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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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준
Han Young-Jun
基本 情報
國籍 大韓民國
生年月日 1962年 11月 14日 ( 1962-11-14 ) (61歲)
出身地 부산직할시
신장 171cm
體重 74kg
選手 情報
投球·打席 우투右打
守備 位置 內野手
프로 入團 鳶島 1985年
드래프트 順位 1985年 1次 指名( 롯데 자이언츠 )
첫 出張 KBO / 1985年
마지막 競技 KBO / 1996年 9月 8日
辭職 해태
經歷

選手 經歷

코치 經歷

監督 經歷


한영준 (韓英俊, 1962年 11月 14日 ~ )은 前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 의 內野手이다. 元祖 釜山 악바리이자 元祖 프렌차이즈 選手인 그는 共修晝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鬪魂, 그리고 끝까지 抛棄하지 않는 精神과 작은 體軀였지만 相對 投手와의 旗싸움에서 지지않던 악바리같은 根性, 꼼꼼하고 팀의 궂을 일을 메꾼 살림꾼이었으며 그는 88~90年度 올스타戰 및 每年 60競技 以上 試合을 뛰었고, 1000競技 出張의 記錄도 세웠다. 1992年 1995年 두 해에 걸쳐 롯데 자이언츠 에서 主張을 맡았다. 1992年 에는 롯데 자이언츠 優勝을 맞았다. 守備에서는 1壘를 除外한 全 포지션을 돌아다니며 팀의 구멍을 빈틈없이 메꾸어냈고, ‘小銃部隊’로 한 時代를 風靡한 롯데 打線의 連結고리 役割을 톡톡히 해냈다. 롯데 자이언츠 에서 12年間 選手 生活을 했으며 只今까지 援助 악바리,元祖 프렌차이즈라 불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에서 隱退競技와 隱退式까지 치루었전 그는, 先進 野球技術의 더욱 익히고자 美國으로 건너가 토론토 블루제이스 傘下 트리플싱글A 美國 더니든 블루제이스에서 守備코치 및 1壘 走壘코치를 맡았다. 1998年 ~ 2001年 까지 롯데 자이언츠 , 2004年 ~ 2010年 까지 두산 베어스 의 守備코치를 하며 只今의 두산의 튼튼한 守備의 作品을 만들어 내었다. 選手와 함께하는 訓鍊하는 點을 强調하는 그의 손바닥은 웬만한 選手들 못지 않게 딱딱하며 단단한 굳을 살로 뒤덮여 있기로 有名할 程度다. “백핸드는 毒이 아닌 藥”이라는 有名한 말을 남겼고 無限想像과 挑戰, 이미지 트레이닝을 强調하는 地圖 哲學을 갖고 있으며 2012年 高麗大學校 監督으로 [1] 赴任하였다. 7月에는 첫 해 赴任 後 全國大學野球 大統領機배에서 優勝시키며, 아마野球 最高指導者賞을 受賞하였다. 9月에는 定期 라이벌戰인 고연戰에서 優勝시키며 指導者로서 卓越한 能力을 서슴없이 보여주었다.

選手 活動 [ 編輯 ]

롯데 자이언츠 [ 編輯 ]

元祖 釜山 악바리, 작은거인 한영준.

부산고 時節 耳目口鼻가 뚜렷한 잘 생긴 外貌에 몸집은 작지만 强力한 손목힘을 바탕으로 홈런을 펑펑 쳐내는 長打者로 人氣를 끌며 1番打者로서 그의 플레이는 ‘根性’으로 똘똘 뭉친 단단함으로 說明되는 ‘援助 악바리’였다. 그는 學生時節에도 두자릿數 홈런을 記錄하며 부산고의 長打力을 갖춘 選手였다. 키는 작지만 단단한 몸, 날카로운 選球眼, 손목힘과 배트 그립을 利用해 배팅하는 교타자. 펀치力이나 테크닉에서 뛰어났다. 高等學校 3學年 時節, 한해에만 總 7個의 홈런을 때려 낸 그는 長打力 있는 팀의 ‘톱스타’였다.

高麗大學校 에 進學한 그는 高校時節 보여준 그의 5툴 플레이로 大學時節 그는 다양한 포지션을 消化한다. 작은 身體條件 上(171cm) 不利한 1壘手를 除外한 모든 내야 포지션에서 活動했다. 主로 3壘와 2壘를 消化한 自身의 포지션에서 제 役割을 해냈다. 打線에서는 選球眼과 長打力을 바탕으로 主로 톱타자를 그리고 ‘MLB에서 팀 守衛 他者에게’ 돌아간다는 3番 他者의 役割을 해냈다. 大學舞臺에서 그는 ‘2壘打 머신’으로 불리며 各種 大會에서 首位打者賞을 휩쓸었다. 그는 1984年 LA 올림픽 示範 種目이었던 野球 國家代表에 뽑히며 太極마크의 꿈을 이룬다.

1985年 그는 롯데 자이언츠 1次地名 을 받아 데뷔한다. 故鄕팀에 堂堂하게 프로로 入城한 한영준은 神인 첫 해부터 大型 3窶籔로 成長할 것이라는 期待를 받으며 主戰 자리를 꿰찼으며 新人 初盤부터 매섭고 날카로운 플레이와 악바리 氣質로 팬들의 讚辭를 받았으며 競技場에서는 根性으로 똘똘 뭉쳐서 抛棄하지 않는 氣魄을 보여주었다. 박정태가 데뷔 하기 前부터 이미 神的 存在인 元祖 악바리라는 別名을 가지고 있었으며 롯데 자이언츠 內野의 核같은 存在였다. 1988年 부터 1990年 까지 3壘手 部分 올스타戰에 連續 參加하였고 30이 넘는 나이인 90年代 들어서도 1壘를 除外한 내야 全 포지션이 消化 可能하였으며 쏠쏠한 打擊과 함께 1992年 에는 팀의 主張을 맡으며 팀의 優勝을 거머쥔다. 1995年 에는 프로通算1000競技 出場 記錄을 세우며 受賞을 한다.

1996年 까지 롯데라는 한 유니폼을 입고 지낸 元祖 프렌차이즈 스타 한영준은 2000年代 以前인 1996年에 프로野球에 몇 안되는 球團에서 치러 준 公式 隱退式 을 갖는다. 當時 全 球團을 통틀어 4番째 選手였으며, 球團에서 提供한 純金 記念倍트와 功勞牌 等을 받으며, 隱退 競技를 치렀다. 같은 날, 1996年 부산고와 자이언츠 同氣였던 ‘자갈치’ 김민호와 함께 정든 辭職 그라운드를 떠나며 훌륭한 選手 生活을 마감했다.

指導者 生活 [ 編輯 ]

한영준은 韓國 守備의 트렌트를 바꾼 張本人이다. 롯데에서 隱退 後 美國에서 코치 硏修를 마치고 1998年 부터 2001年 까지 롯데 자이언츠 , 2004年 부터 2010年 까지 두산 베어스 守備코치 자리를 맡게 된다. 오늘날 두산의 끈끈한 守備의 相當 部分은 한영준의 作品이다.

그의 특별한 地圖에는 코치로서 直接 選手와 함께 訓鍊하는 點을 强調한다. 손바닥은 웬만한 選手들 못지 않게 단단한 굳을 살로 뒤덮여 있기로 有名할 程度다. 한 때 백핸드 그립 캐치는 種種 ‘멋부리는 것처럼 보인다’며 貶下되던 時節이 있었다.

그는 “백핸드는 毒이 아닌 藥”이라는 有名한 말을 남기며 백핸드 캐치가 華麗해 보이지만 狀況에 따라 오히려 ‘安定的’일 수 있다며사고의 轉換을 選手들에게 注文했다.

守備의 正答은 ‘安定性’이라며 個別 狀況에 對한 無限想像과 挑戰, 이미지 트레이닝을 强調하는 地圖 哲學을 가지고 選手들을 指導한다.

2012年 부터는 母校인 高麗大學校 野球部 監督으로 在職하고 있다. 赴任 後 첫 해 7月 14日 全國 大學野球 大統領機에서 優勝을 시키며 아마野球 最高指導者賞까지 受賞한다. 宿命의 라이벌戰인 9月 定期 고연戰 (2012年은 古代 主催라 고연戰이라 函.) 마저 優勝으로 이끌며 最高의 指導者감으로 거듭난다.

12年 間 選手 生活을 하면서 1000競技 넘게 出戰하며 主戰으로던 백업으로던 언제나 默默히 팀이 必要로 하는 곳에서 自己 役割을 다 했던 選手이며 根性으로 똘똘 뭉친 플레이 德에 成跡에 비해서는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選手이다. 特히 野球選手로서는 많이 작은 體軀(프로필上의 키는 171cm이나 實際 키는 더 작았을 것으로 보인다.)임에도 프로에서 10餘年을 살아 남았다는 것은 그의 피나는 努力을 反證하는 것이기도 하다. 選手 時節에 다양한 포지션을 經驗한 것과 美國 마이너리그팀에서의 코치 硏修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한영준은 選手와 함께 訓鍊하고 直接 가르치는 그만의 특별한 方法으로 先進野球를 幅넓게 알리며 엘리트 野球의 代名詞를 指導者로서도 發散하고 있다.

出身 學校 [ 編輯 ]

  1. 김희준 (2012年 7月 14日), 《高麗大, 大統領機大學野球 優勝》 , 뉴시스 , 2021年 8月 26日에 確認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