데 美國이 戰爭을 일으키면 그 巨大한 工事가 물거품이 될 것이기에 英國에서 實時間 텔렉스로 보내는 緊迫한 뉴스에 觸角을 곤두세운 채 超緊張 狀態였다는 것이다. 내가 不安해할까봐 끝까지 祕密로 한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戰爭이 不可避하다면 내가 있는 동안에 戰爭이 일어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戰鬪 現場에서 생생하게 取材해 實感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자 崔 會長은 “아이고 저 作家精神을 누가 말리랴!”하며 어찌하든 人命과 財産 被害를 當하지 않으려 애를 태우느라 몸이 아팠다고 했다.

    우리가 돌아오고 한 달 만인 1986年 4月15日 美國은 리비아의 首都 트리폴리를 猛攻擊했다. 그때의 爆擊으로 카다피의 딸이 死亡했다.

    대단한 리비아의 皇帝

    내가 카다피를 만난 것은 리비아를 두 番째 訪問한 1986年 8月26日이었다. 風雲을 거느린 듯 大群團을 이끌고 登場하는 그를 大水路 工事現場에서 만났다. 그 時節만 해도 民族主義者였던 그는 내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充分했다. 光州抗爭의 悽絶한 아픔 때문에 韓國 現代史의 쿠데타 主役들은 그리도 齒가 떨리게 憎惡하면서 어째서 카다피에게는 寬大했을까. 리비아 國民에게 希望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沙漠을 沃土로 만들기 위한 大水路 工事를 韓國의 有數企業人 동아그룹에 맡겼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韓國人을 세리카(親舊)라며 檢問도 하지 않는 好意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카다피의 招請을 받은 것은 純全히 최원석 會長 德이었다. 내 取材 欲心을 눈치 챈 그는 “小說家는 다양한 體驗을 해야 한다”며 두 番이나 리비아의 사하라 沙漠을 旅行할 수 있게 周旋해준 것이다. 리비아 大水路 工事에서 가장 重要한 것은 沙漠을 가로지르는 水路管이었다. 그 水路管을 生産하는 工場 起工式에 카다피가 參席해 祝辭를 한다고 했다. 최원석 會長과 韓國 政府 代表로 建設部 長官과 國會議員을 비롯한 各界 代表들이 午前 10時에 맞추어 現場에 到着했다. 리비아 駐在 各國 大使들과 高位人士들이 續續 到着했다.

    그러나 國家 元首인 카다피는 아직 登場하지 않았다. 儀典車輛과 防彈車가 들어올 때마다 參席者 모두 起立했다. 내리는 사람이 카다피가 아니어서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가 또 다른 리무진버스와 護衛車輛과 防彈車가 到着하면 또다시 모두 起立했다. 警護部隊가 重武裝한 車輛과 베두인족의 터번을 두른 騎馬警護隊를 앞세우고 들이닥치면 누구라도 뒤따르는 防彈車輛 때문에 起立하곤 했다. 美國이 벼르고 있는 탓에 카다피를 保護하기 위한 僞裝戰術이라는 걸 알아챈 건 한참 뒤였다. 그렇게 景況없이 두 時間쯤 흘렀다.

    납작하고 기다란 軍用 지프 두 臺가 들어왔다. 두 時間 동안 隨時로 드나들던 지프였기에 으레 그러려니 하고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프는 壇上 近處에 멈췄고 훌쩍 큰 키에 上下가 붙은 空軍操縱士服을 입은 카다피가 내렸다. 선글라스 때문에 그의 눈빛을 가늠할 수 없었다. 拍手소리와 喊聲이 搖亂했다. 그 瞬間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形形色色의 傳統服裝과 軍服차림의 騎馬警護隊가 로마의 騎馬兵처럼 밀어닥쳤다. 重武裝한 警護 車輛들이 밀려들자 行事場은 各種 車로 가득했다. 마치 皇帝가 親政한 大戰鬪에서 勝戰鼓를 울리며 돌아오는 莊嚴한 行列이 聯想되었다.

    그는 堂堂한 걸음으로 최원석 會長에게 다가섰다. 두 사람은 抱擁했다. 그리고 카다피는 주먹을 쥐고 ‘리비아 萬歲!’를 세 番 외쳤다. 그럴듯한 祝辭, 民族主義를 絶妙하게 表現하고 아프리카人 모두에게 食糧을 줄 수 있게 사하라 沙漠을 穀倉地帶로 만들겠다며 쩌렁쩌렁하게 외칠 줄 알았는데 그는 連呼하는 群衆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카다피의 옆자리를 꿰차다

    壇上에서 내려온 카다피는 최원석 會長의 손을 잡고 現場으로 걸어가기 始作했다. 사하라 沙漠을 푸른 草原으로 만들겠다는 카다피와 現代의 不可思議라는 大水路 工事를 도맡은 崔 會長의 그 堂堂함이 참 멋졌다. 두 사람을 뒤따르는 警護要員들의 服裝은 참으로 가지各色이었다. 機關銃을 든 白人女性들의 美貌가 出衆했고 베두人 傳統服裝을 한 黑人女性들도 各其 옷 模樣과 銃器가 달랐다. 갖가지 銃器와 服裝을 한, 눈매가 부리부리한 男性 警護要員들度 두 사람을 따랐다.

    年號, 喊聲, 拍手소리가 뒤엉키고 警護隊와 뒤따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秩序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國家元首를 警護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함께 祝祭를 즐기는 것 같아 慇懃히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杞憂였다. 우리 一行을 除外한 리비아 國民과 警護員들은 國家元首 카다피의 希望과, 리비아의 發展과 國民을 아끼는 카다피의 愛國心을 眞心으로 믿고 따르는 듯 하나가 되어 熱烈히 歡呼했다.

    그때 최원석 會長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더니 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글을 쓰려면 가까이에서 寫眞도 찍고 그의 모습도 눈여겨봐야 한다며 起工式 行事場에서는 카다피 바로 옆자리에 앉혀주었던 그는 연신 뒤돌아보며 내 움직임을 살폈다. 第2의 ‘인간시장’을 執筆하고 싶은 欲望으로 가득 찬 나는 警護員과 群衆의 틈을 비집고 거의 突進하듯 카다피와 崔 會長을 向해 달려갔다.

    그러나 카다피의 近接 警護隊이자 女性 警護대인 아마조네스의 壁을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리스 神話에 나오는 女性武士族인 아마존(Amazon)의 複數型인 아마조네스를 본뜬 女性 警護隊는 그 누구의 接近도 容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조네스는 女子만의 不足인데, 아이를 얻기 위해 때가 되면 이웃나라 男子를 만나 아이를 낳고 男子아이면 去勢해 이웃나라로 보내거나 죽였다고 한다. 女性을 戰士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 오른쪽 乳房을 節制해 활을 쏘기 便하게 했다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戰爭 때 트로이 便에서 싸우다 그의 손에 죽은 아마조네스 女王이 너무나 아름다워 제 손으로 죽인 그 女王을 사랑했다고 한다. 1500年頃에 스페인 探險隊가 아마존 江을 探險하다가 女戰士를 만나는 바람에 ‘아마존’ 江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마조네스의 一擊

    카다피의 女性 警護部隊 아마조네스는 카다피가 直接 選拔한 數百 名의 最精銳 隊員으로 모두 未婚이며 빼어난 美貌를 자랑한다. 最近接 警護要員 中에 프랑스의 美女들이 唯獨 눈에 띄었고 黑人 中에도 눈에 띌 만큼의 美貌를 자랑하는 警護要員度 꽤 많았다. 카다피를 近接 取材하기 위해 全力을 다해 뚫고 들어가려고 여기저기 살폈지만 팔과 팔을 엮어 둘러선 아마조네스 要員들의 障壁을 空中浮揚하기 前에는 通過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比較的 허술한 틈을 찾아내어 있는 힘을 다해 全速力으로 突進했다.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金洪信

    1947年 忠南 公州 出生, 論山에서 成長

    건국대 國文學科 卒, 同 大學院 碩·博士

    ‘인간시장’ ‘대발해’ ‘人生使用說明書’ 等 著書 多數

    15,16代 國會議員

    第12回 韓國小說文學賞, 第6回 小說文學作品賞 等 水上


    그 瞬間 나는 왼쪽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唯獨 큰 눈이 아름다운 검은 皮膚의 아마조네스 要員이 警護員의 무리를 파고드는 내 가슴을 팔꿈치로 正確히 加擊했기 때문이다. 그 時節의 내 原初的 欲望이 그릇에 가득 차고 기울어져 엎어져버린 瞬間이었다. 생생하게 現場感 넘치는 글을 써보려고 그리도 안달했던 나는 리비아 最高美人이라는 아마조네스의 一擊에 쓰러지고 말았다. 歲月이 흘러도 철벽같은 警護隊를 뚫지 못한 아쉬움이 아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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