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重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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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重桓

趙重桓 (趙重桓, 1884年 ~ 1947年 [1] )은 日帝强占期 大韓民國 의 作家·飜譯家·記者·俳優이다. 號는 逸才(一齋)이며 本貫은 洋酒(楊州)이다. 飜案小說 로서 當代에 이름이 藉藉했다.

1884年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2年 19歲 되던 해 京城學堂을 卒業했다. 1906年에는 日本 最大의 私立 綜合 大學校인 니혼 大學 을 卒業했는데 政經과 또는 高等師範科를 卒業한 것으로 推定된다. 1908年에는 해평 尹氏와의 사이에서 아들 윤창호를 얻는다. [1]

1910年 《 每日申報 》에 入社, 1912年 《每日申報》를 據點으로서 全方位的 文藝 活動을 展開한다. 同年 3月 윤백남 과 劇團 문수성을 創立하여 新派劇을 公演했다. 7月 本人의 第1의 飜案小說 《雙玉루》를 每日申報에 連載하여 큰 成功을 거둔다. 11-12月 飜案 戱曲 《喜劇 병자삼인》을 連載한다. 1913年 飜案小說 《 장한몽 》·《國의 香》을 連載한다. 1914年 《단장록》·《非봉담》을 紀行文 주유삼남을 連載한다. 1915年 短篇小說 《因緣》·《續編 장한몽》을 連載. 또한 同年에서 이태간 《每日申報》의 硬派 主任을 맡아본다. 《每日申報》에 있은 동안 記事를 쓰거나 評論을 쓰거나 했으나 1919年 事業上 關係로 退社한다. 1920年부터 1921年까지 長篇小說 《觀音像》을 連載한다.

1922年 윤백남 創立의 民衆劇團에 參與하여 飜譯과 脚色을 맡아봄. 民衆劇團은 그러나 失敗하고 映畫로 視線을 돌려 1925年 桂林映畫協會를 創立. 첫 作品은 《장한몽》. 1927年 桂林映畫協會를 株式會社로 돌려 《먼동이 틀 때》를 製作. 그러나 크게 失敗한다. 1934-35年 歷史小說 《金尺의 꿈》 連載. 그리고 1939年-1940年 《안동의機》·《冬至使飛火》 連載. 1940-1943年 朝鮮金融組合聯合會 刊行의 機關紙 《 街정지우 》·《寒土盧히카리》(半島の光) 韓國語版에 歷史 講談을 連載. 1941年 京城放送局 第2放送部 囑託에 避妊되어 라디오 小說을 맡아봄. [1]

光復을 맞고 1947年 《獨立新聞》의 主筆로 任命되어 《解放前後》를 連載하였으나 끝을 보지 못하고 6個月 만에 용산구 후암동 自宅에서 永眠. 死因은 宿患. 葬禮는 社長(社葬)으로 치러짐. [1]

各州 [ 編輯 ]

  1. 趙重桓. 〈逸才 趙重桓 年譜〉. 朴軫永. 《逸才 趙重桓 飜譯 小說 不如歸》. 보고사. 283-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