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1961~ )
은 建國大學校 文化콘텐츠學科 夕座敎授를 맡고 있는 大韓民國의 칼럼니스트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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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은 1961年
全羅南道
順天市
出身이다.
圓光大學校
와 원광대 圓佛敎大學院 佛敎民俗學 碩士學位를 받고 建國大學校 文化콘텐츠學科 夕座敎授를 맡고 있다.
大韓民國의 칼럼니스트로 《조용헌의 休休名當》, 《서울의 再發見》, 《두승산 有線社》, 《東洋學을 읽는 아침》,《조용헌의 人生 讀法》을 著述하였다.
2004年 9月 1日부터
朝鮮日報
에 조용헌의 살롱을, 農民新聞에는 조용헌의 周遊天下라는 칼럼을 連載하고 있다.
조용헌은 强豪江湖에서 만난 有儒.佛佛.仙仙 高手들과 交遊하며 體得한 콘텐츠를 融合해 東洋學의 觀點에서 體系的.大衆的으로 풀어낸, 이른바 '姜鎬童洋學' 學者라고 自稱한다.
2012年 6月 4日 每經이코노미에 [조용헌의 八字奇行] 食神生財 …베풀어 人心을 사면 돈은 따라온다를 썼다. 代表的인 親日 企業家 문명기의 장삿꾼 行跡을 敍述한 것인데 그가 큰 財物을 갖게 된 原因이 베풀어 人心을 사면 돈은 따라온다로 結論을 맺는다.
[1]
2014年 3月 17日子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서 ‘大邱의 女傑(女傑)’이라는 글을 썼다.
[2]
여기에서 日帝下 代表的인 親日 企業人인
문명기
의 딸
문신자
를
등소평
에 버금가는 門所坪이라고 擧論해 物議를 빚기도 했다. 이 內容은 2017年 펴낸 <東洋學을 읽는 아침>에 들어있기도 하다.
그곳에서 “中國에는 등소평이 있고, 大邱에는 門所坪이 있다”로 始作하는 글 內容에서 文氏에 對해 등소평과 버금간다는 뜻인 ‘門소평’에 對해 들은 이야기를 稱頌하는 이야기로 나타냈다.
[3]
그의 아버지 문명기(文明琦, 1878∼1968)氏에 對한 이야기와 함께 그女의 어머니가 딸에게 미친 特異한 家庭敎育까지 적었던 것이다.
이 글을 본 慶北 靑松에 사는 지○○氏가 地域新聞인 故鄕新聞에 느낀 悲哀와 鬱憤을 吐露하며 올렸는 바, 그 題目이 ‘親日派 後孫 門ㅇㅇ氏 極讚하는 조선일보의 記事를 보며’였다.
아직도 親日派 後孫들이 全國 到處에서 部(富)를 굴리며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反面에, 日帝에 抗拒했던 獨立軍이나 義兵將의 後孫들은 가난에 齒를 떨며 어렵게 生活하고 있는 現實에서 報恩(報恩)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는 正義로운 글이었다는 評을 받았다.
[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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