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6代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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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代 달라이 라마

창앙갸초 ( 티베트語 : ????????????????? , 1683年 3月 1日 ~ 1706年 11月 15日 )는 第6代 달라이 라마 이다. 印度 東北部 地方에서 태어났으며, 第4代 달라이 라마 와 함께 現在까지 몇 안되는 티베트人이 아닌 달라이 라마 中 한 사람이다. 相當히 英敏했다고 傳해지며, 快樂, 술, 女子를 좋아하였으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中國 칭하이省 近處에서 行方이 不明되었으며, 學者들은 이를 暗殺로 推測하고 있다. 그는 詩와 노래 짓기를 좋아하였으며, 그가 지은 노래들은 티베트 全域에서 불렸다.

달라이 라마로 指名되기 前 [ 編輯 ]

瘡瘍갸初는 1683年 1月, 印度 東北部 地方에서 寶物 사냥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삶과 죽음에 關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傳해 내려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기 前 상서로운 奇跡들을 보았는데, 하루는 그女가 샘에서 물을 떠다 마시자, 그 샘에서 물 代身 牛乳가 솟구치기 始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現在 이 샘은 '牛乳의 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瘡瘍갸初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山祭 炭塵'이라 지었다. 傳說에 依하면, 아기는 出産 以後 母乳 授乳를 拒否했고, 漸漸 말라갔다고 한다. 또한 病에 걸려 얼굴이 부풀어오르기 始作하고 生命이 危篤한 狀態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父母들은 이와 같은 狀態에 놀라, 2名의 스님들을 불러 아기를 보여주었고, 스님들은 아기의 이름을 '느歌王 甘草'로 바꾸지 않으면 아기가 죽을 것이라 豫言했다.

그는 以後 빠르게 回復하였고, 信者들은 이를 달라이 라마의 守護神이 親히 일으키신 奇跡이라 表現하였다. 瘡瘍갸初의 할아버지는 꿈 속에서 아기가 하늘의 保護를 받는 자라는 啓示를 받았고, 그의 어머니는 하늘에서 偉大한 存在가 내려와 그女의 품에서 아기를 데려가는 幻想을 보았을 뿐더러, 할머니는 하늘에 2個의 太陽이 이글거리며 떠있는 幻想을 보았다.

歷史 [ 編輯 ]

1682年에 第5代 달라이 라마 가 世上을 떠났음에도 不拘하고, 最高委 僧侶들은 그의 禪宗을 숨겼다. 이와 같은 行動은 티베트 內의 所要를 가라앉히고 布達拉宮 의 完工을 最大限 順調롭게 進行하기 위해서였다. 僧侶들은 다음 代의 달라이 라마를 찾기 始作했고, 티베트 內에서 適正한 候補者를 찾지 못하자 結局 티베트 外部에서 還生者가 태어났다고 結論지었다. 그들은 特殊한 地名을 가진 地域들을 골라 찾아다녔으며, 곳곳을 누비며 條件에 맞는 아이를 찾기 위해 努力하였다.

1697年, 僧侶들은 드디어 印度 東北部에서 瘡瘍갸初를 찾아냈고, 그를 라싸 로 데려갔다. 그런데 라싸로 向하는 7日間의 旅程 途中, 瘡瘍갸初가 少女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술에 醉해 비틀거리는 等 달라이 라마로서는 거의 禁忌와 가까운 行動을 하며 僧侶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라싸에 到着하자, 瘡瘍갸初는 中國의 康熙帝 에게 公文을 띄워 5代 달라이 라마가 入籍했고, 이제는 그가 새로운 달라이 라마가 되었음을 알렸다.

瘡瘍갸初는 5代 판첸라마 에게 달라이 라마의 職位를 承認받았으며, 이 때 그의 이름인 '瘡瘍갸初'를 正式으로 받게 되었다. 1697年 10月, 瘡瘍갸初는 正式으로 달라이 라마의 王座를 이어받았다.

달라이 라마 [ 編輯 ]

瘡瘍갸初는 詩와 文學에 關心이 많았고, 수많은 노래들을 지었다. 또한 그는 自由奔放한 삶을 즐기며 달라이 라마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즐겼으며, 판첸 라마가 直接 그런 行爲들을 하지 말라고 달려가 說得해야 할 程度였다. 그는 술과 女色을 즐겼으며, 詩 쓰기를 第一 좋아했다. 그는 판첸 라마를 찾아가 容恕를 빌기까지 하였다.

瘡瘍갸初는 거의 一生 내내 僧侶로서의 삶에 關心이 없었지만, 달라이 라마로서의 職位는 繼續 遂行해 나갔다. 그는 王의 옷이 아닌 一般 僧侶의 옷을 걸치고 다녔으며, 말이나 가마 代身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公園에서 散策하는 것도 選好하였으며, 라싸의 밤거리에서 술과 女子를 끼고 밤을 지내고 오는 境遇도 있었다. 그는 답답한 宮闕 生活 代身 포탈라 宮 近處 公園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그 곳에서 살기를 固執하였는데, 그는 1702年에 이르러서야 遂行을 위하여 그러한 行動을 하는 것을 中止하였다.

失踪 [ 編輯 ]

달라이 라마의 이같은 行脚이 繼續되자, 當時 不滿을 품고 있던 한 몽골의 王이 康熙帝의 暗默的인 同意 下에 叛亂을 일으켜, 瘡瘍갸初를 拉致하고 새로운 달라이 라마를 세웠다. 叛亂者들을 1706年, 瘡瘍갸初 代身 豫셰갸初 라는 새로운 달라이 라마를 내세웠으며, 豫셰갸初가 眞짜 5代 달라이 라마의 還生者임을 主張했다. 하지만 豫셰갸초는 티베트人들의 支持를 거의 받지 못하고 나중에 쫓겨났다.

瘡瘍갸初가 티베트에서 押送되어 拘禁되어 있던 동안, 그는 나중에 그의 還生에 對한 詩를 짓게 된다.

白鶴아 네 날개를 빌려다오, 나는 멀리 날아가지 않으리니, 里長에서 나는 돌아올 것이다.

瘡瘍갸初는 1706年 中國 칭하이省 附近에서 行方不明되었고, 따라서 포탈라宮에는 그의 墓가 存在하지 않는다. 나중에 게상갸초가 第7代 달라이 라마 에 올라 그의 뒤를 잇게 된다.

前任
鵝王로샹갸初
第6代 달라이 라마
1683年 ~ 1706年
後任
게샹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