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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도 老年도 고달픈 나라, 嫌惡·敵對 싹튼다|신동아

靑年도 老年도 고달픈 나라, 嫌惡·敵對 싹튼다

[김호기의 古典으로 읽는 21世紀] ‘유토피아’와 ‘레트로토피아’로 읽는 不安과 希望

  • 김호기 연세대 社會學科 敎授

    入力 2023-09-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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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成功한 나라에서 孤立感을 느끼나

    • 르네상스 代表하는 知的 巨人, 모어

    • 正義와 幸福 可能케 할 私有財産 廢止

    • 國家 全體가 큰 家族처럼 運營되는 곳

    • 유럽 邊方 出身 社會學 巨匠, 바우만

    • ‘固定化된 現代’ → ‘流動하는 現代’

    • 液體 現代 理論家의 遺言狀 같은 冊

    • 不平等의 構造化와 世襲 資本主義

    2월 6일 서울 강서구의 한 도로에서 노인이 리어카에 폐지 등 폐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2月 6日 서울 강서구의 한 道路에서 老人이 리어카에 廢止 等 廢品을 실어 나르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記者]

    人類의 歷史는 進步하는 걸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進步의 意味라면, 人類의 歷史는 進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나의 境遇를 보더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나의 삶이 더 潤澤했다. 國家的 水準을 보더라도 前近代보다 近代가, 近代보다 21世紀가 더 發展했다.

    그런데 21世紀 現在의 삶이 過去보다 幸福한 걸까. 우리나라 事例를 생각하면 物質的 삶이 過去보다 크게 向上된 것은 分明하다. 5000年에 이르는 大韓民國 歷史에서 21世紀 現在가 가장 풍요로운 時代일 것이다. 하지만 物質的 豐饒가 幸福한 마음을 절로 保障하는 것은 아니다. 眞正한 幸福이란 物質 次元과 精神 次元의 欲求가 모두 充足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資料를 하나 引用하고 싶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月 26日 發表한 ‘社會政策 成果 및 動向 分析 基礎硏究’에 따르면, 갤럽월드폴(Gallup World Poll)의 우리나라 幸福 水準은 2021年 10點 滿點에서 6.11點이었다. 經濟協力開發機構(OECD) 38個國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그리스, 日本, 멕시코, 폴란드, 콜롬비아, 튀르키예 等 여섯 國家다. 여기서 幸福 水準이란 그 나라 國民이 스스로 認識하는 幸福의 程度를 의미한다.

    國民의 幸福 水準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였을까. 핀란드가 7.79點으로 1位를 차지했고, 덴마크·이스라엘이 뒤를 이었다. 美國은 6.96點, 英國은 6.87點, 獨逸은 6.75點, 프랑스는 6.66點을 記錄했다. 우리나라의 點數가 主要 先進國들과 同一한 6點臺라는 點에서 그 差異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日本(6.09點), 멕시코(5.99點) 等과 함께 낮은 水準을 보여주고 있다는 事實 또한 否定하기 어렵다.

    成功한 國家, 危機의 國民

    21世紀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位相이 20世紀와는 다르다는 點은 國家的 自負心이다. 經濟 規模가 世界 10位圈에 進入했고, 水平的 政權交替 以後 節次的 民主主義도 安定됐다. 最近에는 K-文化가 地球的으로 큰 歡迎을 받아 金九 先生이 所望했던 ‘文化國家’의 實現을 눈앞에 두고 있다.



    狀況이 이런데도 갤럽월드폴 點數에 담긴 意味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갤럽월드폴에서 내 視線을 끈 結果가 하나 더 있다. ‘곤란한 狀況에서 도움을 請할 수 있는 親舊나 親知가 있는가’에 對한 應答이다. 이 質問에 ‘없다’고 答辯한 比率에서 우리나라는 18.9%를 記錄함으로써 OECD 會員國에서 네 番째로 높았다. 우리보다 社會的 孤立度가 深刻한 國家는 콜롬비아, 멕시코, 튀르키예뿐이었다.

    이 資料가 含意하는 바는 分明해 보인다. 産業化 30年과 民主化 30年이 지난 現在, 國歌는 成功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적지 않은 國民은 幸福하지 않고 社會的으로 孤立感을 느낀다는, 다시 말해 삶의 危機 앞에 놓여 있다는 事實이다. ‘成功한 國家, 危機의 國民’은 最近 우리 社會가 서 있는 자리를 象徵的으로 드러내는 言明이라고 나는 보고 싶다.

    1945年 光復을 맞이해 우리가 꿈꾼 것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였다. 새로운 國家와 새로운 社會라는 유토피아였다. 이 유토피아를 向해 숨 가쁘게 달려왔고, 이제 先進國 隊列에 合流하는 成就를 일궈냈다. 그런데 現在 우리 社會가 서 있는 자리에 對한 不滿은 決코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國民은 不安과 憤怒를 느끼며 살아가고, 오히려 過去를 그리워하는 傾向마저 드러나고 있다. 유토피아에 對한 熱望과 挫折이 共存하는 나라가 우리 社會가 아닐까.

    近代와 現代의 思想史에서 유토피아의 希望과 絶望을 담은 두 著作이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의 ‘유토피아(Utopia)’와 지그문트 바우만(Zymunt Bauman·1925~2017)의 ‘레트로토피아(Retrotopia)’다. 前者는 1516年에, 後者는 2017年에 나왔다.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없는, 世上에서 가장 좋은 곳’을 뜻하는 反面, 레트로토피아는 ‘지나간, 좋았던 時間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 2020年代 現在 그렇다면 우리 社會를 支配하는 것은 유토피아의 希望인가, 레트로토피아의 鄕愁인가.

    한국에서 출간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 을유문화사, 2021, 개정판)’, 지그문트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Retrotopia, 아르테, 2018)’. [각 출판사]

    韓國에서 出刊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 을유문화사, 2021, 改訂版)’, 지그문트 바우만의 ‘레트로토피아(Retrotopia, 아르테, 2018)’. [各 出版社]

    ‘유토피아’의 主要 內容

    모어는 西歐 르네상스를 代表하는 知的 巨人 中 한 사람이다. 네덜란드에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獨逸에 宗敎改革家 마르틴 루터가 있었다면, 英國에는 인문주의자 母語가 있었다. 法律家로서 大法官의 地位까지 오른 모어는 篤實한 가톨릭 信者였다. 國王 헨리 8歲가 首長令을 통해 推進한 宗敎改革에 反對했고, 이로 인해 結局 殉敎했다.

    20世紀에 들어와 모어는 더욱 有名해졌다. 1935年 모어는 敎皇廳에 依해 成人으로 諡聖됐다. 法律家와 政治家의 守護聖人으로 推仰됐다. 또 모어는 1967年 아카데미 作品賞 等을 받은 프레드 진네만 監督의 傑作 ‘四季節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의 主人公이었다. 헨리 8世와 맞서 싸우다 反逆罪로 처형당한 모어의 삶을 다룬 映畫였다. 良心과 信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眞正한 勇氣의 知識人으로 考評됐다.

    ‘四季節의 사나이’라는 말을 母語에게 붙인 사람은 에라스뮈스다. 에라스뮈스는 모어보다 열두 살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切親이 됐다. 에라스뮈스는 當代의 現實을 批判한 ‘愚神禮讚’을 出刊하면서 이 冊을 母語에게 獻呈했다. ‘愚神禮讚’에 對應해 母語가 내놓은 著作이 ‘유토피아’였다.

    ‘유토피아’는 픽션이다. 著者인 母語가 公務 旅行을 간 플랑드르에서 親舊의 紹介로 만난 라파엘 히瑟로다에우스와 나눈 對話 形式을 띤다. 그 內容은 두 部分으로 이뤄져 있다. 第1部는 現實 社會를, 第2部는 理想社會를 다룬다. 모어는 第2部를 쓰고 난 다음 第1部를 덧붙였다.

    第1部에서 視線을 끄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量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當代 現實에 對한 批判이다. 當時 養母 價格의 上昇으로 인해 地主는 農民을 農村에서 都市로 追放했다. 그 結果 都市에는 浮浪者·거지·도둑이 增加했고, 이들에 對한 嚴罰主義가 强化됐다. 모어는 嚴罰主義의 必要性을 否定하지 않지만, 이러한 社會現象 裏面에 놓인 構造的 要因에 注目한다.

    다른 하나는 正義와 幸福을 可能하게 하기 위한 條件으로 提示한 私有財産과 貨幣의 廢止다. 私有財産이 存在하는 限, 貨幣가 모든 것의 尺度로 남아 있는 限, 어떤 나라든 正義롭고 幸福하게 統治할 수 없다는 히瑟로다에우스의 말을 통해 모어는 自身의 見解를 表明한다. ‘유토피아’를 널리 알리고 以後 작지 않은 影響을 미친 모어의 主張 가운데 하나가 이 私有財産制度의 廢止였다.

    第2部는 유토피아의 實際的인 모습을 보여준다. 유토피아는 人工的인 섬이다. 幅이 200마일(藥 322㎞), 길이가 500마일(藥 805㎞)이고, 54個의 都市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는 言語, 慣習, 制度, 法 等이 모두 同一하다. 政治는 共和制를 醉하고, 經濟는 農業 中心의 體制로 運營된다.

    興味를 끄는 것은 유토피아에서의 具體的인 生活相이다. 모든 사람은 하루 6時間 일을 하고, 8時間 잠을 자고, 餘暇 時間에는 知的이고 宗敎的인 德을 實踐한다. 共同體 生活 또한 특별한 關心을 모은다. 유토피아에서는 奢侈가 禁止돼 있지만 必要한 것은 모두 充足된다. 더하여 住宅을 共有하고 함께 食事하는 等의 共同體 規律을 지키는 것이 要求된다. 國家 全體가 하나의 큰 家族처럼 運營되는 곳이 母語가 그리는 유토피아다.

    이러한 ‘유토피아’는 以後 近代 社會思想에 작지 않은 影響을 미쳤다. 特히 私有財産制度 廢止는 母語를 社會主義의 援助로 評價받게 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카를 카우츠키는 母語가 資本主義의 特性을 일찍이 注目하고 그 代案을 摸索했다고 主張했다. 私有財産制度가 廢止되지 않는 限 均等한 財貨의 分配가 이뤄질 수 없다는 히瑟로다에우스의 말을 통해 모어는 생각의 一端을 傳達한다.

    하지만 同時에 ‘유토피아’는 이에 對한 批判도 提示한다. 히瑟로다에우스의 主張에 對해 모어는 유토피아 生活方式이 個人을 懶怠하게 만들고 個人의 自由를 앗아갈 수 있다고 反駁한다. 유토피아 이야기에서 私有財産制度 廢止와 貨幣 없는 經濟가 가장 理解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모어는 指摘한다. 그 까닭은 人間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토피아’를 우리말로 옮긴 歷史學者 주경철은 두 主人公인 히瑟로다에우스와 母語가 모두 ‘모어의 分身’이라는 解釋을 내놓는다. 現實의 矛盾을 解決하는 데 히瑟로다에우스를 끌어들이고, 이 히瑟로다에우스의 主張을 批判하는 데 모어 自身이 直接 나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 代案인지에 對한 判斷은 讀者에게 남겨둔다고 주경철은 解釋한다.

    유토피아에 對한 想像은 모어의 ‘유토피아’ 以前에도 存在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黃金時代나 플라톤의 ‘國家論’에 나오는 哲人政治는 모어의 ‘유토피아’에 큰 影響을 미쳤다. 더하여 모어의 ‘유토피아’는 以後 이탈리아 哲學者 토마소 캄파넬라의 ‘太陽의 都市’와 英國 哲學者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等 유토피아를 다룬 作品들에 豐富한 想像力과 洞察力을 提供했다. ‘유토피아’에 담긴 거역할 수 없는 魅力은 유토피아라는 未來의 存在가 不滿의 現在를 批判하고 省察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안겨준다는 데 있다.

    ‘레트로토피아’의 主要 內容

    新自由主義 時代가 열린 1980年代 以後 世界的으로 가장 有名한 社會學者는 아마도 바우만日 것이다. 젊은 時節 유럽에서 工夫한 내게도 바우만은 매우 이채로운 知識人이었다. 두 가지 點에서 그러했다.

    첫째, 바우만은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유럽의 邊方 폴란드 出身의 유대人이라는 履歷은 非西歐 社會 出身인 내게 妙한 同質感을 느끼게 했다. 祕書유럽 出身이라는 바우만의 個人的 背景은 그로 하여금 西유럽 歷史와 社會에 對해 客觀的 視角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바우만은 平生 지칠 줄 모르는 探究 精神을 보였다. 일흔이 넘어서 바우만은 自身의 代表 理論인 ‘液體(liquid) 現代’ 理論을 發表했다. ‘液體 現代’를 筆頭로 ‘液體 사랑’ ‘液體 人生’ ‘液體 恐怖’ ‘液體 時間’ ‘液體 現代 世界로부터의 便紙’ ‘液體 現代 世界의 文化’ ‘液體 監視’ ‘液體 現代 世界의 管理’ ‘液體 惡魔’ 等 ‘液體 시리즈’ 著作은 그를 世界的 社會學者로 浮上시켰다.

    앞서 말했듯 바우만은 液體 現代 理論家다. 바우만의 메시지는 우리 時代가 ‘固定化된 現代’에서 ‘流動하는 現代’로 變化했다는 것이다. 液體 現代란 모든 堅固한 것들을 ‘녹이는 힘’이 社會變動의 原動力이 된 時代를 말한다. 바우만은 이 힘이 體制를 ‘社會’로, 政治를 ‘生活政策’으로 바꾸고, 社會問題들을 ‘巨視的 次元’에서 ‘微視的 次元’으로 끌어내렸다고 分析한다.

    그 結果 바우만은 우리 時代가 失敗의 責任을 個人에게 賦課하는 새로운 類型의 삶을 一般化시켰다고 主張한다. 持續性에 無關心해지고 卽時性이 支配하는, 그리하여 모든 것이 脫社會化하고 個人化하는 時代가 바로 液體 現代라는 게 바우만의 理論 틀이었다.

    이랬던 바우만이 遺言狀과 같은 冊으로 남긴 것이 ‘레트로토피아’다. 이 著作에서 바우만은 ‘流動하는 現代’로부터 더 나아가 우리 時代의 核心的 흐름을 ‘레트로토피아’에서 찾는다. 레트로토피아는 유토피아를 念頭에 두고 鑄造한 말이다. 유토피아가 未來를 向한 비전이라면, 레트로토피아는 過去에 對한 香水다. 좋았던 過去, 다시 말해 安定性과 信賴性을 품고 있던 지난 時間에 對한 그리움과 그 時節로 回歸하려는 傾向이 레트로토피아의 中核을 이룬다.

    바우만은 21世紀 現在 觀察할 수 있는 레트로토피아의 네 가지 傾向을 提示한다. 公共秩序 維持에서 홉스의 ‘만인 對 萬人의 鬪爭’으로의 回歸, 民族·人種·宗敎를 基盤으로 한 部族主義로의 回歸, 身分이자 運命으로 個人을 拘束하는 不平等으로의 回歸, 競爭이 不在한 安全한 場所인 原初的 子宮으로의 回歸가 그것이다.

    ‘레트로토피아’의 魅力은 21世紀 우리 時代의 그늘을 直接的이고 분명한 言語로 批判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公共性이 毁損된 자리를 代替하는 새로운 倫理는 만인 對 萬人의 鬪爭이다. 競爭은 거역할 수 없는 最高의 자리를 차지한다. 한便 世界化되고 脫中心化되는 現實에서 自身을 지키기 위해서는 民族·人種·宗敎 等에서 自己 正體性을 確認하고 强化해야 한다. 正體性 時代는 우리 時代를 指稱하는 言語로 登極한다.

    더하여 우리 時代는 不平等이 構造化된 時代다. 經濟的 地位는 階級이 아니라 이제 身分이자 運命으로서 意味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時代 狀況은 個人에게 出口를 不許한다. 그 結果 아득하고 原初的인 記憶을 품고 있는 子宮으로 돌아가려는 欲望을 부추긴다. 故鄕을 그리워하는 ‘鄕愁의 時代’가 바로 우리 時代의 表情이라는 게 바우만의 洞察이다.

    이처럼 레트로토피아에는 不安, 絶望, 恐怖, 憤怒의 心情이 뒤엉켜 있다. 이 複雜多端한 心情은 自己 世界의 一方的인 防禦와 他者에 對한 無慈悲한 攻擊으로 表出되고 있다. 이러한 現實에 對應해 바우만은 프란치스코 敎皇이 說破한 ‘對話’를 力說한다. 對話는 만남이자 參與이고 協商이자 包容이다. 對話는 自我와 打者, 個人과 社會, 意識的인 것과 制度的인 것 사이의 끊어진 回路를 復元하는 出發點이다.

    여기서 注目할 것은 이러한 對話를 위해 바우만이 强調하는 前提條件이다. 바우만은 프란치스코 敎皇의 말을 引用한다. “萬若 우리 社會를 다시 判斷하고 싶다면, 特히 靑年들을 위해 品位 있고 報酬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少數의 滿足이 아니라, 社會 全體的으로 普通 사람들의 惠澤을 志向하는 새롭고 包括的이며 공정한 經濟 모델이 提示돼야 한다.”

    液體 現代 시리즈에 나타난 바우만의 世界 認識은 悲觀主義에 기울어 있다. 이 悲觀主義에 不滿을 表明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自由와 不安, 快樂과 憤怒, 愛着과 恐怖가 共存하는 21世紀 地球 社會의 風景을 지켜볼 때 바우만의 懷疑主義的 分析은 現實的인 說得力을 갖는다. 懷疑主義에 바탕을 두되 對話를 抛棄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우만의 學問的 遺言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7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중견기업 일자리 박람회에서 청년 구직자들이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7月 3日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中堅企業 일자리 博覽會에서 靑年 求職者들이 就業 揭示板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時代의 自畫像, 不安社會

    500年 前에 發表됐음에도 ‘유토피아’가 如前히 읽히는 까닭은 뭘까. ‘유토피아’가 살아 있는 古典으로 評價받는 까닭은 그 政治的 想像力에 있다. 不平等을 惹起하는 重要한 原因 가운데 하나인 私有財産制度의 그늘을 모어는 批判하고 그 代案으로 共有社會를 提案한다. 近代에서 私有財産制度의 問題를 날카롭게 分析한 이가 ‘資本論’의 카를 마르크스였다면, 마르크스 以前에 ‘人間 不平等 기원론’의 狀 자크 루소가 있었고, 루소 以前에 ‘유토피아’의 母語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모어는 私有財産制度의 明暗을 先驅的으로 洞察한 思想家다. 私有財産制度를 廢止하면 不平等을 解決할 수 있겠지만, 努力을 통한 利益의 確保가 保障되지 않으면 社會가 混亂에 빠질 수 있다고 모어는 指摘한다.

    私有財産制度에 對한 모어의 이러한 見解는 歷史的 說得力을 가진다. 지난 20世紀 歷史는 私有財産制度를 擁護한 資本主義와 이를 廢止한 社會主義의 對決로 進行됐다. 社會主義는 私有財産制度를 代身해 國家所有制度를 내세웠지만, 1989年 東유럽 社會主義의 沒落에서 볼 수 있듯 資本主義와의 競爭에서 敗北했다. 私有財産制度에 어느 程度 制限을 加할 수 있겠지만, 이를 完全히 廢止하는 데는 同意할 수 없다는 것이 歷史의 敎訓일 것이다.

    問題는 私有財産制度를 廢止할 수 없다고 해서 不平等을 그대로 놓아둘 순 없다는 點이다. 不平等은 21世紀 現代社會에서 포퓰리즘, 氣候危機와 함께 人類가 直面한 重大한 社會的 課題다. 이 不平等 問題가 西歐社會에서 크게 注目받기 始作한 것은 新自由主義 世界化가 本格化하면서부터였다.

    戰後 西歐 資本主義를 支撐하는 힘이 케인스주의 福祉國家에서 新自由主義 世界化로 變化된 것은 1980年代부터였다. 新自由主義 世界化를 先導的으로 이끈 것은 金融資本이었다. ‘사슬 풀린 프로메테우스’처럼 全 地球를 넘나들며 탐욕스럽게 利益을 챙겨온 金融資本은 ‘20對 80 社會’를 創出했고, 그 結果 不平等에 對한 對處는 어느 나라든 主要 政策目標가 됐다.

    이러한 不平等을 先驅的으로 批判한 이는 美國 經濟學者 폴 크루그먼이다. 크루그먼은 1980年代 以後 美國 社會를 두 番째 ‘金箔 時代(Gilded Age)’라고 명명했다. 美國 作家 마크 트웨인과 찰스 워너가 함께 쓴 小說 題目에서 따온 金箔 時代란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곪아 있는 時期를 含意했다. 高度成長이라는 華麗한 表層 아래 貧富隔差라는 어두운 深層이 結合해 있던 時代가 金箔 時代였다.

    不平等을 實證的으로 分析한 이는 프랑스 經濟學者 토마 피케티다. 資本收益率이 經濟成長率보다 더 높다면 資本所得이 차지하는 比重이 더 높아지고, 結局 所得分配가 惡化된다는 게 피케티의 論理다. 피케티는 1980年代 以後 不平等의 深化를 注目하고, 21世紀 資本主義 未來를 憂鬱하게 展望했다. 經濟成長을 이끌어온 人口成長과 技術 進步가 限界에 到達했기 때문에 低成長이 持續되고, 그 結果 資本의 所得 몫이 커지며 그 힘이 더욱 强力해지는 ‘世襲 資本主義’가 다시 登場하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主張이다.

    金融危機 以後 不平等의 現實은 ‘레트로토피아’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바우만에 따르면, 上位 10퍼센트 美國人이 美國 附議 86퍼센트를, 下位 90퍼센트가 그 富의 14퍼센트를 차지한다. 地球 次元에서는 人類의 下位 折半인 39億 名이 世界 全體 富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는 地球上 가장 富裕한 사람 85名이 갖고 있는 部와 同一하다.

    이러한 不平等한 現實이 過去로 回歸하려는 레트로토피아 傾向의 하나라는 것이 바우만의 診斷이다. 不平等의 構造化와 世襲 資本主義의 傾向은 이제 個人을 階級을 넘어선 身分에 고착시킨다. 그리하여 21世紀의 모습은 20世紀보다 19世紀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레트로토피아가 支配的인 社會는 유토피아가 不在하는, 다시 말해 滿足이 아닌 불만, 希望이 아닌 不安이 支配的인 社會다. 바우만이 말하는 레트토피아의 네 가지 傾向, 卽 만인 對 萬人의 鬪爭, 部族主義, 不平等, 子宮으로의 回歸는 우리 時代에 對한 不滿과 不安이 그만큼 深化했음을 含意한다. ‘不安社會’는 地球的 次元에서 21世紀 現代社會의 社會學的 自畫像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해 10月 25日 더불어民主黨 議員들이 피켓 示威를 벌이는 가운데, 尹錫悅 大統領이 施政演說을 하기 위해 國會 本會議場에 들어서고 있다. [大統領室寫眞記者團]

    不安社會를 넘어서

    2008年 金融危機 以後 우리 社會 現實을 貫通하는 槪念 亦是 ‘不安’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不安은 巨視的인 同時에 具體的인, 經濟的인 同時에 社會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巨視的 不安의 代表的인 實體는 두 가지다. 人工知能(AI)과 플랫폼 비즈니스로 代辯되는 科學技術 變動에 따른 全體 일자리의 減少와 일자리 安定性의 弱化가 그 하나라면, 低出生 및 高齡化의 進展에 따른 ‘늙어가는 大韓民國’과 福祉 負擔의 增加가 다른 하나다. 이 巨視的 不安은 우리 社會의 未來 展望을 어둡게 한다.

    한便 具體的인 不安의 代表的 現象 亦是 두 가지다. 靑年 世代의 境遇 靑年失業과 不動産 價格 暴騰에서 비롯된 雇傭 및 住居 不安이 그 하나라면, 高齡 世代의 境遇 人間다운 삶을 維持할 수 없게 하는 老後 貧困의 不安이 다른 하나다. 이 具體的인 不安 亦是 우리 社會의 未來 展望에 그늘을 드리운다.

    이러한 巨視的이고 具體的인 不安은 먹고사는 經濟 問題와 이와 聯關된 不平等 問題의 重要性을 喚起시킨다. 特히 經濟的 不平等은 資産 不平等에서 삶의 質 兩極化까지 우리 社會가 풀어야 할 一次的 課題임에도 金融危機 以後 保守 性向 政府든 進步 性向 政府든 注目할 만한 政策的 成果를 일궈내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을 經濟的 要因으로 還元시키는 經濟主義的 說明에 同意하지 않는다. 그러나 經濟 問題, 特히 不平等을 解決할 解法을 提示하지 않는 政治와 政府는 空虛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政治와 政府의 最終 意思 決定이 갖는 가장 重要한 目標는 國民 多數의 經濟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

    注目할 것은 이러한 經濟的 不安이 時間이 흐르면서 社會的 不安으로 轉移된다는 點이다. 우리 社會에서 이 社會的 不安은 就業·構造調整·子女敎育·不動産·老後生活 等에서 具體化되고, 그 結果 靑年 世代에서 高齡 世代에 이르는 모든 世代가 不安이 日常化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社會的 不安이 社會的 憤怒로 轉移되고, 이 憤怒의 그늘에서 嫌惡와 敵對의 感情이 棲息하며 噴出하는 게 우리 社會와 文化의 現住所다.

    問題는 亦是 政治

    이러한 現實은 앞서 말한 ‘成功한 나라, 危機의 國民’을 돌아보게 한다. 삶의 水準은 過去보다 높아졌는데 多數의 國民이 幸福하지 않은 이 現實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찍이 美國 大統領 빌 클린턴은 “問題는 亦是 經濟”라는 名言을 남겼다. 不平等과 不安을 解決할 수 있는 것은 바우만도 指摘한 良質의 일자리 創出과 새롭고 包括的이며 공정한 經濟모델 構築, 그리고 科學技術 變動과 人口絶壁에 積極的으로 對處하는 것이 經濟 및 社會 政策이다.

    ‘問題는 經濟’에 못지않게 重要한 것은 이러한 經濟·社會的 解法들을 制度化해야 하는 政治의 力量이다. 最近 우리 現實을 지켜보면, 政府는 勿論 政黨이 國民을 둘로 나누는 能力은 卓越해도 社會問題를 解決하는 力量이 허약하다. 事案의 複雜性을 考慮한 纖細한 리더십도, 問題를 一擧에 解決하는 決斷의 리더십도 不在한 政治 社會를 지켜보면, ‘問題는 亦是 政治’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政治에 如前히 期待를 거는 데 同意하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經濟的 不平等과 社會的 不安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成功한 國家, 幸福한 國民’이라는 希望의 유토피아를 抛棄할 순 없다. 政府와 政黨의 一大 奮發과 革新을 要請하는 바다.


    김호기
    ● 1960年 京畿 洋酒 出生
    ● 연세대 社會學科 卒業, 獨逸 빌레펠트臺 社會學 博士
    ● 美國 스탠퍼드대 亞太硏究센터 코렛 펠로
    ● 現 연세대 社會學科 敎授
    ● 著書 : ‘現代 資本主義와 韓國社會’ ‘韓國의 現代性과 社會變動’ ‘韓國 市民社會의 省察’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신기욱과 共編)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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