刊經都監
(刊經都監)은
朝鮮 時代
初期에
佛經
을
한글
로 飜譯
·
出刊하기 위해 세워진 國立 機關이다.
[1]
[2]
1461年(世祖 7)
6月에 王命으로 設置되어
1471年
(成宗 2)까지 總 11年間 存續하였다.
[3]
篤實한
佛敎
信者였던
世祖
는
계유정란
(1453)을 통해 王位에 오른 뒤에 簒奪을 贖罪하며 더욱 佛敎에 心醉하던차에
[4]
刊經都監(刊經都監)을 設置하여 各種
佛經
을
한글
로 飜譯하는 等, 佛敎 關聯 여러 事業을 進行하였다. 이로인해
世祖
의 統治 時期는
朝鮮 時代 佛敎
의 全盛期를 이루기도 했다.
[5]
槪要
[
編輯
]
刊經都監은 中央에 本社를 두고 안동부·開城府·賞主婦·진주부·前主婦·남원부 等 地方 여러 곳에 분사를 두었다. 職制는 都提調·製造·사·府使·判官 等을 두었는데, 管理는 約 20名이고 總 從事者는 170餘名에 이르렀다. 또 이 일에 30日 以上 從事하면 度牒을 주어 僧侶가 되게 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參與하였다.
[3]
有名한 僧侶와 學者를 招聘하여 佛經을 飜譯하고 刊行하는 일이 주된 事業이었으며 佛書를 購入하거나 蒐集하고, 王室 不辭와 法會를 管掌하기도 하였다. 佛經 發刊은 漢文本 發刊과 한글 飜譯本 發刊의 두 種類로 나뉘었다. 漢文本은 特히 高麗 때 造成된 《續藏經》을 板刻하는 일이 主業務였다. 거의 大部分의 業務를 世祖가 管掌하였다.
[3]
수미,
辛未
(信眉) 等 僧侶와
한계희
(韓繼禧)
·
노사신
(盧思愼)
·
강희맹
(姜希孟) 等 學者들이 實務에 從事하였다.
[1]
[2]
그 結果
佛敎
는 다시 活氣를 띠어 査察이 중흥되고 僧侶도 相當히 增加했다.
[1]
刊行된 冊으로는 《
楞嚴經諺解
(楞嚴經諺解)》 10卷, 《
妙法蓮華經諺解
(妙法蓮華經諺解)》 2卷 等이 있다.
[1]
刊經都監을 통해
한글
(
訓民正音
)로 飜譯하여 刊行한 《
法華經
(法華經)》
·
《
數楞嚴經
(首楞嚴經)》
·
《
金剛經
(金剛經)》
·
《
圓覺經
(圓覺經)》
·
《
心境
(心經)》
·
《
靈駕集
(永嘉集)》 等의 經典은
世祖
의 魚蜴(御譯)으로 當時 高僧(高僧)이었던
辛未
(信眉)
·
수미
(守眉)
·
홍준
(弘濬) 等과 代身(大臣)
윤사로
(尹師路)
·
황수신
(黃守身)
·
김수온
(金守溫)
·
한계희
(韓繼禧)
·
成任
(成任) 等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2]
經典 飜譯事業은 佛敎 普及에 적지 않은 役割을 했으며, 한글로 飜譯한 諺解本은 佛敎學 硏究뿐만 아니라 朝鮮 初期의 우리말 硏究에 貴重한 資料가 되고있다.
[3]
그러나 世宗 때부터 한글 使用에 反對하던 事大主義 儒學者들이 佛經飜譯을 崇佛行爲라고 反對하고 나서자
[6]
1471年(成宗2) 12月에 廢止되었다.
[7]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