戱化
(羲和)는
中國
傳한
末期 ~
新나라
의 官職이다.
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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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한 平帝
때인
遠視
2年(
2年
) 2月에 처음으로 設置하였으며, 俸祿은 2千 席이었다. 敎化를 管掌하고, 亂雜한 祭祀 · 淫亂한 音樂을 團束하였다. 속管으로 外事(外史) · 女史(閭師)를 두었으며, 둘 다 俸祿은 6百 席이었다.
《
漢書
》 卷19에는 戱化는 前漢의
大司農
에 該當한다고 記錄되어 있는데, 戱化가 처음 設置된 遠視 年間에도 大司農의 存在가 確認되며 또 職務가 全혀 다른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두 官職이 別個로 있었다가 大司農이 戱化로 吸收된 것으로 보인다.
戱化는
新나라
때에도 維持되었다가 名稱이
納言
(納言)으로 고쳐졌으며, 新나라 滅亡 後
後漢
때 大司農으로 되돌려졌다.
出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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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班固
, 《
漢書
》 卷12 坪提起(平帝紀) · 卷19床 百官공경표(百官公卿表)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