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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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석 (梁元?, 日本名 야나가와 지로(柳川次?), 1923年 ~ 1991年 12月 12日 )은 在日韓國人 으로 日本 暴力團 야마구치구미 3代 助長 때 傘下 組織인 '야나가와龜尾'의 招待 助長이었다.

生涯 [ 編輯 ]

釜山 에서 태어났다. 1930年 家族과 함께 도일, 오사카部 에 살았다. 여기서 나중에 야나가와龜尾의 2代 組長이 되는 在日韓國人 강동화(康東華, 日本名 다니가와 고타로(谷川康太?)와 알게 됐다. 1941年 强制動員 形態로 오이타현 軍需工場 附近으로 家族이 移住했다. 1945年 解放 後 家族은 歸國했지만, 양원석은 出國 直前에 싸움에 휘말려 逮捕된 탓에 혼자서 日本에 남게 됐다. 以後 어둠의 世界로 흘러들어갔다. 1958年 '社카우메구미'(酒梅組) 系列의 '기토龜尾'(鬼頭組, 組織員 100名)에 單 8名이 쳐들어간 일로 有名稅를 떨쳤다. 이 일로 9個月間 服役한 뒤 같은해 11月에 야나가와龜尾를 創設했다. 1959年 부터 야마구치구미와 連結됐다. 야마구치구미가 全國 組織으로 成長할 때 重要한 役割을 했다. 全盛期 야나假我龜尾는 組織員이 約 2千名에 이르렀다. 警察의 集中 團束을 받고 1969年 야나가와龜尾를 解散했다. 以後 이름을 다카시(魏志)로 바꾸고 '아시아民族同盟'(?細?民族同盟)을 設立했다. 日本 IBF 設立에 關與, 커미셔너로 일하기도 했다. 1988年 미야기縣 民團 支部長이 됐다. 全斗煥 政權 時節 韓國 政府로부터 保國勳章 광복장을 받았다. 韓國 保安司의 日本 內 파이프 役割을 했다는 소리도 있다. 崔瑩의 와도 親分이 있었다. 1991年 오사카에서 死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