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화
(李承和
1876年
8月 2日
~
1937年
)는 日帝 强占期
獨立運動家
이다.
新興學校
, 西路軍政署에서 活動했다. 本貫은 高聲(固城). 安東 出身. 字는 여중(汝中), 號는 痰壅(淡翁)이다. 1990年 大韓民國
建國訓長
愛族章이 追敍되었다.
臨時政府
招待
國務令
이상룡(李相龍)
의 堂叔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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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年 安東에서 出生했다. 3代에 걸쳐 9名의 獨立有功者를 輩出한
臨淸閣
[1]
이 本家. 함께 活動했던
석주 이상룡
(石洲 李相龍)의 5寸 堂叔으로 나이는
이상룡
보다 적다. 1909年
大韓協會
安東支會에 加入해 救國啓蒙運動을 했다.
乙巳勒約
이 締結되자 1911年 一家 모두 滿洲로 亡命해
耕學社
(耕學社) 設立에 參與하고
新興講習所
(新興講習所)에서 靑年敎育을 맡았다.
[2]
1915年
이상룡
의 密旨를 받고 國內로 들어와 忠淸南道, 慶尙道, 京畿道 等地에서 軍資金을 募集하다 逮捕됐다.
[3]
같은 해 9月 20日 京城地方法院에서 實刑을 言渡받고 1年間 投獄됐다.
[4]
出獄 後 慶北地域에서 抗日運動을 하던 中 1917年 日帝의 手配令 내려져 國內活動이 힘들어지자 다시 滿洲로 갔다.
[5]
1919年
西路軍政署
가 出帆하면서 事務執行委員을 맡는 等
[5]
滿洲에서 抗日鬪爭을 繼續하다가 1937年 아우 李承姬(李承熙)와 함께 滿洲 監獄에서 62歲로 獄死했다. 하얼빈에 묻혔던 遺骸는 1990年 故國으로 돌아와
國立大前賢充員
에 安葬됐다.
[2]
1990年에 大韓民國
建國訓長
愛族章이 追敍됐다.
[4]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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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祖父 : 伊飡(李璨)
- 伯父 : 이종태(李鍾泰)
- 伯父 : 이종항(李鍾恒)
- 父親 : 이종진(李鍾晋)
- 兩者 : 이상석(李相錫) : 아우 이승희의 次男에서 入寂
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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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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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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