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189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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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1892~1934)는 臨時政府에 參與한 大田地域의 代表的 獨立有功者다. 號 江山(剛山).

生涯 [ 編輯 ]

大田 西區 원정동에서 태어났다. 徽文義塾을 마치고 1919年 3·1運動에 參與한 後 報恩 公州에서 獨立資金을 모으다가 上海로 亡命, 臨時政府의 警務局원이 됐다. 같은 해 9月부터 다음해인 1920年 6月까지 황포軍官學校에 들어가 軍事學을 工夫하였다.

歸國 後에는 大同團(大同團)을 組織해 의친왕(義親王) 李堈(李堈)의 상하이脫出工作에 加擔했으나 失敗했다. 以後 上海와 韓國을 드나들며 끊임없이 抗日運動을 벌이다 1924年 軍資金 募金을 위한 獨立 公採를 가지고 歸國하다 逮捕돼 2年刑을 받았다.

그 後 榮州 浮石寺를 據點으로 活動中 忠南 論山에서 日本警察을 죽이고 그 이듬해 1927年 慶北 安東에서 잡혀 無期刑을 宣告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服役하였다. 持病으로 病保釋됐다가 1934年 43歲를 一期로 病死했다. [1] [2] 1977年 建國褒章, 1990年 建國訓長 愛國章이 追敍되었다.

2019年 6月 11日 大田地方警察廳(廳長 黃雲夏)李 臨時政府 樹立 100周年 記念事業의 하나로 大田警察廳 內 別館 講堂 이름을 '無窮花 홀'에서 '김용원 홀'로 바꿨다. 이날 大田警察廳 別館에서 '臨時政府 警務局長 김용원 愛國志士 追慕式'을 開催했다. [3]

獨立運動 功績을 탈취당한 事緣 [ 編輯 ]

2000年 11月 22日頃 김옥경은 祖父이자 愛國志士인 김용원의 遺跡費 建立 現況을 確認하기 爲해서 恩平公園(大田廣域市 西區 월평동)을 찾았다. 그러나 鼻紋 正面에 새겨진 生涯非(높이 1.4m 幅 1.8m)와 揮毫非(높이 4.3m 幅 1.4m)에는 金氏의 祖父가 아닌 '이돈직'이라는 알 수 없는 사람의 揮毫와 功績이 새겨져 있었다. 現場에는 김용원의 胸像이 없었고 정작 金氏 祖父의 生涯와 揮毫는 各各 뒷面에 새겨져 있었음이 드러났다. 調査를 해보니 恩平公園 揮毫非·生涯費와 원정동 김용원 先生 功績碑, 효평동 이돈직 功績碑, 대덕구 비래동山(無窮花동산) 碑文에도 이인구의 祖父 이돈직의 부풀려진 功績이 적혀있는 것으로 確認됐다. [4]

<오마이뉴스>는 2003年 12月 '獨立鬪士의 功績碑가 變造된 事緣'을 報道했다. 報道에서 "大田地域 代表的 獨立運動家 中 한 名으로 꼽히는 김용원 先生의 獨立運動 行跡에 無名의 '이돈직' 끼워넣기로 獨立運動家를 만들려는 첫 試圖"라고 告發했다.

大戰愛國志士崇慕會 等이 大田地域 곳곳에 세운 이인구 鷄龍建設 名譽會長의 祖父인 고 이돈직 碑文에 새겨진 抗日運動 行跡과 愛國志士 김용원 先生과 함께 獨立運動을 했다는 非文 等은 "確認되지 않았고 無理하게 끼워넣어진 것"이라고 內容이다. 特히 大田市로부터 支援을 받아 恩平公園(月評公園)에 세워진 이돈직 生涯費와 揮毫費는 當初 事業 目的에도 맞지 않는데다 揮毫비의 境遇 '不法 造形物'로 確認됐다고 指摘했다. [5]

이에 對해 이 名譽會長 等은 지난 2004年 4月 <오마이뉴스>와 MBC를 相對로 모두 16億원(<오마이뉴스> 6億원). 2審에서는 12億원(<오마이뉴스> 3億원)의 損害賠償을 請求하는 訴訟을 提起했다. 그러나 法院은 이인구 계룡건설산업 名譽會長 祖父의 抗日運動 行跡은 '確認되지 않은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報道에 對해 "虛僞 內容으로 볼 수 없다"고 判斷했다.

2006年 10月 大田高等法院 第 2民事部는 鷄龍建設 이인구 名譽會長 等이 "祖父의 反日 抗日鬪爭 經歷을 造作한 것처럼 虛僞事實을 報道해 名譽를 毁損하고 鷄龍建設과 의 社會的 價値를 저하시키고 祖父의 名譽를 毁損시켰다"며 <오마이뉴스> 等을 相對로 提起한 損害賠償請求 訴訟에 對해 原審 判決 그대로 "理由 없다"며 棄却했다. MBC에 對해서도 3000萬원을 支給하고 '訂正報道' 하라는 原審을 깨고 鷄龍建設 側의 請求를 棄却했다. 原稿 側은 高等法院 判決 後 上告를 提起하지 않아 訴訟이 終結됐다.

裁判部는 判決文에서 "이인구 名譽會長 祖父가 反日 抗日鬪爭을 하고 愛國志士 김용원과 獨立運動을 하였다는 原稿 側의 主張을 立證할 만한 實證的인 資料를 찾아보기 어려운 點 等에 비춰볼 때 記事 內容은 眞實에 符合하거나 眞實로 믿을 만한 相當한 理由가 있다"고 判示했다.

裁判部는 또 該當 團體가 國庫를 支援받아 엉뚱한 사람의 功績碑를 세웠다는 <오마이뉴스> 報道에 對해서도 "大戰愛國志士崇慕會가 大田市로부터 補助金을 申請하면서 鷄龍建設 이 名譽會長 祖父에 對해서는 事業 內容에 包含시키지 않았다"며 "眞實에 符合된다"고 덧붙였다. [6]

이돈직을 기리는 記念碑는 2003年 當時에만 無窮花동산, 恩平公園, 효평동 이렇게 3곳이 있었다. 2019年 現在 月評公園 揮毫費와 生涯非, 無窮花동산 功績碑와 揮毫費는 撤去된 狀態다. 힘있는 後孫에 依해 祖上의 功績이 부풀려지는 代表的인 事例다. [7] [8] [9]

各州 [ 編輯 ]

  1. “獨立鬪士의 功績碑가 變造된 事緣” . 오마이뉴스. 2003.12.22.  
  2. “臨政 100年, 大田 獨立英雄의 꿈 ②-Ⅰ김용원” . 錦江一步. 2019.04.23.  
  3. “대전지방경찰청 '無窮花 홀', '김용원 홀'로 바꿨다” . 오마이뉴스. 2019.06.11.  
  4. “獨立鬪士의 功績碑가 變造된 事緣” . 오마이뉴스. 2003.12.22.  
  5. “鷄龍建設 이인구氏 <오마이뉴스> 損賠訴 棄却” . 오마이뉴스. 2006.02.13.  
  6. “앞뒤 다른 獨立運動家 碑石, '잘못'이지만 '違法' 아니다?” . 오마이뉴스. 2007.01.15.  
  7. “[寫眞] 假짜 獨立運動家 功績碑, 16年 만에 뽑혔다” . 오마이뉴스. 2019.07.26.  
  8. “9年 만에 撤去된 '未確認 獨立運動家' 鼻紋” . 오마이뉴스. 2009.07.13.  
  9. ' 勳章'李 뭐길래... 假짜 獨立運動家 碑石까지 세운 사람들” . 오마이뉴스. 201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