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키다 돗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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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키다 돗抛 ( 日本語 : ?木田 ?? , 1871年 8月 30日 ∼ 1908年 6月 23日)는 메이지時代 에 活動한 日本 小說, 浪漫詩 著者이며 日本 自然主義 의 發明家들 가운데 한 名으로 알려져 있다.

돗포의 作品은 平凡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면서도 人間의 深部를 解剖하는 銳利함, 內面의 自身과 直面하게 만드는 剛한 吸入力, 스토리의 展開에 따른 意外性과 眞實의 普遍性을 아우르는 文學的 均衡 感覺을 갖추고 人生의 解答을 끊임없이 自問하게 만든다.

生涯 [ 編輯 ]

1871年 치바( 千葉 ) 縣에서 태어났다. ‘돗抛( ?? )’는 筆名으로, 혼자서 걷기를 좋아했던 孤獨한 性向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70餘 篇의 短篇 小說을 發表했고 詩(詩), 告白論, 隨筆, 評論 等 다양한 장르의 作品을 썼다. 日本 近代文學史에서는 ‘天賦的인 短篇 作家’로 불린다. 唯一한 長篇小說인 ≪暴風(暴風)≫을 連載하다 完成을 보지 못하고, 肺病이 惡化되어 1908年 짧은 人生의 幕을 내렸다.

評價 [ 編輯 ]

돗抛 文學은 日本의 近代文學者들에게 큰 影響을 주었다. 文藝評論家 나카지마 겐조는 存在의 自覺을 일깨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에 影響을 준다고 했다. 히라노 겐은 作品을 읽으면 잊고 있었던 原初的인 무엇인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肉慾 小說의 宣祖’, ‘메이지 時代의 眞正한 作家’라는 評도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돗砲를 스트린드베리, 니체, 톨스토이 等과 견주었다. 돗砲를 흔히 自然主義 文學의 先驅者로 부르는 境遇가 많지만, 돗抛 스스로는 自身을 自然主義에 묶으려 하지 않았으며 돗包는 돗포라고 主張함으로써, 時流에 迎合하지 않고 自身의 獨自的인 文學觀에 根據해 作品을 쓰고 있었다.

作品 [ 編輯 ]

돗포의 代表的 作品으로, 예나 只今이나 變하지 않는 무사시노의 自然美를 是正이 가득한 筆致로 그려 낸 <무사시노>가 있다. 이와이 슌지 監督의 映畫 <4月 이야기>의 背景이 된 地域이며, 映畫에서 女主人公이 돗포의 ≪무사시노≫를 읽는 場面이 登場하기도 한다. <무사시노>가 日本 近代文學史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된 理由는 以前과는 다른 觀點과 方式으로 무사시노를 表現했기 때문이다. 돗抛 스스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詩的 情趣’가 무사시노에 어울린다고 말했듯이, 抽象的 槪念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무사시노를 直接 經驗하고 받은 感動을 詩的 言語로 表現하겠다는 돗포의 熱望이 느껴지는 作品이다.

以外에 스스로 動脈을 끊은 親舊의 죽음 앞에서 죽음의 問題를 돌아보는 <죽음( )>, 低徊趣味(低徊趣味)라는 觀點에서 한 人間을 가장 잘 드러낸 完璧에 가까운 寫生文이라고 나쓰메 소세키가 極讚을 아끼지 않은 <巡査(巡査)>, 時代的 變化를 따라가지 못하고 運命의 톱니바퀴에 끼여 世上과 不協和音을 내며 살아간 한 人間을 그린 <도미오카 先生님( 富岡先生 )>, 懦弱하기에 不幸한 運命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男子의 悲劇을 그린 <醉中日記>, 敎育의 本質이 삶의 智慧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 주면서 돗砲가 追求하는 敎育者와 英雄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小說 <해돋이> 等 열 篇의 短篇이 실려 있다.

우리말 飜譯 [ 編輯 ]

  • 김영식 옮김, 《무사시노 外》, 을유문화사, 2011年 8月 10日
이 冊에 실린 作品: 겐 老人, 무사시노,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쇠고기와 감자, 少年의 悲哀, 그림의 슬픔, 가마쿠라 否認, 非凡한 犯人, 運命論者, 停職者, 女難, 봄 새, 弓師, 대나무 쪽門, 거짓 없는 記錄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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