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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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숙 (李春塾, 1889年 ~ 1935年)은 韓國 獨立運動家 이다.

生涯 [ 編輯 ]

咸鏡南道 定平郡 出生으로 號는 管誤(觀吾)이다. 京城 보성전문학교 法科를 卒業한 後 日本으로 留學갔다. 日本 中央 大學 을 1918年 6月 卒業하고 같은 해 7月 홍진의(洪震義)와 함께 滿洲·시베리아 地方 視察 途中 니콜리스크에서 문창범 (文昌範)· 允諧 (尹海)와 會見한 後 1919年 4月 中國 上海로 亡命하여 大韓民國 臨時政府 에 參與하였다. 1920年 4月까지 臨時政府 臨時의정원 議員과 副議長, 群舞次長(軍務次長)·學務次長(學務次長) 等을 歷任하면서 臨時政府의 憲法改正(憲法改正), 國債通則(國債通則), 公債發行條例(公債發行條例) 等의 制定에 參與하는 한便, 1920年 11月 傷害民團長(上海民團長) 여운형 (呂運亨)李 勃起한 新韓文化同盟(新韓文化同盟) 等에 參與하여 活動하였다. 同年 11月頃 上海에서 逮捕된 後 國內로 押送되어 京城地方法院에서 所謂 濟寧(制令) 第7號 違反으로 懲役 5年을 받고, 淸津刑務所에서 服役하였다. 出獄 後 1931年 5月까지 新幹會 京城支會의 總務幹事, 中央執行委員·中央常務委員·調査部長 等으로 活動하였다.

事後 [ 編輯 ]

大韓民國 政府는 2008年 建國訓長 독립장을 追敍하였다.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