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롱베레되제글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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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롱베레되제글리즈
콜롱베레되제글리즈은(는) 프랑스 안에 위치해 있다
콜롱베레되제글리즈
콜롱베레되제글리즈
콜롱베레되제글리즈(프랑스)
情報
國家 프랑스의 기 프랑스
時間帶 CET(GMT+01)
레지옹 샹파뉴아르덴
데파르트網 오트마른주
INSEE 番號 52140
郵便番號 52330

(平均高度: 360m)
面積 73.63km 2 (ha)
人口 650名 (1999)

콜롱베레되제글리즈 (Colombey-les-Deux-Eglises, IPA:  [k?l??b? le døz?e?liz] )는 프랑스 北東쪽 오트마른 에 位置한 코뮌 이다.

콜롱베레되제글리즈는 行政的으로 1793年에 만들어졌다.

샤를 드 骨 [ 編輯 ]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있는 샤를 드 골의 生家

콜롱베레되제글리즈는 20世紀의 軍人이자 政治家인 샤를 드 骨 의 生家와 埋葬地가 位置한 곳으로 널리 名聲을 얻었다. 샤를 드 골은 1934年 콜롱베레되제글리즈의 南西쪽 가장자리에 相當한 不動産 을 購入했다. 샤를 드 골은 政治的 危機가 있을 때마다 콜롱베레되제글리즈로 물러나 있었다. 1946年 프랑스 第4共和國 이 들어섰을 때도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물러나 있었고, 알제리 戰爭 의 餘波로 第4共和國이 무너지고 드 골이 프랑스 第5共和國 의 大統領이 되기 前까지의 期間인 1953年부터 1958年 사이에도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물러나 있었다. 드 골은 1969年 大統領職을 辭任하고,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마지막으로 물러난 걸 끝으로, 이듬해인 1970年 死亡했다. "콜롱베"는 政治人이 國家의 부름을 받기 前까지 政治 生活에서 一時的으로 물러남을 뜻하는 政治的 隱喩로 널리 使用되었다.

샤를 드 골은 1970年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 있는 墓地 에 묻혔다. 드 골의 墓碑銘 에는 그가 죽기 18年 前인 1952年에 自身이 直接 作成한 遺書 에 따라 華麗한 美辭麗句나 說明없이 "샤를 드 骨 1890-1970"이라는 글만 새겨져 있다. 콜롱베레되제글리즈의 西쪽 出口에는 44.3 m 높이의 로렌 十字架 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第2次 世界 大戰 當時에 自由 프랑스 司令官 으로서 뛰어난 役割을 했던 샤를 드 골을 記念하기 위한 것으로 1972年에 세워졌다. [1] 2008年 10月 샤를 드 骨 記念 博物館이 建立되었는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大統領 앙겔라 메르켈 獨逸 總理 가 記念館 開館式에 參席하였다. 이러한 프랑스와 獨逸 兩國 頂上의 만남은 第2次 世界 大戰 以後 獨逸과 프랑스의 和解의 一環으로 1958年 9月 14日 샤를 드 골과 콘라트 아데나워 가 콜롱베레되제글리즈에서 會談한 지 50周年이 되는 것을 記念하기 위한 것이었다.

갤러리 [ 編輯 ]

各州 [ 編輯 ]

  1. “The Cross of Lorraine in Colombey-les-deux-eglises” . 2012年 11月 10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2年 11月 7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