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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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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근 (陳洋根, 日本式 이름: 松本洋根 마쓰모토 要콘 , 1906年 5月 13日 ~ 1996年 4月 22日 )은 日帝强占期 滿洲國 官僚로, 본적은 서울特別市 鍾路區 명륜동이며 咸鏡南道 洪原郡 송원면 出身이다.

生涯 [ 編輯 ]

1932年 日本 교토 帝國大學 法學部를 卒業했으며 1932年 10月 滿洲國 帶同學院 을 卒業했다. 1933年 6月부터 1934年 까지 지린 省(吉林省, 吉林省) 이퉁 現(伊通縣, 이통현) 속管으로 勤務했고 1934年 3月 1日 滿洲國 政府로부터 建國功勞腸을 받았다. 1935年 8月 지린 省(吉林省, 吉林省) 公序 失業靑 事務官으로 選任되었으며 1935年 12月 滿洲國 民政部 척情事(拓政司) 事務官으로 選任되었다. 1938年 滿洲國 産業部 事務官으로 勤務했고 같은 해에 日本 政府로부터 滿洲 事變 第1次 從軍기장(勳勞 情(勳勞 丁))을 받았다.

1939年 1月 1日 滿洲國 産業部 開拓總局 秒間처(招墾處) 事務官으로 任命되었으며 1940年 4月 안둥 時(安東市, 安東市) 行政課長으로 任命되었다. 안둥 市 行政課長으로 在職 中이던 1940年 滿洲國 協和回 와 함께 朝鮮人女學校 設立에 參與했는데 이는 日本의 皇民化 敎育 政策 施行과 關聯이 있었다. 1940年 7月 15日 滿洲國 政府로부터 勳6位 경운장(景雲章)을 받았고 1940年 9月 滿洲國 젠다오 性(間島省, 間島性) 民生靑 地方課長으로 任命되었다.

1940年 11月 東南地球特別工作後援會 常務委員을 歷任하는 동안 日本의 抗日 武裝 勢力 彈壓을 積極 支援했으며 1941年 2月 흥아靑年俱樂部(興亞靑年俱樂部) 敎養硏究部 幹事로 選任된 뒤부터 젠다오 性(間島省, 間島性)에 居住하던 朝鮮人들을 相對로 한 協和運動을 積極 主導했다. 1941年 3月 10日 부터 1943年까지 滿洲國 젠다오 性(間島省, 間島性) 財務課長을 歷任했고 1941年 7月 7日 滿洲國 政府로부터 國稅 調査 記念章을 받았다.

1943年 10月 滿洲國 總務廳 脂肪處 參事官으로 任命되었으며 1944年 10月 13日 滿洲國 둥만 銃聲(東滿總省, 동만銃聲) 허룽 現(和龍縣, 화룡縣) 現場으로 任命되었다. 光復 以後인 1949年 6月 6日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에 逮捕된 뒤에는 한동안 麻布刑務所에 收監되기도 했다. 1949年 大韓食糧公社 京畿道支部長, 1952年 大韓食糧工事 청계委員會 事務局長, 1953年 韓國米穀倉庫株式會社 專務理事를 歷任했다.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者 名單 의 海外 部門,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가 發表한 親日反民族行爲 705人 名單 에 包含되었다.

參考資料 [ 編輯 ]

  •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2009). 〈진양근〉.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 報告書 Ⅳ-17》. 서울. 477~4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