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콩트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 오귀스트 꽁트 에서 넘어옴)

오귀스트 콩트
Auguste Comte
學者 情報
出生
몽펠리에
死亡
파리
國籍 프랑스
學歷 Lycee Joffre (1807 - 1814)
에콜 폴리테크니크 (1814 - 1816)
父母 Rosalie Boyer (某)
配偶者 Caroline Massin (1825 - 1842)

이지도르 마리 오귀스트 프랑수아 그자비에 콩트 ( 프랑스語 : Isidore Marie Auguste Francois Xavier Comte , 1798年 1月 19日 ~ 1857年 9月 5日 )는 프랑스 哲學者 , 社會學者 이다. 實證主義的이고 經驗主義的인 社會學의 創始者이다. [1] '實證主義 哲學'과 '社會學'이라는 用語를 명명하였다.

19世紀 前半에 유럽을 뒤덮은 社會的, 思想的 混亂 狀態를 종식시키기 위한 方案으로 "實證主義의 精神 위에 社會學을 定立하자"고 主張했다. [2]

個人 삶 [ 編輯 ]

오귀스트 콩트는 1798年 프랑스 몽펠리에 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革命 의 막바지에 태어나 프랑스의 政治的인 急變이 繼續되던 混亂의 時期에 살았다. 프랑스는 그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安定的인 政治體系를 이루지 못했고, 社會的으로 産業化 가 이루어지면서 混亂은 더해져 가고 있었다. 콩트는 이러한 時期를 살았으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社會의 安定을 이루고 改善하는 것에 對한 關心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에꼴 폴리테크니크(當時의 엘리트 技術學校)를 그만둔 後 當時의 著名한 硏究者이자 社會主義者인 앙리 드 생시몽 과 交流하였으며, 그와 함께 硏究하기 始作하면서 많은 部分에서 影響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理論보다는 社會를 改善하려는 實質的인 行動에 더 比重을 두는 생시몽과 갈등하였으며 結局 訣別하였다.

콩트는 以後 自身의 著作인 《實證哲學講義》를 執筆하는 데 注力하고 ‘ 社會學 ’의 原理들을 創案하였다. 그러나 그의 努力은 그다지 크게 認定받지 못하였다. 그가 意圖한 모든 科學의 統合은 지나치게 큰 野望으로 생각되었고 따라서 많은 批判과 非難을 받아야 했다. 結局 學界에서 孤立된 콩트는 自身의 後期著作인 《實證政治體系》에서 科學보다는 宗敎的인 色彩의 主張을 하기 始作한다. 그는 ‘人類敎’를 만들고 스스로 司祭가 되었다. 卽, 宗敎의 代替物로서 實證主義 를 主張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行動은 以前과 매우 對比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생시몽 類似 宗敎的 屬性을 非難하였으며 그러한 理由로 생시몽과 訣別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自身의 學問 內에서도 矛盾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였으나 그가 社會學을 創始하고 後代의 많은 思想家들에게 影響을 주었다는 것에는 큰 異見이 없다.

實證哲學 講義 [ 編輯 ]

콩트의 代表的 著書인 實證哲學 講義를 中心으로 본 그의 思想은 다음과 같다.

콩트는 생시몽과 訣別한 後 自身의 代表著作인 《實證哲學講義》를 執筆한다. 『實證哲學講義』는 콩트 社會學의 精髓로 그의 社會學을 理解하는 데 매우 重要한 著作이다. 콩트는 이 著作에서 社會學的 理論의 原則, 實證主義的 硏究에 對한 方法論, 社會 進步의 段階와 法則, 社會學的인 硏究 對象들에 對해 말하고 있다.

社會學의 基本 前提 [ 編輯 ]

1) 社會物理學  : 自然現象에 일정한 法則이 있는 것처럼 社會에도 그런 法則이 있음

2) 社會組織에 對한 硏究 : 社會는 어느 한 部分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聯關되어 있는 有機的 全體

社會學 理論에 關하여 [ 編輯 ]

콩트는 當時 아이작 뉴턴 에 依해 일어난 科學革命에 깊은 影響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는 뉴턴(萬有引力의 法則)과 마찬가지로 社會學이라는 學問을 自然法則에 從屬된 하나의 科學 으로 定立시키려 했다. 그는 觀察에 기초하여 社會 를 硏究하고, 그 社會를 支配하는 根本的이고, 기초적인, 法則들을 發見하는 것을 社會學的 理論의 展開(觀察을 통해 社會的 世界를 支配하는 法則을 밝히는 것)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現代의 社會學 方法論과는 棟 떨어진 것으로, 그는 單純히 社會學的 事實들에 對한 因果的인 硏究를 願한 것이 아니라, 그 因果 關係들을 통해서 社會의 窮極的인 屬性을 理解하려는 意圖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콩트는 觀察에 기초하여 社會學的인 原理와 法則을 發見하려 하였고 이것을 實證主義라고 불렀다. 實證主義라는 單語는 現代에 와서 經驗主義로 汚瀆되는 境遇가 많은데 콩트의 實證主義는 이것과는 全혀 다른 것이다. 그는 單純히 現象을 觀察하는 데 그치는 粗野한 經驗主義를 批判하면서 “모든 理論이 觀察된 事實에 기초해야 한다면, 모든 現象도 理論에 기초해야 한다.”라고 主張하였다. 그는 自身이 主唱하는 實證主義가 單純히 經驗主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理論과 法則의 發見이라는 目的을 念頭에 두고 現實을 觀察하는 方法論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콩트에게 社會學의 目的은 抽象的인 理論的 原則들을 發展시키는 것이다. 一旦 社會學이 理論科學으로서 잘 定立되고 나면 그 法則들은 社會世界를 改善하는 道具나 手段으로서 使用할 수 있다. 社會의 組織과 變動에 關한 法則은 다양한 새로운 社會的 制度들을 創出하는 道具로서 使用될 수 있다.

硏究 方法論(社會學的 方法의 正式化) [ 編輯 ]

콩트는 社會的 法則, 原理를 發見하려는 社會物理學의 硏究 方法으로 體系的인 3個의 方法論(또는 4個)을 提示한다. 이것은 社會現象에 對한 自然科學的인 硏究 方法으로 觀察, 實驗, 比較 또는 歷史的 分析이 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觀察

위에서 말한 바 있듯이 觀察은 單純히 現實의 社會的 事實을 觀察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콩트는 이러한 것을 粗野한 經驗主義라고 批判했다는 것도 言及했었다. 콩트는 觀察에 對해 “觀察은 現象의 動的法則과 政敵法則에 從屬 된다”라고 主張하였다. 理論的 뒷받침이 없는 經驗的 事實들의 觀察은 科學의 發展에서 無用한 것으로 證明 될 것이라고 簡單하게 主張한다. 따라서 觀察이란 現實의 事實들 사이에 存在하는 經驗的인 法則關係를 밝혀내는 것까지 包含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實驗

콩트는 科學的 方法論인 實驗을 社會學的인 方法論으로 採擇하였다. 그러나 實驗이라는 人爲的인 方法은 倫理的, 道德的인 問題로 인해 社會를 對象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事實이다. 콩트 亦是 이러한 事實을 認定하였으나, 그는 人爲的 實驗 代身 自然的 實驗이 可能하다고 생각하였다. 콩트는 自然的 實驗에 對해 “現象의 規則的인 過程이 일정한 方式으로 干涉받을 때 언제나 이루어진다.”라고 쓰고 있다. 自然的 實驗의 代表的인 例는 生理學의 病理的 現象 觀察처럼 社會的 病理現象의 觀察, 卽 社會的 逸脫現象의 觀察을 들 수 있다. 社會物理學者들 亦是 病理學的 事例들에 對한 硏究를 통해 社會의 正常的 過程에 對한 知識을 얻을 수 있다.

比較와 歷史的 分析

콩트가 마지막으로 提示하는 方法은 比較와 歷史的 分析이다. 比較란 簡單히 말해서 社會들의 比較를 통해 法則을 發見하는 것이다. 亦是나 生物學的인 方法을 借用한 것으로 콩트는 다양한 形態를 가진 社會形態들의 比較를 통해 各 社會들의 作動原理와 根本的인 屬性들을 把握할 수 있다고 믿었다. 歷史的 分析이란 事實, 比較의 方法 中 하나로(현재와 過去에 對한 比較), 時空間的 側面에서 社會를 比較하는 것이며, 그의 歷史的 ‘三段階 法則’과 關聯하여 重要性을 띤다.

社會學의 構造 [ 編輯 ]

콩트의 社會學은 여러 가지 科學 中에서도 特히 生物學의 影響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有機體에 對한 生物學的인 硏究가 社會에까지 擴大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社會學은 根本的으로 有機體的인 社會組織에 關한 硏究로서, 社會組織이라는 이 硏究對象은 有機體가 나뉠 수 없는 것처럼 決코 나뉠 수 없는 것이고 部分에 對한 硏究는 全體의 脈絡에서만 可能한 것이었다. 콩트는 社會를 하나의 有機體的 全體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를 통해 自身의 社會學的 構造를 세웠다. 그는 “社會物理學에서 秩序의 槪念과 進步의 槪念은 生物學의 組織 槪念과 生命 槪念처럼 分離될 수 없으며 그 槪念들은 實로 科學的 見地에서 生物學으로부터 派生되었다.”고 말함으로써 社會를 有機體로 보는 自身의 社會觀과 自身의 社會學的 硏究 對象들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社會靜學

앞서 말한 社會物理學의 두 個 槪念들 中 秩序에 屬하는 것이 바로 社會靜學이다. 社會靜學은 社會를 構成하는 要素들 間의 關係, 그들 間의 秩序에 對한 法則을 硏究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社會靜學에 關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社會의 前提條件에 關한 硏究로 秩序에 對한 關心이며 따라서 ‘人間의 存在條件’間의 調和에 關한이론이다.” 그는 社會의 ‘眞正한’ 構成要素를 個人이 아닌 家族으로 보았다. 그가 個人이 아닌 家族을 社會의 基本 構成單位로 본 것은 家族이 ‘社會有機體의 다양한 特性들의 眞正한 根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家族이 個人이 가지는 利己心을 중화시키고 社會로 統合될 수 있도록 도운다고 보았다. 따라서 個人은 絶對 社會學的인 側面에서 基本的인 構成單位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콩트의 社會靜學에서 重要한 點은 社會의 統合과 秩序에 關聯된 法則, 條件에 關한 것이다. 그는 社會의 下部構造들이 單純한 狀態에서 좀 더 精巧해지는 方向으로 나아가며 이것이 發展이라고 생각했지만 한便으로 이러한 傾向은 社會機能의 分離를 가져오고 社會的 統合을 이루는 ‘總合的, 一般的 精神을 消滅, 制限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社會가 發展할수록 社會의 各 機關들은 漸漸 더 專門化, 分化되지만, 同時에 有機體와 마찬가지로 統合을 維持 할 것으로 생각했다. 어째서 그러한가? 콩트의 說明을 살펴보자. 그는 社會的 機能의 分化가 불러오는 專門化가 오히려 社會構造들 間의 相互依存을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分業의 例를 살펴보자, 分業을 통해 物件을 生産하는 境遇 各 勞動은 分離되고 專門化된다. 이러한 機能分離는 各 分業參加者들 間의 異質性을 講和시키지만 同時에 依存性을 심화시킨다. 各 勞動이 합쳐지지 않는 以上 個別勞動은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例는 社會 全體에도 適用될 수 있을 것이다.

한便으로 콩트는 統合을 이루는 다른 두 가지에도 注目했다. 하나는 各 部分 間의 交換과 統合을 誘導하는 支配力과 權威의 集中이고 다른 하나는 構成員間의 普遍的 合意였다. 그는 社會 成員들 間에 言語와 宗敎 같은 共通된 指摘觀念과 道德性이 存在함으로써 統合을 이루는 基礎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들이 社會分化 現象을 相殺시키는 또 다른 要因으로 보았다. 後에 論議하게 되겠지만 그는 社會를 支配하는 歷史的 知識體系를 세 가지로 區分했으며 그中에서도 自身의 實證主義를 새로운 時代의 새로운 秩序를 위한 知識體系라고 보았다. 1) 體系의 各 部分들의 相互依存性 2) 部分들間의 交換을 調整하는 權威의 集中化 3) 成員들 사이의 共通의 道德性

社會動學

두 番째 硏究對象은 進步의 槪念에 關한 것으로 콩트는 이를 社會動學이라고 불렀다. 社會動學은 繼承의 法則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要約할 수 있다. 繼承의 法則이란 人間文明의 主要 變動이 잇달아 일어나는 抽象的 秩序를 뜻한다. 콩트는 이러한 繼承의 法則을 發見하려는 努力을 통해 自身의 3段階 知識, 思考 體系에 相應하는 社會發展의 3段階 法則(神學的`軍事的- 形而上學的`法的- 實證的 段階로 이어지는)을 定立했다. 이러한 三段階法則에는 몇 가지 留意해서 볼 點들이 있다. 첫 番째, 各 段階는 進化的이다. 卽, 各 段階의 社會가 다음 段階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各 段階의 條件들이 成熟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變化가 갑자기 일어나거나 段階를 뛰어넘는 것은 不可能하다. 두 番째, 各 段階로 넘어가는 中間의 段階에는 前段階의 要素들과 다음段階의 要素들이 서로 葛藤하면서 混亂을 일으킨다. 콩트는 發展의 過程을 順坦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中間段階에서 混亂이 있을 수 있음을 認定하였다. 特히 그는 自身이 살던 時期를 이러한 混亂의 時期로 認識한 듯 보이며 自身이 主唱한 社會物理學의 任務가 바로 이런 混亂의 時期를 克服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1) 神學的 段階 : 人間의 힘이 아닌 超自然力에 依支하는 段階, 모든 現象은 神에 依한 것이라고 생각함.

2) 形而上學的 段階 : 여러 現象은 本質이나 本性이라는 抽象的인 槪念에 依해 說明된다고 믿는 段階, 事物에는 그 속에 담긴 어떤 本質이 있고 그것을 밝히는 硏究를 통해 知的 發展이 이루어지는 段階

3) 實證的 段階 : 眞情으로 참다운 知識의 段階, 現象을 觀察하고 假說을 세우고 그에 따라 實驗을 하는 過程을 통해 假說을 檢證하는 方法

그렇다면 進步의 契機는 무엇인가? 콩트는 基本的으로 社會 進步의 契機를 가장 먼저 知識의 進步에서 찾는다. 그는 社會動學의 確立에 튀르고의 影響을 받았지만 그와는 달리 經濟力보다는 知識의 進步가 社會進步의 가장 重要한 契機라고 말함으로써 튀르고와는 差異를 보인다. (그는 自身이 設定한 知識進步의 三段階에 따라서 社會進步의 三段階法則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콩트는 單純히 知識의 進步만이 모든 進步의 契機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重要하게 여긴 또 다른 契機는 바로 人口이다. 當時에 人口에 對한 一般的인 認識은 멜서스 式의 認識이었다. 卽, '人口의 增加가 人類의 不幸을 불러올 것'이라는 認識으로, 이것은 人口의 增加를 否定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콩트는 反對로 人口의 增加가 進步의 原因이라고 생각했다. 勿論 그도 人口의 增加가 分明히 資源의 不足을 招來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資源의 不足이 人類에게 危機로 다가오기보다는 人間에게 ‘必要’를 發生시킴으로써 進步의 契機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앞서 말한 知識의 進步와 함께 社會內部的人 解決策인 生産性의 發達(産業化로 因한 分業의 擴大가 代表的인 例다.)을 이룸으로써 人口增加로 인한 資源不足의 問題를 解決하고 社會的인 進步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知識 進步의 段階와 科學의 位階 [ 編輯 ]

콩트는 知識의 三段階法則, 科學의 位階論을 『實證哲學講義』에서 主張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創案한 ‘社會物理學’의 支持基盤을 確保하는 手段이었다. 그는 神學的, 形而上學的, 實證的 段階로 人間의 知識이 進步한다고 主張했다. 이러한 段階는 社會의 進步 段階처럼 進化的으로 進行된다. 卽, 各 段階는 뛰어넘을 수 없고, 各 段階는 다음 段階의 條件을 生成시킨다는 것이다. 콩트에 따르면 社會學은 바로 마지막 段階인 實證的 段階의 最高 頂點에 선 學問이다. 왜 그런 것 일까? 콩트는 科學의 位階論을 통해 社會學의 性格과 位置를 규정짓는다. 그는 科學에는 位階가 있으며 總體的인 性格의 科學은 下部科學의 發展을 통해 發展한다고 말한다. 콩트의 말에 따르면 天文學이 가장 먼저 마지막 段階인 實證的 段階에 到達하고 物理學, 化學 等이 뒤를 이으며 이어서 有機體에 關한 學問인 生物學이나 生理學이 實證的 段階에 到達하게 된다. '社會物理學'은 生物 有機體에 關한 硏究에 基盤 하여 社會的 有機體를 硏究하는 學問이므로 가장 마지막에 實證的 段階에 到達한다. 이것은 社會物理學이 모든 科學 中 가장 總體的인 學問이며 모든 科學을 統合한다는 콩트의 생각을 代辯한다. 또 이러한 생각들은 過去의 社會學에 남아있던 神學的, 形而上學的 殘滓를 淸算하고 科學的이고 實證的인 社會學을 創始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콩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믿음은 近代 社會學의 創始者로서 그의 位置를 確固하게 만들고 있다.

各州 [ 編輯 ]

  1. [네이버 知識百科] 오귀스트 콩트 [Auguste Comte] (社會學事前, 2000. 10. 30., 고영복)
  2. 柳時敏 <內 머리로 생각하는 歷史이야기> 푸른나무 2009年 p82

參考 資料 [ 編輯 ]

  • 《社會學理論의 形成》, 조나단 터너, 레오나드 비글리, 찰스 H. 파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