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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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

유종원 (柳宗元, 773年 ~ 819年 11月 28日 ( 陰曆 11月 8日 ) [1] )은 中國 唐나라 의 文章家·詩人이다.

生涯 [ 編輯 ]

字는 自後(子厚)이며 唐宋 8臺가 의 한 사람이다. 山西省 운성視 에서 태어났다. 가까이로는 黨(唐) 高宗(高宗) 때의 宰相인 維石(柳奭)의 後孫. 멀리는 瑞草(西楚) 皇帝 議題(義帝)의 後裔이다. 進士 試驗을 거쳐 33歲에 尙書禮部員外郞이 되었다. 그 해 正月 德宗 이 죽자 純宗 이 卽位하고, 유우석 等과 함께 왕숙문, 王妃 等의 政治改革運動에 加擔했다. 그 運動은 宦官 이나 그들을 利用하는 貴族의 勢力을 누르고 刷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急激한 政治改革運動은 成功하지 못했고, 8月에 純宗 在位에 隨伴되어 改革派는 모두 물러나고, 柳宗元은 榮州私馬(永州司馬)로 左遷되었다. 以後 다시는 中央에 돌아오지 못하고, 43歲 때에는 유주刺史(柳州刺史)로 옮겨져 47歲로 그 곳에서 죽었다. 柳宗元은 封建社會 構造를 疑問視한 合理主義者였다. 그의 〈封建論(封建論)〉이라는 題目의 글은 有名하다. 그는 合理主義 精神을 알기 쉽게 提示하고자 寓話 性格을 띠는 技法을 使用한 散文을 즐겨 썼다. 그의 글은 韓愈 의 글에서 보는 듯한 原理論에서부터 敍述을 進行하는 理論上 長點은 없으나 世上이나 사람의 바람직한 姿勢를 主題로 한 批判精神을 늘 內包한다. 地方官吏로 左遷된 以後 山水를 題材로 한 詩를 지어 自身을 慰勞했다. 詩人으로서는 王維 , 孟浩然 , 韋應物 과 함께 王·맹·魏·유라고 稱해졌다.

電氣 資料 [ 編輯 ]

  • 《舊唐書》 卷160, 〈列傳〉110, 유종원
  • 《新唐書》 卷168, 〈列傳〉93, 유종원
  • 韓愈, 《창려文集》 卷 32, 유자후 墓誌銘

書誌 事項 [ 編輯 ]

  • 오수형·李石亨·홍승직 함께 옮김, 《유종원집》(1~4), 소명출판, 2009年 7月 29日

各州 [ 編輯 ]

  1. 韓愈, 《창려文集》 卷 32, 유자후 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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