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드 1歲 下르파그리
(
노르웨이語
:
Harald I harfagre
,
古代 노르드어
:
Haraldr inn Harfagri
,
노르웨이語
:
Harald Harfagre
하랄 호르派그레
[
*
]
,
850年
警 ~
932年
警)는
노르웨이
의 建國者이자 初代 國王(在位: 872年 ~ 930年)으로 알려져 있다. "下르파그리"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라는 뜻으로
未發王 하랄
(
Harald Fairhair
)라고 意譯하기도 한다.
노르웨이 全域의 統治權을 主張한 最初의 王이었으나 그가 全國을 實質的으로 支配했는지에 對해서는 疑問이 많다. 노르웨이는 統一國家 形成이 늦어 當時 여러 個의 小規模 王國들이 割據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인
할프團 스바르티
는 이들 中 主로 노르웨이의 東南部 地域에 흩어진 몇 個의 王國들을 征服과 相續을 통해 支配하게 되었다.
860年
검은 할프段이 죽은 後 그 땅을 물려받은 하랄은 나머지 王國들을 모두 征服하여 노르웨이의 時調가 되었다고 한다.
傳하는 바에 依하면 하랄은 이웃하는 王의 딸인 귀다(Gyda)에게 請婚을 하였는데 그는 그가 노르웨이 全域의 王이 되기 前까지는 婚姻을 拒絶하겠다고 答했다. 그리하여 하랄은 노르웨이를 統一한 王이 될 때까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도, 빗지도 않을 것이라는 盟誓를 하고 十年 만에 征服 事業을 完遂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以前까지는 '蓬髮(蓬髮)의 하랄'이라 불렸으며 征服을 마친 後에 '未發(美髮)의 하랄'이라는 現 別名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事實인가에 對해서는 疑問이 많다. '未發'이란 別名은 單純히 그가 金髮이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
中世 史家들에 따르면 하랄은
866年
에 노르웨이의 小規模 王國들에 對한 正服 戰爭을 始作하여
872年
스타방에르
近郊의 下프르스피오르(Hafrsfjord) 海戰을 통해 거의 全國을 統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當時 나이와 잘 들어맞지 않아 實際로는 約 10年 後의 일로 推定된다.
하랄의 노르웨이 統一 以後 그의 政敵들은 노르웨이를 떠나 發見된 지 얼마 안 된
아이슬란드
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隣近의
오크니 諸島
,
셰틀랜드 諸島
,
헤브라디스 諸島
,
페로 諸島
等地로 떠나고 하랄의 統治, 特히 土地稅 徵收에 不滿을 품은 많은 노르웨이人들도 이에 加勢했다. 이들은 本國에 威脅이 되었기 때문에 하랄은 스코틀랜드와 隣近 섬들에서 바이킹 勢力을 除去하기 위한 遠征을 敢行했다. 그로 인해 스코틀랜드 隣近 섬들은 노르웨이領이 되고 많은 이들이 아이슬란드로 떠나갔다. 이는 아이슬란드 定着을 促進시키는 契機가 되었다.
그의 在位 末期는 그의 아들들 사이의 紛爭으로 얼룩졌다. 末年에는 가장 아끼는 아들인
피의 도끼의 에이리크
(Eirik Blodøks)에게 王位를 물려줄 생각으로 統治權을 넘겨준 뒤
930年
삶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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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時代
外國系 同君聯合은
기울임꼴
로, 論爭 餘地가
있으면 (括弧)로 標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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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르 同盟
(1387年?152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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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노르웨이
(1524年?18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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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노르웨이
(1814年?190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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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 以後
(1905年?現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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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攝政
- d
덴마크 君主 兼任
- e
잉글랜드 君主 兼任
- s
스웨덴 君主 兼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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