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次 朝鮮敎育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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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次 朝鮮敎育令 (第二次朝鮮敎育令)은 1922年 2月 公布한 日本의 植民地 敎育 政策이다.

施行 [ 編輯 ]

朝鮮 總督府 사이토 마코토 總督의 敎育方針에 따라서 1921年 1月 臨時 敎育調査委員會를 開催하여, 日本 本土의 敎育制度에 遵據한 學制의 改革을 審議케 했고, 1922年 2月에는 敎育令을 全面 改正하여 第2次 '朝鮮敎育令'을 公布하였다.

敎育令을 改正하여 表面上 日本學制와 同一하게 함으로써 融和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基本意圖가 다른 곳에 있었음은 自明한 일이었고 '2次 敎育令'에 담긴 '文化'란 이름의 敎育政策 內面에는 다른 目的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3·1 運動 後에 일어난 刺戟된 것에 不過하였다. 사이토의 文化政治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學校 校庭에 심어져 있는 無窮花를 뽑고 '사쿠라(벚꽃)'를 심도록 하는 데까지 뻗어나갔다. 사이토 總督의 文化政治는 全代(前代)의 武斷政治보다 더 苛酷한 統治方法이 되었다.

主要內容 [ 編輯 ]

  1. 普通學校의 授業年限을 4年에서 6年으로 (地域의 狀況에 따라서 5年, 4年으로 函), 高等普通學校는 4年에서 5年으로, 女子高等普通學校는 3年에서 4年(또는 5年)으로 延長하였다.
  2. 日本語의 授業時數를 增加하면서 日本語 敎育을 强化하였다.
  3. 새로 師範學校와 大學設置의 길을 마련했다.
  4. 實業敎育·專門敎育·大學敎育은 日本의 制度에 따랐다.
  5. 同一한 敎育制度·敎育期間을 擴充함으로써 日本式 敎育을 强化하여 韓國民族 思想을 抹殺하려는 데 있었다.
  6. 새 敎育令의 全體內容은 곧 日本語 習得에 있었다.
  7. 大學의 設置를 規定함으로써 韓國에 大學敎育의 門이 열린 것처럼 假裝하였다.
  8. 朝鮮人과 日本人의 工學을 原則으로 하였다.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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