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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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세 (鄭基世, 1814年 ~ 1884年 )는 朝鮮의 文身이다. 本貫은 東萊 (東萊). 者는 성구(聖九), 號는 主計(周溪)이다. 領議政 정원용 (鄭元容)의 아들이다.

生涯 [ 編輯 ]

1837年 (憲宗 3) 定試(庭試) 文科에 丙科로 及第하여 충청우도暗行御史에 이어 成均館 大司成 으로 堂上官에 超拜되었다. 哲宗 때 吏曹參議 , 右承旨 , 弘文館 副提學 을 거쳐 江華留守, 全羅道觀察使가 되고 以後 吏曹參判 을 거쳐 漢城府判尹 , 刑曹判書 , 禮曹判書 를 하다 個性有數를 다시 하고 禮曹判書 를 다시 하고 奎章閣提學, 禮曹判書 , 判義禁府事 , 吏曹判書 , 刑曹判書 , 兵曹判書 를 지내고 漢城府判尹 弘文館 提學 , 藝文館 提學 을 지냈다. 高宗 때 議政府 右贊成 에 이르렀다가 右贊成 으로 藝文館 提學 을 겸하고 弘文館 提學 , 藝文館 提學 을 지내고 刑曹判書 , 判義禁府事 에 이어 光州留守를 지내고 禮曹判書 , 漢城府判尹 , 弘文館 提學 , 左賓客, 吏曹判書 를 지내고 判義禁府事 , 弘文館 提學 에 이어 工曹判書 , 判義禁府事 에 이어 水原留守와 漢城府判尹 을 지내고 知中樞府事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