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
(鄭弘, ? ~
紀元前 37年
)은
傳한
後期의 官僚로,
者
는
治經
(?卿)이며
태산군
姜鋧(康縣) 사람이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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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兄
疔瘡
과 함께 學問을 즐겨, 經書와 法律에 通達하였다. 정창은
태원태수
·
濁郡太守
를 歷任하였고, 정홍은
南陽태수
가 되어 各自 훌륭한 治績을 쌓아 後世에 傳해지게 되었다. 다만 정창은 刑罰을 자주 利用하여, 일을 公平하게 處理한 정홍만은 못하였다.
以後 정홍은
回樣相
이 되었고, 高弟(高第)로
右扶風
으로 拔擢되었다.
靈光
2年(紀元前 42年),
丞相
으로 昇進한
位顯性
의 뒤를 이어
御史大夫
에 任命되었다.
경방
이 管理를 平定하는 새로운 法律을 提案하였을 때 정홍은 처음에 反對하였으나, 贊成으로 立場을 돌렸다. 또 경방은 以後 中書令(中書令)
昔賢
과 丞相 위현性을 내쫓도록 進言하고, 위현성의 後任으로 정홍을 推薦하였다. 그러나 京房이 失脚하여 罪를 받게 되었을 때 京房이 예전에 常駐한 걸 정홍에게 이야기한 것이 問題가 되어, 罷免되어 西人이 되었고
[1]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出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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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班固
, 《
漢書
》
- 卷19하 百官공경표 下
- 卷66 恭遜油田王양채진停戰
- 卷75 修養下後頸益移轉
各州
[
編輯
]
- ↑
班固
, 《
漢書
》 卷66 恭遜油田王양채진停戰·權75 修養下後頸益移轉
- ↑
班固, 《漢書》 卷19하 百官공경표 下
前任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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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한
의
右扶風
紀元前 46年 ~ 紀元前 42年 2月 정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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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任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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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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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兆尹
(禹內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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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馮翊
(座內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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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扶風
(朱雀中位, 朱雀徒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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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은 垂直(守職; 收拾職)으로 任命된 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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