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豪
(姜湖,
1908年
8月 6日
~
1984年
7月 3日
)는
日帝强占期
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藝術人이다.
美術
과
演劇
,
映畫
等 여러 分野에서 活動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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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尙南道
창원군
이 本籍地이며 出生地는
進駐軍
이다. 本名은 강윤희(姜潤熙)이다. 小作農 家庭에서 태어나 집안 形便이 넉넉치 않았다.
1921年
에 혼자
日本
으로 건너가 날품팔이로 生計를 維持하며 苦學으로 美術을 工夫했다.
歸國 後
1927年
에
朝鮮映畫藝術協會
硏究生으로 들어가면서
朝鮮프롤레타리아藝術家同盟
系列에서 左派 藝術人으로 活動을 始作했다.
平壤
勞動者 罷業에 參加하여 傳單과 壁報 製作을 支援하는 等 實踐的인 活動이었다.
1929年
에는 카프 系列의 農村 映畫 《暗路》를 演出하여
映畫監督
으로도 데뷔했다.
1930年
에 카프 組織 改編 以後 美術部 責任者 兼 映畫部 委員이 되었다. 勞動者의 階級的 覺醒과 鬪爭을 다룬 《地下村》(1931)을 演出해으나 檢閱 때문에 開封되지 못하는 等 彈壓도 잇따랐다. 强豪는
1932年
에 極端 신건설과
東方키네마
創設에 參加하며 活動 領域을 넓혀나갔고, 結局
1933年
에 組織 事件에 휘말려 拘束되어 禁錮 6個月型을 言渡받았다.
出監 後 看板店 化工 等으로 일하며 活動을 再開하였으나 뚜렷한 成果는 보지 못하던 中,
1938年
또다시 拘束되었다. 이番에는
共産主義者協議會
라는 組織을 結成한 嫌疑였고,
中日 戰爭
으로 時局이 梗塞된 時點이라 4年餘 동안 다시 收監生活을 해야 했다. 出監 後
1943年
부터
太平洋 戰爭
終戰 時點까지는 主로 演劇의 舞臺장치가로서 活動했다.
太平洋 戰爭 終戰 以後 左派 系列에서 活潑한 活動을 벌였다.
朝鮮演劇同盟
에 參與하여 이 團體 傘下 劇團의 舞臺裝置를 擔當하면서
서울
에서 主로 左派 性向의 演劇을 公演했다. 이 時期에 參與한 演劇 作品으로 《南部戰線》, 《脫落者》, 《무지개》, 《望鄕》, 《閔中殿》, 《獨立軍》, 《피흘린 記錄》 等이 있다.
美軍政
地域에서 左翼 運動이 彈壓을 받자
1946年
警
三八線
北쪽으로 脫出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演劇의 舞臺장치가이자 映畫의 시나리오 作家, 美術 擔當으로 活動했다. 大學에서 後進을 養成하기도 했으며, 著書로 《라운규와 그의 藝術》(1962), 《舞臺美術의 基礎》(1963), 《解放 前 우리나라 살림집과 生活樣式》(1980), 《解放 前 우리나라 옷糧食》(1981) 等이 있다.
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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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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